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강점기

최근 편집: 2017년 8월 3일 (목) 10: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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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요

日帝强占期]

1910년 우리나라는 일본에 의해 국권이 강탈되어 35년의 식민 통치를 당했다. 그 시기를 일제 강점기[주 1]라고 부른다.

연표

1910~1919년
  • 집회, 결사의 자유를 제한했다.
  • 한글로 된 신문을 폐간했다.
  • 교사까지 제복을 입고 칼을 찼다.
  • 소유한 토지를 신고하지 않으면 소유권을 박탈하였다. 그렇게 약탈한 토지는 일본인의 것이 되었다.
1919~1931년
  • 일부 단체와 언론 활동을 허가했다.
  • 헌병 경찰제가 보통 경찰제로 바뀌었다. 그러나 인원과 장비가 증강되었다.
  • 친일 한일 관료를 길렀다.
  • 산미증식 정책
1931~1945년
1945년 8월 15일 광복
  • 태평양 전쟁에서 일본이 패전하고 한국이 독립했다.
  • 한국에서 8월 15일을 광복절로 기념한다.

사회

여성의 지위와 여성 운동

열악했다. 남존여비라는 인습 탓도 있으나 일제가 여성 차별을 법제화했기 때문이다. 한국 여성에게는 재산의 소유권과 처분권이 인정되지 않았고, 재산 상속과 친권 행사에도 차별을 받았다. 결혼한 여성은 남편의 동의 하에만 취업이 가능했고 노동 임금은 남성의 절반이었다.

1920년대 여성의 사회적 진출이 조금씩 활발해지고 노동자 수가 늘어나면서 여성 운동이 일어났다. 여성 계몽을 추구하는 민족주의 계열 단체와 여성 해방, 계급 투쟁을 강조하는 사회주의 계열 단체로 나뉘었다 근우회가 조직되어 하나로 합쳐졌다. 근우회는 유력한 여성 인사들이 대부분 참여한 단체로, 국내와 일본에 수십 개의 지회를 두고 강연회 등을 열었다.

강향란이라는 기생이 돌연히 머리를 깎고 남자 옷을 입고 정치 강습원에 통학 중이라 한다. 암탉이 새벾에 우는 것도 그 집안이 기우는 장본이라 하였다. 하물며 여자가 남자로 환형한 그것이야 변괴가 아니고 무엇이리오, 이렇게 천한 물건은 우리 사회에서 하루라도 빨리 매장해 버려야 될 것을…….- 부춘생, '토목언', "시사평론"(1992. 7.) -

일제강점기 기생들에 의해 여성 단발이 여성 해방의 상징으로 퍼져 나갔다. 그러나 옛날부터 이어진 사회적 차별 의식은 쉽게 사라지지 않았다.

어린이의 지위와 소년 운동

무상 의무 교육이 실시되지 않아 교육을 받을 기회가 적었고, 공장에 취업해 낮은 임금과 장시간의 노동을 겪었다. 그러자 어린이를 온전한 인격체로 대접하자는 소년 운동이 일어났다. "어린아이를 때리지 마라. 한울님을 때리는 것이니라."라고 강조한 2대 교주 최시형의 뜻에 따라 천도교는 소년 운동을 적극적으로 전개하였다. 방정환과 함께 천도교 소년회는 어린이날을 제정하고 잡지 "어린이"를 간행했다. 또한 소년 운동의 확산으로 조선 소년 연합회가 결성되었다.

1930년대 일제가 소년 운동을 애국 운동으로 보고 탄압하였다. 중일전쟁 이후 완전히 금지했다.

신분 차별과 형평 운동

갑오개혁 때 법제상으로 신분 차별은 폐지되었으나 백정에 대한 사회적 차별은 사라지지 않았다. 게다가 일제는 호적에 붉은 점 등으로 표시하여 백정의 신분이 드러나게 하였다. 이에 백정들은 저울처럼 평등한 세상을 만들고자 하여 진주에서 조선 형평사를 창립하고 형평 운동을 벌였다. 조선 형평사는 전국으로 조직이 확대되었고 다른 사회 운동 단체와 연대하여 항일 민족 운동을 전개하기도 하였다.

부연 설명

  1. 본래는 띄어쓰기를 하는 것이 원칙이지만 역사 용어이므로 붙어쓸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