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차(음료)

최근 편집: 2016년 12월 27일 (화) 01:33
Breadandroses (토론 | 기여)님의 2016년 12월 27일 (화) 01:33 판 (→‎함께 보기)


개요

차나무의 잎을 수확해, 80% 정도 발효시킨 찻잎을 우려낸 음료.

원산지는 중국이지만 전 세계적으로 인기가 많은 기호식품이고, 담배, 커피와 함께 전 세계의 역사를 들었다 놨다 하기도 했다.

근대 유럽에서는 커피를 남성들의 음료로 생각했으며, 따라서 여성들은 커피하우스에 출입하지 못했다. 근대 유럽 여성들의 삶에서는 홍차가 중요한 음료로 취급되었다.



역사

차는 중국이 원산지이며, 대략 차의 역사는 기원전 2737년 신농씨가 차나무를 발견하여 그 잎을 약초로 씀으로서 처음 인간들에게 이용되어 왔다고 알려져 온다.

고대 중국에서부터 제다용 도구를 사용했으며, 이때는 아직 차를 우려내어 마시는 방식이 보편적이지 않았다. 차를 우려내기 시작한 것은 당나라 때부터. 불교 승려들은 술을 멀리하고 마음을 깨끗이 하기 위하여 차를 즐겨 마셨는데, 그 영향으로 차를 마시는 방식이 널리 퍼지기 시작했다.


1599년 영국의 엘리자베스 1세는 동인도 회사를 설립하였다. 이 동인도 회사는 이후 1834년까지 홍차 무역을 반독점했다. 1645년에는 런던에 처음 홍차가 유통되었다.

1773년, 동인도 회사의 차 판매 독점과 지나친 과세에 분노한 보스턴 시민들이 차를 바다로 던진 보스턴 티 파티 사건이 벌어졌다. 이 사건은 후에 미국의 독립전쟁으로 이어졌다.

18세기 말에는 중국과의 차 무역에서 적자를 보던 영국이 중국에 아편을 판매하기 시작했다. 이로 인해 양국의 긴장 관계가 고조되었고, 1839년 제1차 아편 전쟁이 발발했다. 전쟁은 1842년 중국의 패배로 끝났고, 중국은 난징 조약을 체결했다. 제2차 아편 전쟁은 1856년 발발해 1860년 역시 중국의 패배로 끝났다. 중국은 이 전쟁 끝에 텐진 조약을 체결하여 영국에게 무역상의 이득을 주게 되었다.


홍차와 여성

상술하였듯이 근대 유럽에서 커피는 남성의 음료로 취급받았으며, 커피하우스는 남성들만이 사회적 활동을 하는 공간으로 이용되었다. 남성들은 커피하우스에서 커피를 마시고, 신문을 읽고, 당구를 치며 증권거래정보를 주고받았으며, 단골 카페를 자기 사무실처럼 이용하는 남성도 있었다.

자연스럽게 여성들은 커피하우스에 출입하지 못했다. 여성들은 살롱에서 홍차나 핫 초콜릿을 마시며 티타임을 가졌다.


우려내는 법

홍차잎 3g에 뜨거운 물 300ml를 붓고 3분 동안 우려낸다. 이것을 흔히 3.3.3 용법이라고 한다.

그러나 이것은 유럽의 기준이며, 수질이 다른 한국에서는 다른 기준을 적용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3분이라는 시간은 한국의 수질에는 맞지 않고 차가 지나치게 떫어지니 2분 가량이 적절하다고 한다.


티백을 사용할 때에는 절대 티백을 흔들거나 꾹꾹 짜서는 안 된다. 뜨거운 물이 담긴 컵에 티백을 미끄러뜨리듯 넣은 다음, 2-3분 정도를 기다려 티백을 꺼낸 다음 마시면 된다.


종류

기문

아쌈

다즐링

운남

닐기리

케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