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미위키:포크 프로젝트/리브레 위키/김강

최근 편집: 2021년 11월 14일 (일) 13:16

두산 베어스 소속의 내야수. 포지션은 1루수이다.

선수생활

광주제일고 출신으로 학창 시절 맹타를 휘두르는 강타자로 주목받았다. 2005년 황금사자기에서 5할이 넘는 미친 타격을 보여주며 팀을 우승으로 이끌었고, 2006년 세계청소년야구선수권 대회에서도 김광현, 양현종과 함께 한국이 우승하는데 큰 기여를 하였다. 이때만 해도 당연히 기아에서 1지명을 할 것이라 예상하였으나 2007년 신인 드래프트에서 기아는 그를 지명하지 않았다. 정확한 이유는 알 수 없지만 2007년 5월 최희섭이 해외파 특별지명으로 기아에 입단한 걸로 보아 최희섭 입단으로 1루 자원이 확보되는 만큼 김강에 목맬 이유가 없었던 게 아닌가 싶다.

결국 2차 3순위(전체 21번)로 한화 이글스에 지명되었으나 한화에서도 날개를 펼치지 못했다. 그의 주 포지션은 거포와 1루수가 겹치는 선수가 한화에서도 많았다는 게 문제인데, 당장 주전 1루수가 김태균이고 백업이 김태완이었다. 결국 김태균이 FA로 떠난 2010시즌 막바지에야 장성호와 김태완의 부상 및 부진을 틈타 콜업되었다. 이미 10시즌 2군에서 홈런왕 및 타점왕을 차지, 강력히 떠오르고 있어서 테스트 차원에서 김강을 콜업했는데 몇 경기 되지 않지만 14경기 24타수 10안타(0.417)로 1군에서도 변하지 않는 맹타를 보여주었다. 2010시즌 한화의 타자 중 규정타석을 채우면서 3할을 기록한 선수가 단 1명[1]이었던지라 한대화 감독과 팀, 팬들의 기대는 대단했다.

결국 김태균이 쓰던 등번호 52번을 물려받으며 2011시즌 주전 1루수로 안착했다! 장성호의 부상, 김태완의 입대로 1루수를 볼 선수가 아예 사라지면서 확고부동한 주전 자리를 차지하나 싶었는데... 본인이 날아온 기회를 발로 차면서 무산된다.(...) 시즌 초반 1루수로서 여러 차례 실책을 보여주며 수비 불안을 여실히 보여주었고, 10시즌 막바지 보여준 맹타는 어디간듯, 첫 6경기동안 17타수 2안타(0.118)에 그치며 삼진만 6개를 당했다. 결국 4월 11일자로 2군으로 내려갔고, 5월 5일 1군으로 복귀하며 선발 출장하였으나 또 다시 실책을 저지르면서 김혁민의 4무자책실점 패배의 원흉이 되고 다음날 바로 2군으로 내려갔다. 타격이야 사이클이 있다지만 내야 수비 중 가장 쉽다는 1루에서 계속 큰 실책을 저지르니 도저히 대책이 없었던 것.

그리고 5월 5일 경기는 김강이 한화에서 치른 마지막 1군 경기가 되었다.

시즌 종료 후 상무 피닉스 야구단에 지원, 합격하여 군복무 문제를 해결하려는 찰나, 2차 드래프트로 두산 베어스의 지명을 받고 이적하였다. 이후 상무에서 2년을 보낸 뒤 2014시즌에 전역, 팀에 합류하였지만 두산의 두터운 팜을 뚫지 못하고 2군에 계속 남아 있는 실정이다.

특이사항

한화 시절 응원가는 당시 유행하던 차두리의 우루사 광고 CM송에서 따왔다. 강때문이야~ 강때문이야~~ 승리는 강때문이야! 그런데 승리가 아니라 패배를 불러왔으니...

동기이며 불행한 병으로 세상을 떠난 이두환의 추모 자선 일일호프 행사에 꾸준히 참석하는 의리있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참 좋은 모습이지만, 문제는 이 행사 말고는 언론에 노출되는 일이 없다. 씁쓸한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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