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매매가 불법이기 때문에 성매매여성 역시 불법이라는 현행 성매매처벌법 처벌조항은 틀렸습니다. ‘성매매’는 여성을 물화하고 통제할 권한을 상품화한 산업으로 그 권력관계가 명백히 불평등한 기울어진 장입니다. 그러나 현행 성매매처벌법은 이 권력관계를 부정하며 성을 파는, 사는, 알선하는 이들을 “행위자”로 퉁쳐 이들 모두를 처벌대상으로 간주합니다. 이룸은 성매매산업을 규제하고 금지하는 발상과 성매매여성을 규제하고 범죄화하는 사회적 통제를 구별하여 법정책이 집행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자본과 국가는 성매매여성을 범죄화하고, 낙인찍고, 통제함으로써 더 많은 이익을 창출하기 때문에 산업 규제와 여성 처벌을 분리하지 않고 이 둘을 동일시하고 있습니다.
최근 있었던 인천시 ‘옐로하우스’ 4호집에 대한 명도소송 결과가 딱 이 꼴입니다. 인천지법 형사9단독 이해빈 판사는 성매매 여성들이 업주에게 월세를 지불하며 살아온 사실관계는 인정하면서도 성매매가 법적으로 처벌대상이므로 임대 계약이 무효라고 선언했습니다. 재개발 조합에서 임대차계약이 “선량한 풍속 기타 사회질서나 강행법류에 위반돼 무효”라며 명도소송을 걸어 온 주장이 옳다고 판단한 것입니다. 법적으로 같은 처벌대상이면서도 성매매 여성들을 착취함으로써 지역 경제를 유지해 온 지역사회의 책임은 묻지 않습니다.
보상금을 받고 이미 다른 지역으로 떠난 업주나 건물주의 책임 역시 묻지 않습니다. 아마도 ‘옐로하우스’의 건물주와 업주들은 상당히 높은 월세(깔세)를 받으며 살아왔을 것입니다. 그 월세는 집결지 여성들이 쉴 수 없는 이유였을 것이고 빚이 늘어나는 이유였을 것이며 건물주와 업주들이 집결지의 오래되고 낡은 건물을 전혀 개조하거나 점검하지 않고도 잘~사는 원천이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렇게 여성들을 못 쉬게 하고 빚 갚게 하던 업주와 건물주는 당당하게 재개발에 따른 보상금을 받았겠지요. 재개발 조합에 들어가 또 다른 돈벌이를 위해 성매매를 금지하고 집결지를 폐쇄하라고 소리 높이고 있겠지요.
이들을 처벌하지 않고, 이들이 여성을 착취하며 부당하게 쌓아온 재산은 몰수하지 않고 오직 임대차계약만 성매매를 목적으로 했으니 민법상 무효라니요. 여성이 그 공간에서 실제로 살아왔기 때문에 만들어진 재산의 소유권은 인정하면서도 그 공간에 대한 여성의 권리는 부정하는 데에 성매매처벌법이 활용되어서는 안 됩니다. 성매매 집결지 여성들의 뼈아픈 죽음으로 만들어진 성매매 방지법을 성매매 집결지 여성을 불법화하고 그들의 권리를 박탈할 근거로 거론한 인천지법 형사9단독 이해빈 판사의 판결은 성매매에 이해 없이 방지법의 모든 맥락을 탈각시킨 최악의 판결입니다.
이룸은 인천시 성매매 집결지 재개발 과정을 보며 청량리 성매매 집결지를 떠올립니다. 집결지에서 오랜 기간 실질적인 거주자이자 세입자로 생활해왔지만 여성들은 재개발에 따른 보상금을 받을 권한이 제한되었습니다. 시공사는 재개발 조합으로 보상금을 내려보냈고, 재개발 조합을 구성하고 있는 다수가 집결지에서 여성들을 착취하며 이익을 착복해 온 업주들이었기에 이들은 제멋대로 보상금을 분배했습니다. 업주와의 이해관계에 따라 여성들은 보상금을 받거나, 받을 수 없었고 그 어떤 결정권한도 갖지 못했습니다. 성매매 여성을 ‘시민’으로 간주하지 않는 재개발 과정이 인천에서도 반복되는 중입니다.
여성들로부터 특정한 공간에서 실제로 거주하고 생활해온 시민으로서의 권리를 박탈하지 마십시오. 성매매 집결지에서 생활해온 종사 여성들이야말로 실거주자이며 공간의 주인입니다. 지역 주민입니다.
