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빠 임성주에게 유교 경전과 사서를 배웠다.[2] 낮에는 가사에 전력하고 밤에는 소리를 낮춰 책을 읽었다고 전해진다.[2] 죽은 뒤 유고 40여 편이 수습되었다.[2] 대부분이 경전 연구와 성리설에 관한 논설 및 중국 역대 위인·영웅·학자들에 대한 인물 논평들이다.[2] 특히 여자와 남자의 존재를 음양의 우주 질서와 같이 상호보완적인 존재로 파악, 똑같이 중요한 필수적 존재일 뿐 우열을 가진 존재라고 보지 않았다.[2]
기념
출처
- ↑ 이혜원 기자 (2019년 5월 10일). “임윤지당 얼 선양 헌다례”. 《원주신문》.
- ↑ 2.0 2.1 2.2 2.3 2.4 2.5 류일형 기자 (2016년 5월 12일). “조선 여성성리학자 1호 '임윤지당'을 아시나요(종합)”. 《연합뉴스》.
- ↑ 배연호 기자 (2014년 5월 14일). “조선 여성 성리학자 임윤지당 헌다례”. 《연합뉴스》.
- ↑ https://news.joins.com/article/8147882
- ↑ https://www.yna.co.kr/view/AKR20140514111300062
- ↑ https://www.yna.co.kr/view/AKR20160512086151062
- ↑ https://www.yna.co.kr/view/AKR20170511029800062
- ↑ http://www.iwjnews.com/news/articleView.html?idxno=21995
- ↑ http://www.jeongpil.com/623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