뚜안 사망 사건

2025년 10월 28일 대구 성서공단의 한 공장에서 대구출입국·외국인사무소의 미등록 이주민 단속이 이뤄진 뒤 뚜안이 3층 높이에서 추락해 숨진 사건이다. 법무부는 처음에 단속이 끝난 뒤 일어난 일이라며 책임을 부인했으나, 유족과 대책위의 농성 끝에 12월 31일 사과했다. 2026년 2월 13일에는 근로복지공단이 산업재해를 승인했다.

단속과 사망

법무부는 APEC 정상회의 개최 지원을 이유로 2025년 9월 29일부터 12월 5일까지 미등록 이주민 정부 합동단속을 벌였다.[1] 10월 28일 오후 3시경 대구출입국·외국인사무소 단속반이 성서공단의 자동차 부품 공장에 들어갔다. 회사는 단속반에 직원 40명의 명단을 냈다.[2]

뚜안은 구직비자(D-10)로 체류하고 있었고 이 비자로는 제조업체에서 일할 수 없었다. 대학을 졸업하고 취업을 준비하다 이 공장에서 일한 지 2주째였다.[3] 단속이 시작되자 뚜안은 3층 창고에 숨어 친구에게 "나는 숨어 있어. 무서워. 지금 8명이 잡혔다고 해."라는 문자를 보냈다.[2] 대책위가 공개한 대화에서 오후 3시 39분에는 "조금 전에 내가 있는 곳으로 출입국이 왔어"라고 썼다.[4]

오후 6시 27분 "숨쉬기 힘들다"는 문자를 마지막으로 연락이 끊겼고, 6시 40분경 공장 1층 바닥에서 머리에서 피를 흘린 채 숨진 모습으로 발견되었다. 국립과학수사연구원 부검에서 직접 사인은 머리뼈 골절로 확인되었다.[2] 이 단속에서 34명이 적발되었다.[2]

법무부의 입장

법무부는 10월 29일 보도자료에서 오후 4시경 단속을 종료했고 5시 50분경 단속반원도 철수했다며, 사망은 단속이 끝난 뒤 일어났다고 밝혔다.[2] 대구출입국·외국인사무소 관계자는 단속 당시 현장에서 물리적 충돌은 물론 항의나 언쟁도 없었다고 말했다.[5]

대책위는 11월 5일 대구출입국·외국인사무소장을 면담했으나 소장이 "도의적 책임을 느낀다"고만 말했을 뿐 공식 사과나 재발 방지 대책은 없었다고 밝혔다.[4]

12월 10일 경향신문은 대책위가 박은정 의원실을 통해 받은 자료를 바탕으로, 대구출입국·외국인사무소가 올해 단속직원 교육을 3월과 9월 각 1회만 했고 9월 교육은 8월 29일 기관장 회의 결과 메모를 공유하는 수준이었다고 보도했다.[6]

12월 23일 대책위는 서울에서 진상조사 중간보고회를 열었다. CCTV를 분석한 결과 단속반 차량은 오후 6시 43분경 공장을 빠져나간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법무부가 밝힌 단속 종료 시각은 사고 직후 오후 4시, 보도자료 5시 50분, 국회의원실 제출 자료 6시 10분으로 달랐다.[7] 법무부는 12월 26일 보도설명자료에서 단속 차량과 직원이 사망 시간 전에 업체에서 철수했다고 다시 밝혔다.[8]

대책위와 농성

민주노총 대구지역본부, 대구경북이주노동자연대회의 등은 10월 30일 대구출입국·외국인사무소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법무부의 공식 사죄를 요구했다.[5] 10월 31일 발인했다.[2] 11월 5일에는 사무소 앞에서 '고 뚜안 사망사건 대응을 위한 대구경북지역 대책위원회' 출범 기자회견이 열렸다. 요구는 진상조사위원회 구성, 진상조사가 끝날 때까지 강제단속 중단, 강제추방 중심 정책 폐기였다.[4]

11월 18일 서울에서 사람이왔다_이주노동자차별철폐네트워크가 주최한 3차 추모 집회가 열렸고 100여 명이 참가했다.[9] 12월 9일 아버지 부반숭과 대책위는 서울 용산 대통령실 앞에서 기자회견을 연 뒤 농성에 들어갔다. 이 자리에서 대통령실 면담 결과 '미등록 이주민 50% 감축 5개년 계획'이 유지되고 있음을 확인했다고 밝혔다.[10] 12월 11일에는 서울 국가인권위원회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직권조사와 긴급구제를 요구했다.[11] 12월 18일 연구자 400인이 진상규명과 폭력적 단속 중단을 요구하는 성명을 냈다.[12] 12월 29일 부반숭은 청와대 앞에서 108배를 했다.[11]