그럼에도 사회적 낙인과 편견, 빈곤이라는 환경으로 인해 제대로 목소리 내기 어려운 성매매 여성들의 조건을 악용한 자본과 지역사회의 돈벌이를 규탄합니다. 명백한 실거주자인 여성들에게 너희는 이 지역에 대한 권한이 없다고 주장하는 재개발 조합을, 보상금은 재개발 조합에서 알아서 분배하기로 했다며 분쟁 과정에서 실종되는 시공사를, 그 동안 집결지 여성들을 착취하는 데에 동조하고 관망해 놓곤 민간 자본의 문제라며 발 빼는 지자체와 정부를 공론장으로 끌어와야 합니다.
자신들이 성매매 알선으로 돈 벌어놓고 성매매 불법이라며 여성들을 압박하는 업주들의 뻔뻔함은 불법이 아닌가봅니다. 이들은 어디로 사라지고 ‘명도소송’만 남았습니까?
성매매집결지 재개발 과정에 업주, 재개발조합, 시공사, 지자체, 정부의 책임을 물어야 합니다. 이들이 제 배 불리겠다고 여성들을 착취해 온 역사를 잊지 않을 것입니다.
2020년 2월 코로나 시대의 옐로하우스
코로나 바이러스와 같은 감염병이 돌면 집결지는 큰 타격을 받기에 시내 곳곳에서 방역작업을 하지만 옐로하우스는 유흥업소나 음식점으로 등록되지 않아 별다른 조치가 없었다.
2020년 6월
옐로우하우스 이주대책위입니다.
오랜만에 기쁜 소식으로 인사드립니다.
많은 분들의 연대와 응원 속에 옐로우하우스가 조합과의 합의를 이뤄냈습니다.
합의 내용을 일일이 말씀드릴 순 없지만 이주대책이 전무했던 그동안의 상황을 극복하고 민형사상 고소고발을 모두 취하하기로 하였습니다. 그리고 구청의 지원 조례도 이번 합의 내용과 무관하게 받아내기로 했습니다. 합의에 힘써준 구청과 조합에게도 수고하셨다는 말 전합니다.
그동안 우리는 옐로우하우스에 거주하면서 구청 앞 노숙농성, 기자회견, 문화행사를 통해 개발에 따른 이주대책과 권리를 끊임없이 요구해왔습니다. 처음에는 아무도 발걸음을 하지 않아 힘든 시간을 보내야만 했습니다. 시간이 지나면 좋아지겠지 하는 바람도 사라졌고 사람들의 시선도 곱지만은 않았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포기하지 않고 우리의 문제를 알리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결국 사람들이 모이기 시작했고 관심을 가지고 기사를 써주신 분들도 생기고 크고 작은 행사도 진행할 수 있었습니다. 함께 탄원서도 내고 기자회견도 하고 힘겨운 법정 싸움도 대응할 수 있었습니다. 이 모든 걸 처음 경험한 우리는 더 열심히 움직였고 최선을 다하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이런 우리들에게 좋은 말이 돌아오지는 않았습니다. 우리는 ‘법대로 보상을 안 해줘도 되는데 왜 떼를 쓰냐’는 말을 들어야 했고, 무엇보다 ‘그럴 자격이 있는지’ 매일매일 혐오와 낙인의 시간을 보내야 했습니다. 급기야 코로나19가 더해져 힘든 상황은 눈덩이처럼 커져만 갔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권리를 찾는 일을 절대 멈출 수 없었습니다. 우리는 집회와 시위를 할 수 없는 상황에서 대화를 위해 온 힘을 쏟았고 그 결과 3개월의 긴 협의를 마치고 중재와 협의를 이끌어냈습니다.
얼마 전 우리는 정들었던 곳 ‘옐로우하우스’를 떠났습니다. 그동안 새로운 집과 일을 알아보느라 경황이 없었고 그래서 소식을 늦게 전하게 되었습니다. 다시 한번 관심 가져주시고 연대해 주신 분들께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 함께 달려와 주시고 싸워 주시고 머리 맞대주신 분들 감사합니다. 먼 곳에서 말 한마디로 큰 힘 더해주신 분들 고맙습니다. 그리고 성명을 통해 옐로우하우스를 응원해 주신 단체들에게도 깊이 감사드립니다.
