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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 산내민간인학살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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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전쟁 발발 직후인 1950년 6월 28일부터 7월 16일까지 대한민국 군경이 [[대전형무소]]에 수감되어 있던 좌익사범, 재소자, 미결수 등을 인근 [[산내면]] [[골령골]]에서 학살한 사건이다. [[보도연맹 학살사건]], [[제주 4·3 사건|제주 4.3 사건]], [[여순 사건]]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충청도 지역 일부 보도연맹원과 4.3 사건, 여순 사건 당시 일부 수감자들이 대전형무소로 이감되었기 때문이다. 특히 4.3 사건 관련자가 가장 많은 비율을 차지한다고 한다. 처음 3일 동안은 보도연맹 및 예비 검색자 관련자로 1,400명이 대상이었으며, 7월 첫째 주부터는 대전형무소에 수감 중이던 여수, 순천 관련 정치범 등으로 1,800명(미국립 문서보관소), 7월 16일까지는 기타 지역에서 이송된 민간인들로 많게는 3,700명이 그 대상이다. 당시 대전형무소 특별경비대 부대장이었던 이준영씨와 충청남도 경찰국 사찰 주임이었던 변홍명씨 등의 증언에 따르면 1950년 7월 4일경부터 헌병대에 의해 성향 분류작업이 시작되었으며, 이들은 곧바로 산내 골령골로 이송되어 집단학살되었다고 한다. 이들의 증언에 따르면 당시 집단학살 현장에는 군 헌병대를 비롯 미군과 사회유지들도 참관했다고 한다. 집단학살당한 민간인들의 수는 미국립 문서보관소나 당시 종군기자 보도, 각종 증언 등을 종합해 보면 적게는 4천 명에서 많게는 7천 명에 이른다. 이들이 묻힌 30∼80m 구덩이 8곳을 연결하면 길이가 1㎞에 달해 ‘세상에서 가장 긴 무덤’으로 불리기도 한다. 2007년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에서 34구의 유해를 발굴했고, 2015년 ‘[[한국전쟁기 민간인학살희생 발굴 공동조사단]]’이 20구를 수습했으며, [[행정안전부]]와 [[대전 동구]] 주관으로 진행된 2020년에는 234구, 2021년에는 962구의 유해가 발굴됐다.
대전 산내민간인학살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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