잔 로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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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 다르크(프랑스어:Jeanne d'Arc)는 프랑스의 전쟁 영웅이며 로마 카톡릭교회의 성인이다. 또한 마녀재판의 희생자이기도 하다.

출처: https://www.worldhistory.org/Joan_of_Arc/
잔 로메
출생1914년 1월 6일
프랑스 동부 지역
사인화형
다른이름오를레앙의 성처녀(la Pucelle d’Orleans)
정보 수정

생애

1412년 1월 6일[1][2]프랑스 동북부 동레미(Domrémy)에서 태어났다. 오를레앙의 성처녀(la Pucelle d’Orleans)로도 불리었다.[3] 백년전쟁에서 번번히 패배하고 있던 프랑스를 단숨에 역전시키고, 이후 영국에 포로로 사로잡혔다. 종교 재판에서 사형을 선고받고 군중이 보는 앞에서 1431년 5월 30일에 화형을 당했다. 하지만 사망 후에 서구 문화에서 대표적인 인물로 자리잡고 프랑스에서는 애국주의의 상징이 되었다. 세계 각국에서 그녀의 이름을 딴 성당과 학교, 수도회가 세워져 있고 현재까지도 잔다르크를 소재로 한 예술작품들이 끊임없이 나오고 있다. [4]

백년전쟁

당시 프랑스와 영국 사이 벌어진 백년전쟁에서 프랑스는 번번히 패배하여 전 국토가 폐허가 되었다. 불과 13세 때 프랑스를 구하라는 계시를 받았다며 샤를 왕세자를 찾아갔다. 그녀의 진술에 따르면 성 미카엘, 성 가타리나, 성 마르가레트가 눈앞에 나타나 보쿨뢰르 성채의 사령관 보드리쿠르를 찾아가면 군대를 내어줄 것이며, 이들이 오를레앙의 점령군을 몰아내리라고 예언했다. [5][6] 보쿨뢰르 장군에게 조롱당했으나, 예언이 맞아떨어지자 샤를 7세의 신임을 얻었다.

그녀의 군사 지도력이 어느 정도였는지는 지금도 역사학계 내에서는 의견이 분분하다. 단순히 병사들 앞에서 깃발을 휘두르며 사기를 북돋아준 역할을 수행했을 뿐이라는 의견도 많지만, 최근 들어서는 군 통솔력과 수준급의 전략가였다는 주장이 대두되고 있다. 잔 다르크의 영웅적인 활약으로 프랑스군은 오를레앙에서 크게 승리했다. 1429년 5월, 오를레앙 전투에서 프랑스군을 승리로 이끌며 ‘오를레앙의 처녀’로 불리게 되었다. 이후 7월 17일, 결국 왕세자였던 샤를 7세가 프랑스의 국왕으로서 대관식을 치를 수 있게 되었다.

마녀재판

Joan of Arc (1879) by Jules-Eugene Lenepveu / 출처:http://www.catholicworker.kr/news/articleView.html?idxno=2452

1430년 4월, 콩피에뉴(Compiègne) 전투에서 부르고뉴 동맹군에 포로로 사로잡혔다. 영국은 현상금을 요구했으나 샤를 7세는 그녀를 구할 생각이 없어 현상금을 지불하지 않았고 잔다르크에 대한 마녀재판이 영국에서 시작되었다. 잔 다르크가 마녀사냥을 당하게 된 죄목 중 하나는 남장이었다. 남성복을 입고 머리를 짧게 자른 그를 두고 성직자들은 ‘이단적 복장도착’이라며 비난했다.[7] 여성 군인의 복식이 정해져 있지 않았던 시대에 전쟁터에서 장군의 역할을 수행하기 위해서는 (남성군인의) 군장을 하는 것이 당연한 일이었음에도 잔 다르크를 화형에 처하는 주요 논리 중 하나로 사용되었다.

성인

사망 25년 후 교황 갈리스토 3세로부터 권환을 위임받은 종교재판소는 잔 다르크에 대한 심사를 재개하여 그녀에게 내린 혐의는 모두 무혐의이며 따라서 무죄라고 최종 판결을 내렸다. 그녀를 순교자로 선언했다. 잔 다르크는 1909년 복자로 시복되었으며, 1920년 성인으로 시성되었다. 잔 다르크는 투르의 성 마르티노, 성왕 루이, 리지외의 성녀 데레사 등과 더불어 프랑스의 공동 수호성인으로 추대되었다. 축일은 5월 30일이다.

기타

세례명으로 쓸때는 아르크(Arc)의 요안나라고도 한다. 갑옷을 입은 전사의 모습으로 묘사되는 유일한 성녀로, 페미니스트/레즈비언/트랜스젠더 아이콘으로 기억되고 있다.[8]


같이 보기

출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