일일이 찾아뵙고 감사 말씀 전하지 못해 죄송합니다. 저희가 받았던 관심과 응원과 연대의 시간들은 마음속에 잘 담아두겠습니다. 이 소중한 경험들 절대 잊어버리지 않고 자만하지 않고 꼭 함께 나누도록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2020년 6월 17일
옐로우하우스 이주대책위
주홍빛연대 차차 옐로하우스 집결지 폐쇄에 부쳐
집결지 여성들의 기억을 횡단하고, 연결하고, 구성하는 건 우리의 몫이다- 옐로하우스 집결지 폐쇄에 부쳐
인천항이 개항된 이후 숭의동 일대의 옐로하우스는 미군들과 외국 선원들이 주된 손님이었다. 미군에게 노란색 페인트를 얻어 건물에 칠했다는 사실에서 이름이 유래한 옐로하우스는 2006년 재개발 구역으로 지정되고, 2018년 6월 정비사업을 지역주택사업으로 전환하면서 철거에 속도가 붙었다. 그리고 2018년부터 지역주택조합을 상대로 싸움을 이어오던 4호 집 옐로 하우스 이주대책위는 2020년 5월, 조합과 합의를 이뤄냈다.
일제 강점기 조선 시대 때 설치된 성매매 집결지와 공창제도는 국가가 집결지를 공식적으로 승인하고, 지역경제를 벌어들이는 수단으로써 여성들의 몸을 이용했다. 해방 이후엔 국가가 나서서 하나의 '사업'으로 외화벌이를 위한 공간인 기지촌-집결지를 '보호'했고, 집결지 여성들을 통제했다. 현재 국가는 성매매 집결지를 특정 구역으로 지정하고, ‘청소년 출입금지구역’이라는 이름을 붙여 집결지를 일반인이 보거나 드나들 수 없는 구역으로 분리해서 관리하고 있다.
과거부터 성매매 집결지는 국가와 남성들이 여성의 몸을 착취하며 이윤을 창출하던 공간이었다. 옐로하우스 지역주택조합의 경우, 옐로하우스에서 성노동자들을 수년간 착취한 업주들은 여성들이 벌어들인 돈으로 자신들의 건물을 쌓아 올리고 새 차를 샀으며, 성노동자에겐 빚을 쌓아 올렸다. 성매매 집결지는 시간이 지날수록 낙후된 지역으로 변모하였고, 업주들은 예전과 같이 이윤을 창출할 수 없게 되자 개발이익을 노리기 시작했다. 업주들은 재개발•뉴타운 열풍에 맞춰 마지막으로 큰 자본을 만질 수 있는 재개발 사업에 뛰어들었고, 재개발 이해당사자로 엮인 지역주택조합의 일부분으로 자리 잡았다. 그리고 국가와 남성들은 다시 한번 여성들을 강제로 내쫓아 재개발 이익을 챙기기 시작했다.
2018년부터 옐로하우스 철거를 진행하며, 불법적으로 시도되는 철거작업, CCTV 불법 촬영, 포크레인과 같은 중장비로 위협하며 사람에게 폭력을 가하는 행위, 사람이 안에 있는데 건물을 훼손하는 행위와 같은 비인권적인 강제철거가 진행됐다.
지역주택조합은 1급 발암물질인 석면을 방치한 채 철거를 강행하다 철거 중지 명령을 받기도 했으나, 이 과정에서 옐로 하우스 여성들은 여성부, 시청, 구청, 경찰, 국가권익위원회 그 어떤 기관으로부터 도움을 받지 못했다. 그러던 중 조합은 사업시행인가를 받기 위해 갑자기 형식적인 절차로 명도소송을 진행하기 시작했다.
일반적으로 명도는 법적 소유권이 분명하고 사전에 임대차 관계를 해소해야만 가능하다. 하지만 지역주택조합은 옐로하우스 여성들이 계약서 없이 임차한 사실을 악용해 10년 전 세입자에게 임대차가 종료되었다는 서류를 만들어 법원에 제출했고, 위장 불법 명도소송이 진행됐다.
인천지방법원에서는 “이 사건에서의 임대차계약은 성매매 알선 등 행위와 성매매를 목적으로 하는 법률행위로서 그 반사회질서적인 동기가 상대방에게 알려진 경우에 해당해 무효라고 보는 것이 옳다”며 조합의 손을 들어줬다. 이러한 판결을 미루어 볼 때, 성노동자 여성들은 '성매매' 행위에 가담했다는 이유만으로 주거권을 박탈당하지만, 성매매 알선 행위를 했던 업주 건물주들은 오히려 이익을 챙길 수 있도록 법에서 보장해주고 있다.
성노동자들은 법의 보호를 받기 위해 전입신고를 해야 하지만, 근로계약서를 쓰기는커녕 업소에서 생활한다 해도 전입신고를 하지 못한다. 전입신고는 임차인으로 있는 업주가 할 것이고, 성노동자는 주민등록상 거주지와 실거주지가 일치하지 않을 것이다. 집결지라는 특정 구역에서 생활했던 게 기록으로 남게 되면 사회에서 성노동자는 더는 살아갈 수 없기 때문이다.