법무부 면담과 사과

12월 31일 이용우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에서 유족이 이상한 대구출입국·외국인사무소장과 법무부 관계자를 만났다. 면담에는 유성오 법무부 이민조사과장도 자리했고, 유족 외에 대책위와 사람이왔다 측도 함께했다.[13] 소장은 "깊은 애도의 뜻을 표한다"고 사과했다.[14] 법무부 관계자는 안전과 인권을 강조하는 방식으로 단속 정책을 개선하고 비자 제도 개선을 검토하겠다고 약속했다. 한편 단속 자체를 중단할 수는 없고 불법 환경 억제, 브로커 위주 단속, 자진출국 확대, 고용주 처벌 강화 등으로 전환하겠다고 밝혔다.[14] 또 미등록 이주민 50% 감축 5개년 계획을 당장 중단할 수는 없다고도 밝혔다.[13]

아버지는 사과를 받아들인다고 밝히면서도 "사과는 받았지만 죽은 딸이 살아 돌아올 수는 없습니다"라고 말했다.[11]

면담 자리에서 아버지 부반숭은 다음과 같이 발언했다.

"먼저, 사랑하는 딸 뚜안의 안타까운 죽음에 깊은 관심을 가지고 이번 만남이 성사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 주신 국회의원님과 대구·경북의 활동가 여러분들, 노동인권 [활동가] 분들에게 진심으로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아울러 오늘 이 자리에 함께하시어 유가족과 관계 기관 간의 공감과 이해의 접점을 찾기 위해 적극적으로 임해주신 법무부 관계자와 대구출입국 소장님에게도 감사의 뜻을 전합니다.

딸을 잃은 슬픔은 우리 가족에게 있어 감히 말로 다 표현할 수 없는, 삶에서 가장 큰 상실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권 단체를 비롯한 여러 시민사회단체, 그리고 뚜안과 같은 또래의 자녀를 둔 많은 부모님들과 시민 여러분께서 보내주신 따뜻한 관심과 위로, 연대의 마음은 우리 가족에게 큰 힘이 되었고, 진심으로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오늘로 딸아이가 우리 곁을 떠난 지 65일이 되었습니다. 지난 65일 동안 수많은 분들의 관심과 도움 속에서, 그리고 오늘 국회의원님 사무실에서 공식적인 사과를 들을 수 있었습니다. 사과는 받았지만 죽은 딸이 살아 돌아올 수는 없습니다.

이 자리를 빌려 간곡히 요청드립니다. 외국인 노동자를 단속하고 구금하는 제도와 절차 전반에 대해 반드시 개선이 이루어져, 더 이상 '제2의 뚜안'이 발생하지 않기를, 그리고 우리 가족처럼 자식을 먼저 떠나보내는 비극을 겪는 부모가 다시는 생기지 않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부디 모든 외국인에게 인간으로서 마땅히 보장되어야 할 살 권리, 배울 권리, 일할 권리, 그리고 사회에 기여할 권리를 보장해 주시기를 요청드립니다.

저희 가족은 관계 기관의 사과를 받아들입니다. 그러나 이 사과가 저희 가족만을 위한 것으로 남지 않기를 바랍니다. 지난 65일 동안 뚜안과 우리 가족을 지켜보며 함께 아파하고 연대해주신 모든 분들께서도 이 사과를 함께 들을 수 있기를, 그리고 이를 통해 관계 기관의 책임과 성찰, 그리고 변화의 의지를 사회 전체가 함께 느낄 수 있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끝으로, 다시 한번 이 자리를 마련해 주신 모든 분들께 깊은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15]

대책위는 1월 2일 서울 농성을 끝냈고(25일째)[11] 1월 9일 대구출입국·외국인사무소 앞 농성을 끝냈다(58일째).[16]

산업재해 승인

2026년 2월 13일 근로복지공단이 산업재해를 승인하고 유족급여와 장례비를 지급했다. 사람이왔다는 "늦었지만 다행인 조치"라고 밝혔다.[3] 마창거제산재추방운동연합이 2025년 10월 산재를 신청했다.[17] 단체들은 사업주의 도주 지시, 업무 시간 중 사업장 내 사고 같은 요건을 단속 피해에 요구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밝혔다.[18]

