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순천

최근 편집: 2021년 8월 8일 (일) 13:22
사회인권 (토론 | 기여)님의 2021년 8월 8일 (일) 13:22 판
나랏일이 급한데 암탉 수탉 가리지 말고 써야지 언제 저런 병아리를 길러서 쓰겠느냐. 암탉이 낳은 병아리가 저렇게 꼬꼬댁 거리니 길러서 쓰려면 아직도 멀었다.[1]

박순천(朴順天, 1898년 10월 24일 ~ 1983년 1월 9일)은 대한민국정치인이자 친일반민족행위자. 본명은 박명련(朴命連)으로, 만세운동을 주도한 혐의로 수배되어 도망다니다가 "순천댁"이라 불려서 개명하게 된다.

일제강점기 여학교의 교사로 있을 시절 제자들에게 정신대 지원을 종용하였고 1명을 정신대로 보낸 친일 행적이 있다.1948년 최초의 남한단독선거에서 종로에 출마했는데, 이때 종로의 홍등가와 제2부인들, 첩 등은 축첩반대, 공창폐지를 외치는 대한부인회 회원들에게 표를 줄 리가 있겠냐는 말을 하기도 했다. 5선의원으로 활약했고, 60년대 내내 민주당 지도부를 맡았다. 서서 16시간을 일하는 여공에게 생리휴가가 필요함을 역설하였다. 국회의원들을 쫒아다니면서 설득하였고, 이후 생리휴가법을 두고 박순천법이라 할 정도로 크게 기여하였다. 산전산후휴가 역시 박순천이 입법한 것이다. 식민지 시절에는 농촌여성의 생활에 관심이 많아서 절미운동 등 직접 생활 속으로 파고들어가는 운동을 했다. 밥 공장, 탁아소에 대한 아이디어를 제기하기도 하는 등 모성애의 사회화라는 래디컬 페미니즘적 의제까지 두루 섭렵했다.[2][3]

여성 최초의 야당 당수였지만 박정희의 10월 유신 이후 육영수여사추모위원회 의 이사장을 맡는 등 친정부 성향을 가지게 되었다.

선거

실시년도 선거 대수 직책 선거구 정당 득표수 득표율 순위 당락 비고
1948년 총선 1대 국회의원 서울 종로구 갑 독립촉성애국부인동지회 5,518표
15.10%
2위 낙선
1950년 총선 2대 국회의원 서울 종로구 갑 대한부인회 11,251표
54.98%
1위 초선
1954년 총선 3대 국회의원 서울 종로구 갑 무소속 4,306표
14.68%
3위 낙선
1958년 총선 4대 국회의원 부산시 동구 갑 민주당 22,907표
59.95%
1위 재선
1960년 총선 5대 국회의원 부산시 동구 갑 민주당 22,668표
57.53%
1위 3선
1963년 총선 6대 국회의원 서울 마포구 민주당 50,250표
67.67%
1위 4선
1967년 총선 7대 국회의원 전국구 신민당 3,554,224표
32.70%
전국구 1번 5선

출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