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낭

최근 편집: 2020년 11월 18일 (수) 15:45

정의

치병(治病), 제액(除厄)은 물론 마을의 안녕과 풍요 등을 지켜 주는 토지와 마을의 수호신이다.

어원과 유래

서낭의 어원은 산신(山神)의 다른 이름인 산왕(山王)에서 온 것으로 보인다. 즉 산(山)이 음성모음화 되어 ‘선’으로 되면서 ‘선왕’이 되고, 이것이 다시 연철이 되어 ‘서낭’으로 정착되었을 것으로 보인다.


서낭신앙은 인간이 고대사회에 수렵ㆍ목축ㆍ농경 등이 이루어지는 공간을 신력(神力)으로 지켜내기 위한 목적에서 생겼다. 즉 이러한 공간의 요새지역에 천신(天神)의 하강처인 누석단(累石壇)을 만들어 천신의 거소(居所)로 삼고 이를 섬긴 데서 서낭신앙의 기원을 찾을 수 있다. 일반적으로 서낭신의 거소인 서낭당이 동구 밖 길가, 산록, 또는 산이 없는 허한 지점에 위치하는 것으로 볼 때 마을 수호의 기능이 선행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제의처(祭儀處)에는 누석단(累石壇)이 있으며 신수(神樹)에 현납(懸納)하는 습속이 있는데 이러한 신앙 양상은 몽고의 오보(鄂博)와 매우 흡사한 모습을 띠고 있다(몽고의 오보는 우리나라의 돌무더기 탑과 비슷한 것으로 마을의 이정표 기능을 한다). 몽고는 지리적으로 보아도 우리나라와 매우 인접한 곳에 위치할 뿐만 아니라, 우리민족의 이동 경로, 문화접촉 관계 등을 고려해 볼 때 몽고의 오보신앙이 우리에게 영향을 주었을 가능성이 높다. 이렇게 한반도에 들어온 오보신앙은 한반도 고유의 산신ㆍ천신 신앙과 습합되어 서낭신앙이라는 새로운 신앙 형태를 탄생시켰다. 또한 몽고의 오보에 영향을 입어 형성된 중국의 성황신앙(城隍信仰)이 이후에 우리나라에 들어와 복합되면서 오늘날의 서낭신앙 형태로 자리 잡게 된 것이다. 따라서 현재의 서낭신앙은 우리 고유의 천신ㆍ산신에다가 몽골의 오보와 중국의 성황신앙 등 4가지 요소가 복합된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러므로 이를 그 기능이 유사한 중국의 성황신앙에서 유래한 것이라 보는 견해는 잘못이다.


서낭신앙은 사람들이 일정한 장소에 제의를 베풂으로써 그들이 목적하는 소망을 성취하겠다는 의도에서 비롯된다. 따라서 서낭신앙에는 뚜렷한 내세관이나 인간적 정신세계에 대한 이상 같은 것은 없다. 서낭은 마을 사람들이 신력(神力)에 의존하여 마을을 수호하려는 목적에서 신앙하는 것이기 때문에 마을의 유대와 단결을 촉진시키는 기능을 가진다. 또 서낭신의 거소인 서낭당은 고대부족사회에서 수렵ㆍ목축ㆍ농경 장소를 신의 힘에 의존해 보호하려는 공간이었으므로 수호적, 방어적 경계로 기능했을 것으로 판단된다.[1]

서낭굿

서낭신을 모시는 서낭굿을 ‘별신굿’이라 하는 곳도 있다. 이 마을굿은 마을 공동의 제의처(祭儀處)인 서낭당에서 동민들이 제의를 올린 다음 진행하는 굿이다. 제의의 목적은 동민의 안과태평(安過太平) 및 풍농, 풍어, 치병 등을 기원하는 것이다. 서낭굿은 일반적으로 3년마다 한 번씩 음력 정초에 택일하여 시행한다. 그러나 지방에 따라서는 음력 10월에 하는 곳도 있다. 서낭굿이 없는 해에도 음력 정월 혹은 10월에 택일하여 간단한 공동제의를 올린다. 서낭굿은 서낭당에서 서낭제가 끝난 후 동민 일동이 서낭당에 모인 상태에서 무(巫)가 굿을 주관하는데 그 제차(祭次)는 부정굿, 서낭굿, 조상굿, 성주굿, 지신굿, 시준굿, 산신굿, 용왕굿, 축원굿, 거리풀이 순으로 진행된다.

민간 신앙의 성격

서낭신앙은 우리나라 도처에서 전승되고 있는 민간신앙으로서 전국적인 분포를 보이고 있다. 서낭신의 봉안처(奉安處)인 서낭당은 반드시 누석단과 함께 신수의 현납속이 수반되는데 이러한 형태는 주로 평안남북도ㆍ황해도ㆍ경기도ㆍ충청남도ㆍ전라남북도 등지에 분포하고 있다. 특히 중ㆍ남부지방에서는 태백산맥을 중심으로 한 서부해안과 평야지대에 집중적으로 분포되어 있다. 그런데 평안도, 함경도 지방에서는 누석단과 신수의 현납속이 있는 서낭당을 ‘국수당(堂), 국시당(堂)’이라 부르는데, 이로 보아 이 지역은 ‘국수ㆍ국시’신앙과 서낭신앙이 복합적으로 나타난 지역이 아닐까 한다.


같이 보기

출처

  1. “서낭(守郎)”. 《한국민속대백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