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소은입니다.

가족을 포함해 가장 가까운 사람들에게까지 털어놓은 적 없던 것들을 이제 말하려 합니다. 이 해시태그운동을 통해 무엇이 얼마나 어떻게 바뀔지는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어딘가 좁고 케케묵은 곳에 감춰져있던 명백한 추악함들이 하나 둘 드러나고 있는 것 그리고 그것이 곧 변화의 단초라는 것만은 확신합니다. 사소할지라도요. 
저는 출판사에서 일했던 적이 있습니다. (어디까지나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출판계는 경악스러울만큼 비좁고 그만큼 대외적으로 알려지기 힘든 부분이 많아 이 글 자체가 생소하실 수 있습니다. 저의 부족함으로 인해 보다 간결하게 쓰지 못한 탓도 있지만, 적확한 이해를 돕기 위해 글이 다소 길어지더라도 양해해주시길 바랍니다.)
아시는 분들은 알겠지만 저는 저의 재능과는 별개로 글을 읽고 쓰는 것에 대해 강한 애착을 가진 터라 그 분야 안에서 조금이라도 배우고 싶고, 또한 평소 동경하던 문학계에 발끝이라도 담가보고 싶어서 시작한 일이었습니다. 언어학적인 부분에 있어서 흥미를 느끼기도 했어서 제 예상대로 일은 저에게 잘 맞았습니다. 물론 힘든 부분도 많았습니다. 거의 만성적인 손목과 어깨의 통증, 안구건조증까지 얻게 되었지만 그런 육체적인 후유증 때문에 이 일을 후회한 적은 없습니다.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나 그때는 알지 못했던 그 외의 것들을 저는 이제 바로 보게 되었습니다. 
저는 주로 편집/교정/교열을 담당했습니다. 날것의 원고를 말그대로 재단하고 뜯어고치는 일입니다. 문법은 기본이고 서사의 흐름, 전체적인 맥락과 역사적/통계적인 부분까지 정확하게 꿰고 있어야 비로소 그 원고에 손을 댈 수 있는 자격이 생긴다고 할 수 있습니다. 보통 기초는 단편 수필부터 시작합니다(문학출판계 한정). 일은 고됐지만 생각보다는 갈수록 수월했습니다.
경력이 조금씩 쌓이면서 평소 동경하던 문인들과도 종종 만날 수 있었습니다. 단순히 일적인 부분 때문에 봐야하는 미팅보다는 다같이 함께 술자리를 갖는 일이 더 잦았습니다. 그 중엔 이름만 들어도 알 수 있는, 문단 내에서 비교적 큰 영향력을 가진 분들도 몇 몇 계셨습니다. 운이 좋았던 걸지도 모르겠습니다. 
출판계/문학계를 비하할 의도는 전혀 없으나, 제 개인적인 견해로는 이쪽 업계엔 사회적/정치적으로 다소 극단적인 가치관을 지닌 분들이 많습니다. 문학이라는 것 자체가 시대의 아픔을 기록하고 그 눈물을 먹고 자라는 분야라는 것을 감안하면 그건 어쩌면 필연적인 결과일 수도 있겠지요. 그러나 거기서 파생되는 여성혐오misogyny적/성차별적인 언행들, 각종 성적 희롱과 추행들조차 그 필연성 아래 묵인되고 있다는 것을 그때는 몰랐습니다. 
(이 문단은 따로 읽지 않으셔도 됩니다.) 제 입으로 당당하게 말할 수 있을만큼 저는 직장 내에서 제가 맡은 업무에 항상 최선을 다했습니다. 그러나 편집장이 제게 붙여준 수식어는 "어리고 예쁜" 여직원이었습니다. 물론 그건 고개 숙여 감사할 만한 칭찬일지도 모릅니다. 남자 상사가 여성 부하직원에게 입버릇처럼 하는 말이 아니었다면 말입니다. 저는 "성실하고 믿음직한" 직원이 되고 싶었습니다. 일을 그만두게 되면서 가졌던 술자리에서조차 편집장은 제게 "소은 씨는 어리고 예쁘니까 어디 가서 뭘 해도 잘 될 거야"라고 말했습니다.
저는 처음부터 끝까지 "일 잘하고 성실한" 직원이 아니라 그냥 "어리고 예쁘장한" 직원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었던 겁니다. '별 걸 다 불편해하네', '배 부른 소리 하네'라며 이해하지 못할 분들이 계실 거란 걸 알고 있습니다. 따로 설명드리고 싶지는 않습니다. 다만 앞서 말한 바로 이 점이, 제가 그 출판사에서 일한 것을 후회하는 유일한 이유라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회식이 잦지는 않았지만 어쩌다 제가 늦게까지 남아 일하는 날이면 거의 술자리로 이어졌습니다. 일부러 노렸다고(?)까지 생각하진 않지만 제가 유일한 젊은 여직원이어서 그랬던 것 같다는 생각은 지금도 변함없습니다. 직원들끼리만 술자리를 가진 적은 거의 없고, 보통은 개인적으로 친분이 있는 문인들 몇 분이 함께 자리하곤 했습니다(물론 저와의 친분은 아닙니다).
