한화

최근 편집: 2021년 5월 29일 (토) 15:55
사회인권 (토론 | 기여)님의 2021년 5월 29일 (토) 15:55 판 (→‎논란)

산업 화학 창립 1952년 10월 28일 창립자 김종희 본사 서울특별시 중구 청계천로 86 (장교동) 경영인 옥경석, 이민석, 금춘수

논란

  • 갑질과 여성혐오

17년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 샛째 아들 김동선이 술집 종업원을 폭행하였다. 17년 1월 5일 새벽 강남 술집에서 혼술을 하다가 종업원 얼굴을 향하여 술병을 휘두르고, 종업원 2명 뺨과 머리를 손으로 폭행하였다. 법원은 "구속사유와 필요성이 인정된다." 라며 구속영장을 발부하였다. 17년 1월 10일 "갑질 영상" 이 공개된 이후, 비난을 받게 되었습니다. 김씨는 탁자 위로 올라가 종업원을 향하여 "야야 똑바로 안해?" 라며 뺨을 때립니다. 머리를 밀치고 욕을 한다. 종업원은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지만, 김씨 폭행은 계속 된다. 2시간 이후에 피해자 2명에게 1000만원에 합의하였다. 소비자들은 "1시간에 500만원 맷값이냐. 돈이면 다 되는 줄 안다" 라며 비난하였다. 故 김종희 한화그룹 창업주는 "남자는 술도 조금 마시고, 담배도 피워보며 단맛 쓴맛 다 맛보아야 한다. 무엇을 하든 간에 나중에 훌륭한 인물이 되려면 쓸데없는 것은 하나도 없다." 라며 남자범죄를 미화하는 발언을 하였다. 한화 家 갑질 중에 "청계싼 보복 폭행" 사건은 故 한화 회장 김씨 둘째 아들이 07년 서울 청담동 가라오케에서 술을 먹다 북창동 클럽 종업원 일행과 시비가 붙어 크게 다쳤다. 격노한 故 한화 회장 자신 경호원과 용역업체 직원을 동원하여 둘째 아들과 종업원 4명을 청계산으로 끌고가 쇠파이프로 폭행하였다. 김회장이 "내 아들이 눈을 맞았으니 너도 눈을 맞으라" 라고 눈을 계속 폭행하였다. 경호원들은 쇠파이프랑 전기충격기를 들고 있었다. 둘째 아들을 때렸다고 허위자백을 한 사람이 "나는 때린 사람이 아니다" 라고 말하자, 김회장 패거리들은 북창동으로 향하였다. 경호원이 아니라, 조직 폭력배였다. 회칼도 차고 있었다. 김씨를 때린 사람에게 "네가 나가야 상황이 끝났다" 라며 김회장 패거리가 방으로 들여보냈다. 둘째 아들이 말렸다. 아들은 맞은만큼 피해자들을 폭행하였다. 3시간동안 이 상황이 지속되었다. 이에, 김 회장이 07년 서울남대문경찰에서 밤샘조사를 받고 나와 "물의를 일으켜 죄송하다" 라며, 자신이 직접 폭력을 휘두른 혐의를 부인하며 자차에 올라탔다. 피해자와 목격자가 김회장을 지목하였고, 경찰 조사에도 비협조하였다.경찰 소환을 두번이나 불응하고, 체포당시 겨우 나왔다. 결국 구속영장이 청구되고 영상실질심사에서야 혐의를 인정하였다. 김회장은 1심에서 징역 1년 6개월을 선고받았다. 항소심 출석당시 "왼쪽 다리를 제대로 쓰지 못하고, 우울증과 불면증을 앓아왔는데, 실형이후 휠체어 없이 거동이 힘들다" 라고 밝혔다. 둘째 아들은 "대신 처벌받고 싶다" 라는 탄원서를 제출하였다. 이에 07년 9월 11일 "보복 폭행" 혐의로 구석되어 항소심에서 징역 집행유예 3년, 사회봉사명령 200시간을 선고받았다. 법원은 "자신 아들이 폭행을 당한 데 아버지로서 父정이 앞선 나머지 사건을 저지르게 하였다" 라고 집행유예를 선고하여 비난을 받게 된다. 폭력은 父정이 아니다. 폭력을 미화하고, 대화나 둘째 아들이 지혜롭게 해결을 할 수 있는 상황이었고, 애초에 둘째 아들 일은 둘째 아들이 책임졌어야 하는 부분이다. 3시간동안 폭행을 휘두른 것은 보복 폭행 그 이상이다. 둘째 아들은 11년 뺑소니 범죄를 저질렀다. 11년 2월 27일 새벽 5시 서울 청담동 도로에서 자신 재규어 승용차를 몰고 달리다가 유턴 대기 중인 SM5 승용차를 들이 받고 달아났다. 이틀만에 자수한 그는 약식기소되어 벌금형을 선고받았다. 14년에는 대마초를 피운 혐의로 입건되어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다. 14년 한화 L&C에 입사하여 15년부터 한화그룹 핀테크 사업으로 경영활동에 참여하였다. 이에 현재는 한화생명 상무로 근무중이다. 한마디로 범죄전력이 있는 사람이 "금수저" 라는 이유로, 경영에 참여하고 있다는 점이다. 17년 김 회장 셋째 아들은 아시안게임 금메달 수상자이다. 06년 카타르 도하 아시안게임, 10년 광저우 아시안게임, 14년 인천 아시안게임에서 금메달을 땄다.셋째 아들은 술을 마시다가 종업원과 시비가 붙자 유리창을 파손하여 음식을 나르던 여성 종업원 가슴을 만졌다. 경찰에서도 행패를 멈추지 않았다. 조사 중, 방범창을 뜯어냈다. 검찰은 "추행당한 피해자들이 처벌을 원하지 않고, 방범창 역시 다시 붙여 사용할 수 있는 정도이고, 아시안게임에서 금메달을 수상한 점을 고려하여 기소유예하였다" 라고 밝혔다. 14년 셋째 아들 역시 한화건설에 입사하고, 신성장전략팀으로 업적을 쌓았다. 셋째 아들은 술집에서 종업원을 폭행하다 경찰에 붙잡혔다. 경찰차 유리창과 카시트를 수십차례 걷어차 파손시켰다. 경찰은 "과거에도 비슷한 전력이 있고, 파출소·경찰서에서 욕설을 하며 매우 불량하다" 라며 구속영장을 신청하여 구속되었다. 김 회장은 "잘못을 저지른 만큼 벌을 받고 깊은 반성과 자숙을 하라" 라고 밝혔다. “무엇을 하든 간에 나중에 훌륭한 인물이 되려면 쓸데없는 것은 하나도 없다”는 발언을 하였던만큼, 한화家가 그 말에 착오가 있었다는 부분을 감지하기를 바랍니다. 이로 인하여 기업가 정신과 사회를 망치고, 불매를 유도하는 만행을 저지른것은 자랑이 아닙니다. 상습적인 부분도, 전과전력이 있는데도 "금수저" 라는 이유로 기업에 입사하는 것도 불공정한 사업을 진행하는 것도 절대 아닙니다.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