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 바틱

최근 편집: 2018년 6월 8일 (금) 15:01

진 제닝스 바틱(Jean Jennings Bartik)은 에니악(ENIAC)의 프로그래머 중 한 명이다.

바틱은 1924년 미주리시에서 태어났다. 처음에는 교실이 하나인 작은 학교에서 공부를 했지만 후에 스탠버리 고등학교에 입학했다. 1941년에 졸업한 후, Northwest Missouri State Teachers College에 입학했다. 수학을 전공, 영어를 부전공으로 1945년에 졸업했다. 그 해 바틱은 유일한 수학 전공 졸업자였다.

졸업 후, 미군은 전쟁에 기여할 수학자를 찾고있었다. 바틱 주위의 지인들은 그가 수학 선생님이 되기를 추천했지만, 바틱은 미군을 돕는 수학자가 되기로 결심했다. 바틱은 IBM과 펜실베니아 대학교에 지원했지만, 결국은 펜실베니아 대학교에서 일하기로 결정했다. 그 후APG(Aberdeen Proving Ground)로 파견돼 탄도 궤적을 계산하는 일을 했다. APG에서 일하는 동안 만난 윌리엄 바틱은 펜실베니아 대학교의 펜타곤 프로젝트에서 일하는 엔지니어였는데, 바틱은 1946년 12월에 그와 결혼했다.

존 모클리가 ENIAC 프로젝트를 시작했을 때, 바틱은 수학자로서 그 프로그램에 지원했다. 그는 그 프로젝트를 맡은 6명의 프로그래머 중 한 명이 되었고[1], 곧 베티 홀버튼과 함께 그 프로젝트의 공동리더가 되었다. 바틱과 홀버튼은 별다른 지원없이도 프로젝트를 이어나갔다. 수업, 매뉴얼, 일할 공간조차 주어지지 않았지만 ENIAC은 성공적으로 개발되어 1946년 세상에 발표됐다. 개발을 하는 동안 프로그래머들은 탄도 궤적 계산이라는 단순한 작업이 목표였던 기계의 능력을 전자식 계산기로 확장했고, 이를 이루기 위해 프로그래밍에서 벗어나 기계의 하드웨어를 조작하는 방법까지 익혔다.

ENIAC의 개발 후 바틱은 다양한 프로젝트에 꾸준히 참여했다. 그는 ENIAC을 sotred program computer로 전환하는 프로젝트를 맡아 진행해 1948년 3월에 성공적으로 발표했다. 이 과정은 ENIAC이 클리핑거의 Wind tunnel program을 지원할 수 있도록 했고, 속도와 질을 개선했다. 전쟁이 끝나갈 무렵에는 모클리와 에컬트의 프로젝트에 다시 합류하여 BINACUNIVAC I를 개발했다.

바틱은 ENIAC의 개발에 있어서 개발을 한 여성 프로그래머보다 프로젝트를 만든 남성들에게만 관심이 쏟아진 것에 대해 목소리 내기도 했다. 그는 "Pioneer Programmer: Jean Jennings Bartik and the Computer that Changed the World"라는 책을 저술해 ENIAC을 개발할 때의 자신의 경험과 기여도를 세상에 알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