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순천

최근 편집: 2018년 8월 7일 (화) 19:00
Dada (토론 | 기여)님의 2018년 8월 7일 (화) 19:00 판
나랏일이 급한데 암탉 수탉 가리지 말고 써야지 언제 저런 병아리를 길러서 쓰겠느냐. 암탉이 낳은 병아리가 저렇게 꼬꼬댁 거리니 길러서 쓰려면 아직도 멀었다.[1]

박순천(朴順天, 1898년 10월 24일 ~ 1983년 1월 9일)은 대한민국정치인이다. 본명은 박명련(朴命連)으로, 만세운동을 주도한 혐의로 수배되어 도망다니다가 순천댁이라 불려서 개명하게 된다. 1948년 최초의 남한단독선거에서 종로에 출마했는데, 이때 종로의 홍등가와 제2부인들, 첩 등은 축첩반대 공창폐지를 외치는 대한부인회 회원들에게 표를 줄 리가 있겠냐는 말을 하기도 했다. 5선의원으로 활약했고, 60년대 내내 민주당 지도부를 맡았다. 서서 16시간을 일하는 여공에게 생리휴가가 필요함을 역설하였다. 국회의원들을 쫒아다니면서 설득하였고, 이후 생리휴가법을 두고 박순천법이라 할 정도로 크게 기여하였다.[2]

  • 제2대, 제4대, 제5대, 제6대, 제7대 국회의원을 역임하였다.

출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