옐로 하우스 여성들이 '성매매'를 했기 때문에 임대차법이 무효라는 판결은, 그동안 8년을 살아온 집과 일터에서 국가와 자본이 결탁해 힘없는 여성들의 공간을 철거하는 행위와 같다. 집결지를 만들고, 여성들을 유입시키고, 여성들을 그동안 착취하며 막대한 이익을 벌어들인 주체들에 대한 처벌은 전혀 이루어지지 않고, 오직 힘없는 성노동자 여성들만을 '성노동자'라는 이유만으로 너무나 명백하게 차별했다. 옐로하우스 이주대책위 여성들은 '성매매특별법'에서 성노동자를 처벌하기 때문에 자신의 주거권에 대해 목소리 낼 수조차 없는 상황에 이르렀다.
그러나 옐로하우스 이주대책위 여성들은 다부지고 강인한 힘으로 권력과 자본의 편을 드는 판결을 문제 삼고, 맞서 싸우며 계속해서 지역주택조합과 합의를 이뤄냈다. 이것은 온전히 옐로하우스 이주대책위 여성들이 자신들의 힘으로 문제 상황을 인식하고, 고발하고, 문제 상황을 해결하고자 뛰어다녔던 노력의 결실이고, 우리는 이에 존중과 존경의 마음을 담아 보낸다.
집결지 폐쇄에 항상 딜레마가 있다. 집결지 여성들은 분명 집결지 너머를 넘어서 생존할 공간이 필요하지만 그런 공간이 부재하다는 사실과 집결지는 언젠가 모두 사라지게 될 예정이라는 현실이다. 국가는 성매매 여성 조례지원이 아니라, 더 근본적이고 체계적인 집결지 성노동자 재개발 지원 정책을 구축해나가야 한다. 국가는 이제 와서 집결지 재개발 문제는 민간 자본이 개입하는 문제라고 책임지지 않으려 발뺌하는 게 아니라, 성매매 집결지를 공식적으로 승인하고 통제해온 역사를 기억하고, 국가는 남성과 자본의 편만을 드는 것이 아니라 집결지 재개발 과정에서 흔적도 없이 사라져버리는 여성들을 위한 복지 제도를 만들어나가야 한다.
더 이상 남성들이 원하는 것처럼 집결지 여성들이 재개발 논리에 휘감겨 소리 없이 사라지는 일은 없을 것이다. 집결지 여성들이 증언하고, 고발하는 행위를 통해 남성들의 독선을 막을 것이며, 우리는 듣고, 기억하고, 기록하여 여성들의 곁에 남아 잊지 않을 것이다. 피해 사실을 망각해야 살아갈 수 있는 사회가 아닌, 기억을 횡단하고, 연결하고, 구성하여 상처를 치유할 수 있는 시간을 만들어나갈 것이다. 옐로 하우스 여성들의 승리를 축하하며, 옐로 하우스 집결지 폐쇄에 부쳐, 우리는 옐로 하우스 여성들의 투쟁 역사를 기억할 것이다.
인천 미추홀구 숭의1구역 옐로 하우스 이주대책위원회
활동
- 2019.08.13 국민인권위원회 탄원서 제출 [25]
- 2019.08.31 인천퀴어문화축제 부스,행진 참가[26]
- 2019.09.26 옐로 하우스 SNS 릴레이 연대 '숭의 1구역 철거 현장, 1급 발암물질 석면검출+ 주민들 안전위협하는 석면관리 못한 업체 옹호하는 행위는 즉각 중단하고 제대로 처리하고 관리하라! 조합은 불법 cctv 촬영으로 남아서 투쟁하는 4호집 종사자들을 감시와 통제하는 행위를 당장 멈춰라!'[27]
- 2019.10.05 제2회 세계 여/성노동자 대회 부스 참가[28]
- 2019.10.12 주홍빛연대 차차X옐로 하우스 대책위 빈곤철폐의 날 퍼레이드 참가[29]
- 2019.10.14 ‘숭의1구역 철거현장 석면 방치에 따른 미추홀구청 규탄 기자회견’[30]
옐로 하우스 비가 시리즈
https://news.joins.com/Issue/11161
①그녀의 가장 비싼 옷은 7만원 점퍼였다
인천 미추홀구 숭의동에는 속칭 ‘옐로하우스’라는 집창촌이 있다. 인천항에 있던 업소들이 1962년 이전하면서 터를 잡았다. 한때 33개 업소에서 700여명이 일하던 이곳은 2004년 성매매특별법이 제정되면서 사양길에 들어섰다. 지난해 재개발이 추진되면서 현재 남아있는 업소는 10개 정도. 40여명의 성매매 여성과 20여명의 업소 직원(주방 이모)이 있다. 이들에게 ”이번 달 안에 업소를 비우라“는 통첩이 날아들었다. 57년을 이어온 현장에 마지막 시간이 다가왔다.