자리가 불편했던 적이 종종 있었습니다. 친분이 없어서, 나이가 지긋한 분들이어서가 아닙니다(외려 그런 분들은 대개 저를 조심스럽게 대해주셨습니다). 흔하디 흔한 "술은 여자가 따라야지"부터 시작해서, "술 좀 따라봐라"고 하는 분도 심심찮게 계셨고, 제 신체부위를 들먹이며 노골적인 언사를 내뱉는 분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저는 그 자리에서 불쾌한 내색을 제대로 표하지 못했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바보같지만, 그렇게 해서라도, 참아가며 그런 자리를 가져서라도 문학계에 대해 조금 더 배우고 조금 더 가까워지고 싶은 마음이 볼모였을 것입니다. 
제가 출판사를 그만두기 직전에 일어난 일입니다. 그만두게 된 직접적인 원인이기도 합니다. 장편소설 작업을 다 마치고, 월말이 다가오는 시점에서 다른 직원들도 정해진 양의 업무를 마감해가는 분위기였습니다. 다들 홀가분한 상태에서 자연스럽게 술자리로 이어졌고, 그날 K대에서 교수로 재직하고 계시는 시인 한 분도 함께했습니다. 편의상 그 분을 교수님이라고 칭하겠습니다. 
처음 자리잡고 앉은 순간부터 교수님이 제게 유독 관심을 표했습니다. 저는 단순히 외모에 대한 칭찬과 나이 어린 여성을 대상화해서 찬미하는 것에 이미 이골이 나 있는 상태였기에 어느 정도 무덤덤했습니다. 긴 작업을 잘 마무리한 탓에 그날 따라 기분이 좋았던 것도 이유였을 것입니다. 
자리가 무르익으면서 교수님이 점점 노골적으로 제게 관심을 드러냈습니다. 너 정말 예쁘다, 남자친구 있어, 오빠라고 불러봐 등등. 저는 고개를 숙인 채로 어색한 미소만 띄고 있었습니다. 마음 같아서는 앉은 자릴 박차고 뛰쳐나가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었습니다. 일행이 화장실에 가거나, 담배를 피우러 나가기라도 하면 기다렸다는듯 더 심해졌습니다. 순진하게 생겼는데 남자 경험은 얼마나 되느냐, 진지하게 만남을 가져보는 건 어떻겠느냐, 너 등단하고 싶지 않으냐, 이번에 OOO신문사 문예공모전 준비하고 있는 것 다 들었다, 우리 학교에도 작은 공모전을 여는데 네가 괜찮다면 힘 써 보겠다, 혼자 사냐, 어디 사냐, ... 끝도 없이 이어졌습니다. 급기야 대각선으로 마주앉은 상태에서, 자기 옆에 앉으라고 강요하기까지 했습니다. 
신체 접촉이 너무 역하고 두려워 옆자리에 앉는 것만은 끝내 거절하자, 상상도 못한 거친 욕설이 이어졌습니다. 어린 년이 싸가지 없게, 구멍 하나 더 달렸다고 유세 떤다, 글 좀 쓴다는 년들은 이래서 재수가 없다, 대가리 좀 컸다고 씨팔년, ... 아직까지도 기억합니다. 술에 취해 떨리는 그 탁한 음성이 아직까지도 선명하게 기억납니다. 결국 저는 그 자리에 있던 일행들 어느 누구에게도 이 사실을 알리지 않은 채로, 인사도 하지 않고 그 술집을 도망치듯 나왔습니다. 그 후의 일은 자세하게 기억나지 않지만 태어나 처음 느껴보는 모멸감에 집에서 밤새 울었던 것 같습니다. 참고로 그 교수님은 제 아버지보다도 나이가 많았습니다. 
다음 날 저는 출근을 하지 않았고, 편집장에게 그만두겠다고 말했습니다. 걱정되고 서운하다며, 마지막인데 얼굴은 봐야하지 않겠냐며 며칠 내내 끈질기게 부탁하는 탓에 마지막으로 직원들끼리 단촐하게 술자리를 가졌고, 그 자리에서조차 저는 편집장에게 저의 외모 이야기를 들어야 했습니다. 
기회가 된다면, 혹시 저를 알고 있는 그 출판사의 관계자가 이 글을 읽게 된다면, 묻고 싶습니다. 제가 무얼 잘못했는지. 제가 그런 일을 겪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했는지. 그리고 저에게도 묻고 싶습니다. 왜 화를 내지 못했는지. 

그간 아무에게도 말하지 못했습니다. 저는 저를 숨기고 사는 성격도 아니고 안 좋은 일은 금방 털고 잊어버리는 사람이라, 아마 저와 가까운 사람들은 지금 많이 놀랐을 것이리라 생각합니다. 그래서 더 큰 용기가 필요했습니다. 제 사람들에게 미리 대답을 하자면, 저는 괜찮습니다. 위로도 괜찮습니다. 정확히 말하면, 위로받고 싶지 않습니다. 다만 저와 연대해주시길 바랍니다. 저와 같은 피해자가 있다면 용기 내어 같이 목소리 내 주시길 바랍니다. 그리고 저를, 우리를, 그들을 응원해주시길 바랍니다.

두서없이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