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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편집: 2021년 11월 14일 (일) 12:46
묘호 장종(莊宗)→장조(莊祖)
생몰년도 음력 서력 1735년 1월 21일 ~ 서력 1762년5월 21일
양력 서력 1735년 2월 13일 ~ 서력 1762년 7월 12일
재위기간 음력 추존왕
양력 추존왕
부모 어머니 영빈 이씨
아버지 영조
배우자 혜경궁 홍씨
후임 왕 (정조)
시호 사후시호 장헌세자(莊獻世子) → 장종 장헌대왕(莊宗莊獻大王)
대한제국
추존이후
장조의황제(莊祖懿皇帝)
선(愃)
생몰장소 탄생장소
사망장소
윤관(允寬)

개요

사도세자(思悼世子)는 조선왕세자이자 추존왕이다. 영조의 둘째 서자로, 효장세자의 이복 동생이며 정조의 생부이다. 장헌세자(莊獻世子)로 부르기도 한다. 휘는 선(愃), 본관전주 이씨(全州李氏), 자는 윤관(允寬). 호는 의재(毅齋)이다.

영조의 둘째 아들로 생후 1년 만에 세자로 책봉되었으며 1749년 왕명으로 대리청정을 시작하였으나 노론, 부왕과의 마찰과 정치적 갈등을 빚다가 1762년(영조 38년) 왕명으로 뒤주에 갇혀 아사하였다. 사후 지위만 복권되었고, 양주 배봉산에 안장되었다가 다시 수원 화성 근처 현륭원(융릉)에 안장되었다. 정조 즉위 후 장헌의 존호를 받았다. 정조는 재위 중 그를 왕으로 추존하려는 시도를 하였으나 노론계열의 반발로 무산되고 만다. 한편 부인 헌경왕후는 후일 저서 한중록에서 그가 의대증과 정신질환을 앓았다고 진술했고, 실록에도 그의 병이 기록되어 있는 것으로 보아 적어도 우울증이나 화병 같은 병을 앓고 있었던 것은 확실해 보인다.[1] 시호와 존호는 사도수덕돈경홍인경지장윤융범기명창휴찬원헌성계상현희장헌세자[2]였다가 후에 고종 때 왕으로 추존되면서 장종(莊宗)의 묘호를 더하여 장종신문환무장헌광효대왕(莊宗神文桓武莊獻廣孝大王)이라고 하였다. 대한제국 때 황제로 격상되어 장조의황제(莊祖懿皇帝)로 추존되었다.[3] 비교적 근래의 무속 신으로, 무속 신앙에서 모시는 신의 한 사람으로 숭배되었는데, 이때의 호칭은 '뒤주대감'이었다.

생애

초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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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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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영조 99권, 38년(1762 임오 / 청 건륭(乾隆) 27년) 윤5월 13일(을해) 2번째기사 "~천자(天資)가 탁월하여 임금이 매우 사랑하였는데, 10여 세 이후에는 점차 학문에 태만하게 되었고, 대리(代理)한 후부터 질병이 생겨 천성을 잃었다. 처음에는 대단치 않았기 때문에 신민(臣民)들이 낫기를 바랐었다. 정축년15394) ·무인년15395) 이후부터 병의 증세가 더욱 심해져서 병이 발작할 때에는 궁비(宮婢)와 환시(宦侍)를 죽이고, 죽인 후에는 문득 후회하곤 하였다."
  2. 思悼綏德敦慶弘仁景祉章倫隆範基命彰休贊元憲誠啓祥顯熙莊獻世子
  3. 황제로서의 시호는 장조사도수덕돈경홍인경지장윤융범기명창휴찬원헌성계상현희신문환무장헌광효의황제(莊祖思悼綏德敦慶弘仁景祉章倫隆范基命彰休贊元憲誠啓祥顯熙神文桓武莊獻廣孝懿皇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