대구 ‘자갈마당’ 등 다른 지역 집창촌 역시 부동산 개발, 문화 재생사업을 이유로 폐쇄 수순을 밟고 있다.
옐로 하우스에서 만난 여성들은 대개 가족 부양을 위해 성매매에 발을 들였다고 했다. 이 일을 그만두고 다른 일도 해봤지만 빚이 쌓이고 다시 여기로 돌아오게 된다고 했다.[31]
②전자발찌 찬 손님···봉변 당할지 몰라 모른척만
‘환락가’라는 단어가 등장한 건 이곳에 즐거움만 가득할 것 같은 선입견 때문이리라. 그러나 이곳 여성들의 마음엔 두려움과 공포의 경험들이 깊이 새겨져 있다.
윤락 업소의 경우 불법이니까 성매매 자체가 위법이지만 일률적으로 출입을 금지하긴 어려운 상황이다. 결론적으로 전자발찌 부착자가 성매매 업소에 드나드는 건 얼마든 가능해 보인다. 문제는 이곳 여성들이 우범자를 손님으로 맞닥뜨렸을 때 어떤 선택지를 가질 수 있느냐는 것이다. 인터뷰한 여성 중에는 ”흉포한 모습이 보여도 우리가 감당해야 할 몫“이라는 대답이 의외로 많았다.
“성 충동을 억제하지 못하는 우범자들이 이곳을 다녀가는 것만으로도 우리 사회에 성범죄가 줄어드는 효과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53세 여성 B씨)
물론 정반대 의견도 많다. 성매매가 불법인 현실에서 논쟁은 무의미할지 모른다. 그러나 오늘도 학교 주변 주택가에 뿌려지는 성매매 전단과 명함들을 보면서 누구의 말이 옳은지 고민이 깊어진다.[32]
③매 맞고도 빌어야 했다···법이 외면한 '악몽의 밤'
“동료 머리채를 잡고 침대 모서리에 머리를 세게 몇 번이나 박은 남성도 있었어요. 말리는 이모까지 때리려 하더군요. 방에 있는 TV·조명을 부수는 남성, 같이 술 마시다가 여성에게 술병 집어 던지는 남성 등등 어떤 날은 하루에 몇 번이나 그런 일이 벌어져요. 폭행을 하고선 그냥 태연하게 사라져요.” 이들이 무방비로 당하는 건 신고를 못하기 때문이다. 신고했다가 성매매로 적발되면 업주는 물론 이모·여성들까지 벌금을 내야 한다. B씨는 “가해 남성의 인적사항도 모르는데 무엇을 할 수 있겠느냐”며 답답해했다.
또 많은 사람들이 때리는 손님들보다 이 여성들이 나쁘다고 탓할지 모른다. 하지만 이 시대에 매를 맞고 도리어 빌어야 하는 사람들이 우리 곁에 있다는 사실을 언제까지 받아들여야 할까.[33]
④수건에 감춘 렌즈…그는 '몰카'가 목적이었다
인천 미추홀구 여성·가정문제 시민단체인 강강술래 측은 “관련 상담과 제보를 받은 적이 없다”고 밝혔다. 한국사이버성폭력대응센터 관계자는 “성매매 중 불법 촬영으로 불법 유포가 된 사례가 있다”고 말했다. 신고는 미미하다. 2017년부터 현재까지 이곳에 접수된 성매매 여성 몰카 피해 사례는 10건 미만에 불과하다.[34]
⑤"우리도 바바리맨 처벌 원하지만…"
“비만 오면 옷을 다 벗고 동영상을 찍는 남성이 있어요. 멀쩡한 차림으로 나타나는 걸 보면 돈이 없어서 그런 건 아닌 거 같아요. 자기들 욕심을 채우고 나서 보수를 주면 죄가 안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인지 1만원짜리를 놓고 가기도 하고, 작년 겨울엔 가게 앞에 눈을 치우고 가는 사람도 있었어요. 그러나 우리는 큰 모욕감을 느낍니다.”
“사실 그들을 보면서 차라리 여기로 오는 게 낫다는 생각이 들 때도 있어요. 우리야 무섭고 불쾌하지만 이곳을 못 온다면 여학교 같은데 갈 수 있잖아요.
