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슬람 혐오

최근 편집: 2021년 9월 12일 (일) 17: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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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5월 울위치에서 일어난 영국인 병사 리 릭비 살해 사건을 계기로 무슬림을 향한 폭력이 우려스러울 정도로 분출하고 있는데, 8월에 벌어진 할로 이슬람 센터 방화 공격은 그중 가장 근래의 일이다.

‘반(反)무슬림 공격 측정 프로젝트’는 릭비 살해 사건 이후 한 주 동안에만 이슬람 혐오 공격 212건이 일어났고 기록했다. 2012년 한 해 동안 532건이 일어났는데 말이다. 런던 경찰청은 울위치 사건 이후 무슬림을 향한 공격 신고가 런던에서만 여덟 배로 증가했다고 인정했다.

이런 공격들은 이슬람 혐오가 고조된 것을 배경으로 한다. 언론은 울위치 사건의 범인들에게 “도축용 칼을 휘두르는 이슬람 광신도”라는 딱지를 붙였다. 모든 정당의 정치인들은 무슬림들에게 이 사건을 분명하게 비난하라고, “선한” 무슬림이라면 영국에 충성심을 보이라고 요구했다. 이런 상황을 고려하면, 설문조사에서 세 명 중 한 명이 무슬림을 “민주주의에 대한 위협”이라고 생각한다는 결과가 나온 것은 놀랄 일은 아니다.

9·11 공격 이후 10년 동안, 무슬림을 테러리즘, 광신, 배척성과 엮는 것은 일상 언어의 일부가 됐다. 이슬람 혐오적 사고방식의 “정상화”는 어떻게 이슬람 혐오가 영국 사회에서 오늘날 인종차별의 최첨단이 돼 왔는지를 보여 준다.

(중략)

일상적으로 무슬림을 비하하는 것은 주류 문화 깊숙이 침투했다. 축구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전(前) 감독인 론 앳킨슨이 TV 프로그램에 출연해, 동료 참가자가 스웨터를 히잡처럼 머리에 뒤집어썼을 때 “폭탄 가지고 다니는 거 아니죠?” 하고 물을 정도이다.

이슬람 혐오의 부상은 영국만의 현상이 아니다. 모스크 건설, 첨탑 건립, 머릿수건이나 이슬람식 머리 스카프[히잡] 착용 등이 금지되면서, 이른바 유럽이 “이슬람화”되고 있다는 공포에 기반한 반무슬림 서사가 제도화해 왔다. 2011년 노르웨이에서 아네르스 브레이비크가 벌인 광란적 학살로 77명이 사망한 사건은 무슬림에 대한 이런 증오가 가장 극단적으로 표출된 것이었다.

이슬람 혐오적 발언은 편견을 기초로 한다. 무슬림은 사회에 통합되기를 거부하고, 무슬림의 자녀는 영어를 말할 줄 모르고, 무슬림은 그들만의 폐쇄적 공동체 안에서 살고, 영국·유럽·“서구”의 가치에 적대적인 신앙과 삶의 방식을 고수한다는 것이다. 이런 편견은 사회 깊숙이 뿌리내린 인종차별의 책임을 그 사회가 아니라 인종차별의 피해자들에게 지운다.

이런 상황을 직시하면, 왜 많은 무슬림이 이슬람 혐오를 인종차별의 독특한 형태로 보는지 이해할 수 있다. 오늘날 횡행하는 이슬람 혐오를 완전히 새로운 현상으로 보는 것은 실수일 것이다. 이슬람 혐오는 아프리카계 카리브해인들에게 “게으르고, 일하기 싫어하며, 무책임하다”는 딱지를 붙이는 것과 그리 다르지 않다. 기존의 인종차별적 사고가 존재하지 않았다면, 반무슬림 인종차별은 존재할 수 없을 것이다.

이슬람 혐오적 사고방식은 또한 이슬람과 무슬림을 획일체로 그린다. 그러나 무슬림은 다른 “신앙” 공동체만큼이나 이질적이고 다양하다. 영국에 사는 무슬림만 해도 인도 아대륙, 서아프리카, 북아프리카, 중동, 터키, 동유럽에서 왔다.

이 무슬림 공동체들의 전통은 그들 고향 사회의 국민적, 민족적 특징에 따라 크게 달라진다. 이슬람교는 다른 모든 종교처럼 유동적이고, 변화를 겪고, 발전 과정에서 여러 요소의 다양한 영향을 받으며 변형된다.

출처

  1. 탈라트 아흐메드 , 번역 김동욱 (2018년 7월 17일). “이슬람 혐오 ― 인종차별적 편견일 뿐”. 《노동자연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