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시 제목 | 심용현 |
기본 정렬 키 | 심용현 |
문서 길이 (바이트) | 1,146 |
이름공간 ID | 0 |
문서 ID | 44511 |
문서 내용 언어 | ko - 한국어 |
문서 내용 모델 | 위키텍스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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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키베이스 항목 ID | 없음 |
설명 | 내용 |
문서 설명: (description ) This attribute controls the content of the description and og:description elements. | 1950년 5월 1일 중위로 진급하고 전쟁이 발발하자, 6.25 당시 대전형무소 재소자·대전·충남지역 보도연맹원 3200명을 즉결 처형한 주범이다. 사격 개시 명령 학살을 지휘·점검하는 핵심 역할을 하였다.[1] 이관술이 처형됐다. 하지만 대법원은 "국가는 유족에게 1억 6000만원을 배상하라"는 판결을 내리면서, 심용현 가족들이 변상할 수 있는 상황이어도 국가가 배상하게 됐다. [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