혼자 있는 여성을 범행 대상으로 한다면 더 무서운 범죄로 이어질 수도 있겠지요. 그래도 우리는 여럿이 있으니 흉악한 범죄로 연결될 가능성은 작다고 생각해요.”
옐로 하우스 취재 전에는 상상도 못 했던 우리 사회의 그늘진 단면들이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새롭게 나타난다. 지금 동시다발적으로 추진하고 있는 집창촌 폐쇄가 새로운 범죄 가능성에 대한 대비를 충분히 마련한 상태에서 진행되는 것인지 점검이 필요하다.[35]
⑥성매매女 2260만원씩 지원? 예산 9040만원뿐
미추홀구는 지난해 9월 ‘성매매 피해자의 자활 지원 조례 시행규칙’을 공포하며 2019년부터 4년 동안 여성 한 명당 1년씩 연 최대 2260만원을 지원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탈성매매가 조건이며 활동가와 교육 담당자가 상황을 점검해 다시 성매매하면 지원금을 환수당한다. 주거비는 일정 기간 뒤 갚아야 한다.
“수입을 떠나 무언가 배울 수 있다는 점에서 한두 달 정도는 좋았어요. 그런데 성매매 근절 캠페인에 참여해야 하는 등 시간이 갈수록 광고 선전용으로 이용당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얼굴이 다 알려진다는 것이 가장 두렵거든요. 정말 우리 삶을 염려해주는 것인지 의문이 들었습니다.”[36]
⑦"TV서 가족 모습 나오면 눈물 나" 마지막 설 보내는 여성들
‘옐로하우스 비가’를 연재하는 동안에도 여성들은 집을 비우라는 압박을 계속 받고 있었다. 1월 31일 오후 옐로하우스를 찾았다. 설 연휴가 코앞이지만 정적만 감돌았다. 조합 측이 1월 “설 이후 철거를 시작하겠다”고 통보한 탓에 뒤숭숭한 분위기였다.
여성들은 조합이 강제 철거를 시도할까 봐 겁먹고 있다. 지난달 이곳 주민이 철거업체 관계자에게 떠밀려 다친 사건도 있었다. 2016년 12월 서울 전농동 집창촌 ‘청량리588’에서는 강제 철거 과정에서 성매매 업소 종사자 등 일부 주민과 재개발추진위원회 간 물리적 충돌이 발생했다. 허선우 미추홀경찰서 정보보안과장은 “돌발사태에 대비하고 있다. 철거 시 충돌이 벌어지면 인원을 배치하겠다”고 말했다. B씨는 올해 명절 당일 차례를 지내고 올 계획이었지만 철거 걱정에 업소를 비울 수 없게 됐다. 그는 “설 분위기가 전혀 나지 않는다”며 “내가 처음 집창촌에 발을 들인 30년 전과 세상이 너무나 달라졌다”고 말했다.[37]
⑧"한 명 데려오면 200만원"···성매매 시작은 인신매매
업주가 ‘조금 일해보고 마음에 안 들면 나가라’고 하는 거예요. 하지만 마음대로 나갈 수 있는 분위기가 아니라는 걸 깨닫는 데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어요.” B씨가 한스러운 듯 울음을 터뜨렸다.
80년대에 여성이 납치, 취업 사기 등으로 집창촌에 팔려 가는 일은 비일비재했다. 90년대 후반까지도 신문 사회면에서 관련 기사를 볼 수 있었다.
이런 엄청난 인권 유린의 이면에 군사독재 정부가 도사리고 있었다는 견해도 있다. 박정미 충북대 사회학과 교수는 “한국형사정책연구원이 1985~91년 인신매매 형사 사건을 분석한 결과 여성 피해자의 84%가 성 산업에 매매(성매매 업소로 팔려갔다는 의미)됐다”며 “80년대 전두환 정부의 유흥·향락 산업에 대한 규제 완화로 업계 규모가 커지면서 여성을 공급하기 위한 인신매매가 증가했다”고 말했다. 박 교수는 당시 정부의 규제 완화가 내수 확대 정책의 일환이었지만 사실은 시민의 정치적 자유와 민주화 열망이 유흥으로 옮겨가게 하기 위한 전략이었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집창촌은 ‘성매매가 사실상 허용된 곳’으로 시민들 삶의 공간에 뿌리를 깊게 뻗을 수 있었고 돈이 필요한 여성들을 불러모으며 오늘까지 이어져 온 셈이다.[38]
⑨ 성매매 여성 종착지는 섬···"모두 한통속, 죽어야 나온다"
“같이 일하던 언니가 손님을 가장한 인신매매범에게 속아 전라도 외진 마을로 잡혀갔어요. 울면서 내보내 달라니까 속옷만 입혀 다락에 가둬놓더래요. 나중에 보니 담뱃불로 지진 자국이 한가득이에요. 겨우 속옷만 입은 채 도망 나와 택시를 탔는데, ‘아무 경찰서나 가자’라니까 한 바퀴 돌더니 다시 업소에 내려주더라는 거예요.”
