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시 제목 | 부산시 완월동 |
기본 정렬 키 | 부산시 완월동 |
문서 길이 (바이트) | 2,078 |
이름공간 ID | 0 |
문서 ID | 74124 |
문서 내용 언어 | ko - 한국어 |
문서 내용 모델 | 위키텍스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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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키베이스 항목 ID | 없음 |
설명 | 내용 |
문서 설명: (description ) This attribute controls the content of the description and og:description elements. | 생긴 지 100년이 넘은 부산의 오래된 집창촌으로 1876년 강화도 조약 체결 이후 부산항에 일본인 집단 거류지가 형성됐고, 이를 중심으로 점차 유곽이 성장한 것이다. 1900년대 중후반부터 ‘녹정유곽’이라는 명칭의 공창으로 영업했고, 일제강점기 내내 일본인 손님을 위주로 운영되었다. 해방 후에는 부산 텍사스 마을과 함께 미군부대 기지촌이 되었고, 1970년대에는 국내 성매매의 확산으로 국내 최대 규모의 성매매 집결지가 되었다. 당시 미등록 포함 약 2,000명의 여성이 완월동에 거주하며 성매매 일을 한 것으로 추정된다. [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