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경희

최근 편집: 2023년 7월 3일 (월) 12:48

생애

박경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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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경희 열사 생전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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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1965년 11월 20일(1965-11-20)
사망1989년 7월 22일 ()
사인익사
매장지순창군 유정리 묘역
학력이화여대 경제학과
경력전북 순창군농민회 간사
직업농민운동가
정보 수정

순창군농민회의 간사로 활동했던 시기는 바로 수세투쟁이 한창이었던 1988년 11월부터 89년 7월까지의 일이다. 대학시절, 법정대 부학생장으로 농활 준비위원장을 맡아 활동하면서 농민운동에 헌신할 결심을 굳혀갔다고 했다. 당시 농민회는 청년 분과를 두어 학습모임을 조성 중에 있었는데, 그는 농민회의 간사로 있으며 이 학습모임의 구성과 프로그램 마련에 중심적 역할을 하였다.

박경희 열사의 노력으로 89년 2, 13 여의도대회(수세폐지와 고추제값받기 전국대책위원회 주관)에 순창군은 관광버스 10 여 대가 훌쩍 넘어, 전남 나주 다음으로 상경인원이 많았다. 경찰들의 물리력으로 여러 대의 버스 유리창이 박살나고 상경했던 농민들은 유리창 없는 버스에서 다시 여섯 시간 여 동안 얼음칼날 같던 바람을 고스란히 맞으며 귀향하였다. 다음 날엔 참여했던 마을 어르신들의 건강을 걱정하며 위로하는 전화를 끊임없이 돌렸다고 한다.

약력

  • 1965년 11월 20일(음) 전남 해남에서 5녀 2남중 세째로 출생
  • 1984년 2월 은광여고 졸업
  • 1984년 3월 이화여대 경제학과 입학, 재학 중 1학년 과대표, 3학년 과 학생회장, 4학년 법정대 부학생회장 역임
  • 1987년 법정대 농촌활동준비위원장
  • 1988년 2월 대학 졸업 후 귀농 준비
  • 1988년 12월 전북 순창군농민회 간사로 농민운동 시작. 특히 순창군농민회 청년위원회 조직화에 기여
  • 1989년 수세거부, 고추수매투쟁, 2.13 여의도 농민항쟁 활동
  • 1989년 7월 22일 경희대생들과의 하계 농활을 마치고 농민회원들과 섬진강 상류에 단합 물놀이를 갔다가 사고로 사망. 열사의 뜻을 기리는 추모문고 조성과 농민회관 건립사업 진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