“특히 섬 있잖아요. ○○도 같은 곳은 우리끼리 얘기로 죽어야 나올 수 있다고 했어요. 도망치려면 배를 타야 하는데 업주·선장이 모두 한통속이거든요. 경찰도 믿을 수 없다는 얘기도 했어요. 단골손님도 못 믿어요.”
○○도는 성매매 여성들 사이에서 마지막 가는 곳으로 여겨졌다. 육지의 항구에서 배를 타고 2시간 정도 들어가야 나오는 섬이라는 특수성 때문에 폐쇄적이라는 인식이 강했다.
때론 성매매 여성들이 집창촌에 사실상 감금된 미성년자를 탈출시키기도 한다. “딱 봐도 어린앤데 스무 살이래요. 맨날 아프다면서 우는 거예요. ‘도망가면 다시는 이런 데 안 올 거냐’고 물으니 절대 안 온대요. 친한 언니들과 짜고 목욕탕에서 이모의 관심을 딴 데로 돌리게 하고 그 틈을 타 도망가게 했어요. 차비를 주고 무조건 기차역으로 가라 했지요.”
범죄가 가능한 이유는 성매매 여성의 목소리를 들으려는 사람이 없기 때문이다. 불법 행위자의 낙인이 찍힌 이 여성들은 도움을 청하려는 생각도 못 하고, 숨죽인 채 갖은 협박과 폭력에 시달릴 뿐이다.[39]
⑩ "이렇게 영업하는데 왜 불법?" 외신기자 놀라게 한 집창촌
B씨가 자갈마당이 허가받은 집창촌인 줄 알았던 이유가 또 있다. 그는 이곳에 있었던 2~3년 동안 경찰이 단속하는 것을 한 번도 보지 못했다고 했다. “솔직히 법적 허가를 받지 못한 곳이란 걸 알고 나서도 반(半)공창이라고 생각했어요. 간혹 술 취한 손님이 ‘돈 낸 만큼 못 놀았다’며 가까운 파출소에 신고했는데 업주나 이모가 갈 필요도 없어요. 파출소에서 전화로 ‘몇 호 누구’ 이렇게 호출하면 가서 앉아있기만 하면 돼요. 경찰관이 손님에게 ‘그만 하면 잘 노셨다’면서 조서도 안 쓰고 알아서 다 처리해줬으니까요.”
B씨는 “지난해 미국인 외신기자가 옐로하우스에 취재하러 와
‘이렇게 공개적으로 영업하는데 불법이라는 것이 놀랍다’고 하더라”며 “집창촌에서는 수십 년 동안 국가의 암묵적 동의 아래 성매매가 이어져 왔으며 앞으로도 어디서든 성매매는 없어지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80년대 후반 여성 업주의 학대를 못 이겨 자갈마당에서 나와 부산 완월동(현 서구 충무동) 집창촌으로 갔다. 부산에선 또다른 고통이 기다리고 있었다.[40]
⑪ 70년대 일본인 기생관광 붐… "정부는 애국 행위라며 장려했다"
부산 완월동 집창촌은 우리나라 최초의 성매매 집결지다. 1900년대 일제가 항구 근처인 이곳에 집창촌을 조성한 이후 80년대까지 번성했다.
이곳에서는 주로 일본인 단체관광객이나 야쿠자(일본의 조직폭력배)를 상대했다. 손님 10명 가운데 9명은 일본인이었다. 3박 4일 동안 함께 부산 남포동, 경기도 용인 민속촌, 제주도를 다니며 관광 가이드 노릇도 했다. “야쿠자가 오면 부산의 폭력 조직이 접대했어요. 우리는 기생파티 하듯이 한복을 갖춰 입고 그들을 맞았습니다.
차밍스쿨과 함께 외부 사설학원에 다니며 일본어는 물론 다도·예의범절·걸음걸이까지 배웠어요. 일종의 외화벌이지요.” B씨는 아직도 일본어를 제법 한다.
