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녀

최근 편집: 2022년 12월 27일 (화) 20:38

烈女. 고려 말부터 조선 후기까지 유교 질서 하에서 “바람직한 여성(상)”을 가리켰던 말.

‘열녀’의 개념이 정확하게 명시된 바는 없다. 그러나 ‘열녀전(烈女傳)’이라는 제목을 단 여러 고전 서적에서 어떤 여성이 열녀인지 다양한 사례를 들어 설명하고 있으므로, 우리는 열녀전을 통해 그 당시 열녀의 모습을 유추할 수 있다.

열녀전의 주독자는 양반가의 여성들이었다.

18세기 중엽부터 수용된 실학사상이 한 시대를 풍미하면서 열녀전이 일방적인 여성들의 희생을 지나치게 강요한다는 반성과 함께 순절이나 절사(節死)의 열녀전은 서서히 자취를 감추기 시작하였다.[1]

1. 개요

남편을 위해 정성을 기울여 살아가는 아내를 일컫는 말

이라고 되어있지만 어쩐지 죽음을 강요했다.


유교적 가치 중 하나인 열(烈)은 아내가 남편을 잘 섬기는 것으로, '열녀'란 그러한 가치를 실천하는 여성을 일컫는 말이었다.

성평등적 개념으로 고려 시대에는 다시 결혼하지 않는 남편을 부르는 열부, 의부라는 개념이 있었지만 조선시대에는 존재하지 않게 된다.

2. 역사

조선시대 이전에는 재혼이 가능했지만 조선시대에는 재혼하는 여성에게 각종 불이익을 주고, 중종이후로는 재가 금지를 법제화시키기에 이르렀다.

한번 결혼한 여성은 '일부종사'를 통해 시댁에 묶이고, 다시 재혼할 수 없게 된 것이다.

반면에 이 시대 남성은 아내가 있어도 이혼도 가능했고, 아내 외의 첩도 맞이할 수 있었다.

3. 관련 미디어

3.1 영화 이조여인잔혹사

신상옥 감독의 사극 옴니버스.


1부 여필종부, 2부 출가외인, 3부 칠거지악, 4부 궁중비색 으로 나뉘어있다.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1부 여필종부(女必從夫) : 대감댁으로 시집갔던 딸(남정임)이 어린 신랑이 죽자 친정에 다니러 온다. 친정 아버지 강 진사(박암)는 딸이 남들의 결혼생활을 부러워하는 것을 보고 딸을 죽인 후 죽은 남편의 뒤를 따라 자결한 것으로 꾸민다. 나라에서는 정절을 기리는 열녀문을 세워주고 강 진사는 벼슬길에 오른다.

2부 출가외인(出嫁外人) : 외아들(오영일)을 며느리(윤정희)에게 빼앗긴 시어머니(도금봉)는 며느리를 모질게 구박한다. 시어머니 학대에 못이긴 며느리는 누명을 쓰고 죽는다.

3부 칠거지악(七去之惡) : 시집온 지 10년이 넘도록 아들을 낳지 못한 부인(최은희)이 머슴(신영균)을 유혹해서 아들을 낳는다. 그러나 자신의 불임증을 알고 있는 남편(남궁원)이 “누구의 아이냐?”고 추궁하자 부인은 결백을 주장하며 은장도를 물고 자결한다.

4부 궁중비색(宮中秘色) : 상궁 이씨가 왕이 아닌 무관에게 강간당해 임신을 하게 된다. 상궁들은 이 사실을 극비에 부치고 이씨가 아이를 낳을 때까지 협동해서 돕는다. 아이 아버지인 무관은 죽여서 궁중 연못에 버리고 이씨와 아기는 시체로 위장해서 궁궐 밖으로 내보낸다.


신상옥 감독은 이 영화로 아태영화제와 대일영화제에서 감독상을 수상했다.

3.2 책 열녀의 탄생

2009년 5월 11일 출판사 돌베개에서 발간된 책이다.

저자는 강명관 교수이다.

가부장적 사회를 위해 여성을 희생시킬 수 있도록 만들어낸 '남성의 이데올로기'와 '열녀 탄생에 대한 역사'를 설명하고 있는 책이다.

3.3 은장도

2003년에 개봉한 영화.

성인 코미디라고 하지만 야하지도 않고, 재미도 없다고 한다.

  • [1] 출처 : [네이버 지식백과] 이조여인 잔혹사 [李朝女人殘酷史, Women of Yi-Dynasty] (죽기 전에 꼭 봐야 할 한국영화 1001, 2011. 4. 20., 마로니에북스)

삼국 시대의 열녀

삼국시대에는 열녀라는 말이 없었다. 다만 사회가 요구하는 바람직한 여성상으로서의 모형만이 남아있을 뿐이다. 삼국시대와 통일신라시대의 열녀의 행위는 훼절 거부, 남편 또는 약혼한 남성과의 약속 이행, 종사, 복수 등으로 후대 열녀전의 모형을 보여주고 있다.[1]

  1. 1.0 1.1 강영숙 (2009). “열녀전(烈女傳)의 출현양상(出現樣相)과 의미(意味)”. 《국학연구론총》 (택민국학연구원) 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