남은 과제

대책위는 국가인권위원회 진정과 진상조사, 근로기준법·산업안전보건법·중대재해처벌법 관련 고소·고발, 미등록 이주노동자의 안정적인 체류권을 위한 투쟁이 남았다고 밝혔다.[16]

참고

출처

  1. ↑ 정주식 (2025년 12월 5일). “[오늘을 생각한다] 청소구역”. 《주간경향》. 2026년 10월 29일에 확인함. 
  2. ↑ 2.0 2.1 2.2 2.3 2.4 2.5 손가영 (2025년 11월 3일). “단속 피하다 숨진 베트남 유학생…혈흔 본 아버지는 담요로 덮어주려 했다”. 《프레시안》. 2026년 10월 29일에 확인함. 
  3. ↑ 3.0 3.1 이수연 (2026년 2월 13일). “베트남 청년노동자 고 뚜안 '산재 인정'”. 《매일노동뉴스》. 2026년 10월 29일에 확인함. 
  4. ↑ 4.0 4.1 4.2 박병선 (2025년 11월 7일). “"대구출입국사무소, 외국인 노동자 사망에 대해 공식 사과나 대책 마련 거부했다"”. 《더팩트》. 2026년 10월 29일에 확인함. 
  5. ↑ 5.0 5.1 남정운 (2025년 10월 30일). “대구 시민사회계 "법무부, 성서산단 베트남 여성 사망사고 공식 사죄해야"”. 《매일신문》. 2026년 10월 29일에 확인함. 
  6. ↑ 유선희 (2025년 12월 10일). “[단독]'회의결과 메모 공유'가 이주민 노동자 단속·보호 교육이라는 법무부”. 《경향신문》. 2026년 10월 29일에 확인함. 
  7. ↑ 손가영 (2025년 12월 23일). “추락사실 알았나? '법무부 단속 사망' 뚜안, 발견 직후 빠져나간 차 두 대가 출입국 차량?”. 《프레시안》. 2026년 10월 29일에 확인함. 
  8. ↑ “[보도 설명자료] 대구 성서공단에서 베트남인 뚜안 건물 추락 사망 사고 관련”. 《법무부 출입국·외국인정책본부》. 2025년 12월 26일. 2026년 10월 29일에 확인함. 
  9. ↑ 손가영 (2025년 11월 19일). “속출하는 단속 사망… "사람은 토끼몰이 추방, 노동만 '빼먹는' 한국"”. 《프레시안》. 2026년 10월 29일에 확인함. 
  10. ↑ 최용락 (2025년 12월 9일). “"딸 아이 죽음 진실 밝혀지길"…故 뚜안 아버지, 대통령실 앞 농성 돌입”. 《프레시안》. 2026년 10월 29일에 확인함. 
  11. ↑ 11.0 11.1 11.2 11.3 박채연 (2026년 1월 2일). “정부 뒤늦은 사과에···고 뚜안 유족 "반드시 이주민 단속 개선해달라"”. 《경향신문》. 2026년 10월 29일에 확인함. 
  12. ↑ 최용락 (2025년 12월 19일). “연구자 400인 "뚜안 죽음 진상 밝히고, 폭력적 단속 멈춰야"”. 《프레시안》. 2026년 10월 29일에 확인함. 
  13. ↑ 13.0 13.1 박중엽 (2026년 1월 2일). “故 뚜안 사망에 고개 숙인 대구출입국 소장···대책위, “진상규명 이어갈 것””. 《뉴스민》. 
  14. ↑ 14.0 14.1 유선희 (2026년 1월 2일). “법무부, 뚜안씨 유족에 공식 사과···"미등록 이주민 단속 정책 개선"”. 《경향신문》. 2026년 10월 29일에 확인함. 
  15. ↑ @saramiwatta (2026년 1월 1일). “뚜안님 어머니와 아버지 메세지 입니다.”. 《X》. 
  16. ↑ 16.0 16.1 @saramiwatta (2026년 1월 6일). “하지만 투쟁이 마무리되는 것은 아닙니다.”. 《X》. 
  17. ↑ 안지산 (2026년 2월 13일). “법무부 단속 중 숨진 베트남 청년 '뚜안' 산재 인정”. 《경남도민일보》. 2026년 10월 29일에 확인함. 
  18. ↑ 박성우 (2026년 2월 14일). “베트남 이주노동자 고 뚜안씨, 산재 인정 받았다”. 《오마이뉴스》. 2026년 10월 29일에 확인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