“일본인들이 한국에 ‘현지처’를 많이 뒀어요. 저도 마담에게 60대 일본인 골프장 사장을 소개받았는데 솔직히 치가 떨렸어요. 쭈글쭈글한 노인이 제 코앞에서 ‘가와이네, 가와이네(귀엽다의 일본말)’ 하는데 나라 힘이 약하니까 어린 한국 아가씨들이 이런 일을 겪는구나 싶었어요. 그 서러움은 겪어보지 않은 사람은 상상하지 못할 겁니다. 높으신 분들은 몰랐을 테지요.”[41]
⑫ 성매매 그만두려 얼굴 자해…극단적 선택 시도 23배 높아
이곳 여성들을 극단적 생각으로 내모는 원인을 나열하면 다른 사람들과 비슷하다. 외로움과 고립감, 돈 문제, 왕따 문제, 이성 문제, 급격한 체중 증가 등 세상 사람들이 겪는 문제들이 이들에게도 찾아온다. 문제는, 이들이 다른 사람들보다 항상 긴장하고 숨기고 사는 탓에 한층 더 예민하며 불안 요소가 찾아왔을 때 우울감이 증폭된다는 점이다. 더욱이 남들에게 도움이나 위안을 청하기도 힘들다.
빈번하게 맞닥뜨리는 손님의 멸시도 이들의 자존감을 바닥으로 떨어뜨린다. 손님의 무리한 요구를 거절하면 ”몸 파는 ○이 자존심을 세우는 거냐“ ”○○ 주제에 무슨 말이 그렇게 많냐“는 욕설이 날아든다는 것이다. 이런 말을 처음 들었을 땐 울면서 마음을 달랬지만 반복적으로 듣다 보면 삶에 회의가 든다고 한다.
성노동자 여성의 자활을 돕는 부산여성지원센터의 한 활동가는 “위험에 노출된 환경에서 살다 보니 탈성매매 후 자활을 하더라도 일반인처럼 살기 어렵다는 여성이 많다”며 “이들을 위한 체계적 제도가 필요하다”고 말했다.[42]
⑬“말도 안 통하는 미군들 상대로…” 기지촌 여성의 비애
2010년을 전후해 2년 정도 동두천 집창촌에 있었다는 또 다른 옐로하우스 여성은 좀 다른 기억을 얘기했다. 그의 말이다. “의외로 그렇지 않아요. 매너 좋고 약속 잘 지키고요. 뭐든 ‘노(No)’라고 하면 존중해 줬어요. 근처에 양키시장이 있어 평일에는 미국인 바이어들도 자주 왔는데 이런 일 한다고 무시하지 않고 편견 없이 대해줬어요.”
“기지촌 여성들이 말도 안 통하는 미군들을 상대하며 무언가 역할을 한 셈입니다. 당시에 여성들 사이에선 외화벌이로 경제 발전에 조금이나마 기여했다는 나름의 자부심도 있었어요.
인권이 뭔지도 몰랐고 그냥 팔자라고 여기고 살았으니까요. 생각하면 눈물이 나요.”
재판부는 “이들이 자발적으로 기지촌 성매매를 시작했더라도 정부가 이를 기화로 이들의 성과 인간적 존엄성을 군사동맹의 공고화 또는 외화 획득의 수단으로 삼은 이상, 이들의 정신적 피해가 인정된다”고 밝혔다.[43]
⑭ "집, 돌아가고 싶지 않은 곳" 옐로하우스서 버티는 여성들
이곳 여성들에게는 옐로하우스가 집이자 일터다. 주민등록상 주소를 이곳에 둔 여성도 많다. 한 여성은 “업주가 여성들의 출·퇴근 등을 쉽게 관리하기 위해 살든 안 살든 방세를 받고 무조건 방 하나씩을 내준다”며 “오래전부터 이곳에서 숙식하며 지내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했다”고 말했다.
옐로하우스에서 만난 또 다른 30대 여성은 “집이라고 하면 나와는 상관없는 곳이라는 느낌이 든다. 나에게는 없는 곳, 가고 싶지 않은 곳”이라고 했다.
30대 여성은 “모든 성매매 여성에게 구구절절한 사연이 있는 건 아니다. 어렸을 때 방황하다 돈 버는 재미로 들어왔거나 실제 돈을 모아 나간 여성들도 있긴 하다”며 “하지만 그런 여성은 많지 않으며 나 같은 사람들은 쳇바퀴처럼 아무리 발버둥 쳐도 경제적 어려움에서 빠져나갈 수 없는 구조"라고 말했다. 그는 “이곳 여성들 대다수가 어려운 가정사가 아니었다면 여기에 오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지역주택조합 측은 건물주에게 보상금을 모두 지급했다며 3월 말까지 철거를 끝낸다는 계획이다.[44]
출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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