혈의 누

최근 편집: 2023년 5월 10일 (수) 17:28

개요

이인직 (1862-1916)이 1906년 7월 22일부터 10월 22일까지 3개월에 걸쳐 만세보에 연재한 신소설이다. 작가가 작가이다 보니[주 1] 북한 문학정전에서는 아예 지워졌고 남한에서도 오랜 세월동안 친일소설로서 평가절하 되어왔으나 최근 문학적 가치가 인정되어 재평가 받고 있다.

조선의 구국과 문명개화를 지향하는 꽤 민족주의적인 성향의 소설이나 그 문명을 개화하는 과정이 반민족주의적이라는 아이러니...

신소설

1900년도에서 1920년도까지 유행했으며 한글로 쓰여졌다. 기존 중화사상을 기반으로 한 문학의 형태에서 탈피한 [주 2] 근대 소설의 초기 형태라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신소설'이라는 장르로 분류되는 이유는 근대 소설이라고 불리기엔 단순하고 개연성이 부족한 전개 때문이라고.[주 3] 항간에는 현대의 기준을 1900년도 초반에 쓰여진 소설에 적용하는건 시대착오적인 행위가 아니냐는 의견도 있다.

줄거리

배경은 청일전쟁 때의 평양. 혼란 속에서 일곱살의 옥련은 부모님과 떨어져 헤매다가 부상을 입지만 이노우에라는 일본인 군의관에 의해 구출된다. 옥련은 그 뒤 이노우에의 부인이 있는 일본으로 보내져 학교를 다니며 교육도 받는다. 그러나 이노우에가 전사하자 개가를 꿈꾸는 부인에게 구박당하던 옥련은 집을 나와 방황하다가 구완서를 조우한다. 구완서는 미국으로 유학을 가 서양문물을 받아들이고 조선을 부강하게 만들겠다는 생각을 가진 혁신론자였다. 구완서와 뜻이 맞은 옥련은 그와 함께 미국으로 간다. 한편 옥련의 어머니인 춘혜는 남편과 딸을 잃은 충격으로 대동강에서 투신자살을 기도했으나 구출된다. 옥련의 아버지는 구국을 위해 외국으로 유학간다. 옥련은 미국에서 고등소학교를 우등으로 졸업한 자신의 기사를 본 아버지와 만난 뒤 구완서와 약혼한다. 한편 구출되어 평양에 살던 옥련의 어머니는 죽은 줄만 알았던 딸에게서 편지를 받는다.

왜 친일인가?

이 소설이 친일소설이라고 불리는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일단 고국인 조선은 양반 마님인 춘혜 (옥련의 어머니)가 체면 불구하고 길바닥으로 뛰쳐 나와 딸을 찾으며 울부짖을 정도로 혼란스러운 사회로 묘사된다. 이인직은 조선이 이 정도로 열악한 환경이 된 것을 외세의 침략 때문보다는 '우리'의 탓으로 돌린다. 그의 주장은 '이제 조선은 구제불능이니 살고 싶으면 떠나거나 남아서 춘혜같은 꼴을 당하거나'인데 이는 옥련의 아버지인 김관일의 가족을 버리고 유학을 택하는 행동으로 드러난다. 재미있는 점은 이인직이 일본을 위험한 조선으로부터의 안전한 대피처라고 묘사함에도 불구, 일본도 완벽한 도피처는 아니라는 뉘앙스도 내비친다는 것이다. 이는 옥련이 결국 이노우에의 집에서 쫓겨나게 되는 장면에서 드러난다. 이인직이 생각한 가장 완벽하게 문명화되고 안전한 대피처는 미국이다. 보면 문명개화와 가족상봉은 미국에서 공부함으로써 이루어진다. 작 중 옥련과 구완서는 미국에서 구국을 목표로 미국에서 교육을 받는데 여기서 개화의 증거로 양성평등이 꽤 비중있게 다뤄진다. 구완서는 양성평등을 지향하는 '깨어있는 남자'로 묘사가 되는데 그 시대에 남자에 연장자인 구완서가 옥련에게 반말을 하라고 하는 장면이 그 증거이다 (근데 옥련이가 계속 존댓말 하는 게 함정).{{주구완서가 종종 영어로도 대화를 시도함에도 옥련은 꿋꿋하게 한국어 존댓말로 그에게 답한다. 이는 한국인으로서의 아이덴티티를 놓지 않겠다는 의지라고도 해석할 수 있지만 또 여성으로서 남편(남성)에게 순종한다라고 해석도 할 수 있다. 작 중 양성평등(개화)이 이뤄진 미국에서 옥련이라는 소위 '배운 여성'이 남편에게 여전히 순종하는 모습을 보이는 것은 이인직이 정의하는 조선인 개화의 한계를 보여준다. (이인직이 의도한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또한 마찬가지로 서양문물을 받아들인 옥련의 아버지, 김관일은 옥련과 김관일의 결혼에 대해 옥련의 의견에 존중하는 태도를 보인다. 하지만 이 양성평등 주제의 한계는 꽤 명백히 드러난다; 옥련이 구완서의 프로포즈를 수락하게 된 결정적인 이유는 구완서가 결혼을 하게 되면 조선으로 돌아가 자신의 아내로서 함께 서구 사상 전파에 힘쓰자는 제안을 했기 때문인데 따라서 옥련이 주체적으로 이데아를 전파하는 것이 아니고 한 남자의 아내, 그러니까 조력자로서 일을 돕는 것이 된다. [주 4] 이러한 한계가 있지만 어쨌든 소설 속에서 미국은 양성평등을 이룩한 문명국으로 묘사된다. 거기다가 옥련이 미국에서 공부해서 우등으로 졸업해 신문에 나니 그걸 보고 집 나갔던 아버지가 찾아오기까지 한다. 정말 완벽한 국가가 아닐 수 없다. 하지만 옥련과 구완서가 이토록 '완벽한 국가'에서 유학을 하고 구국을 다짐하며 조선으로 돌아감에도 불구하고 엔딩은 꽤 비관적이다. 이인직은 옥련과 구완서가 조선으로 돌아가 노력해봤자 그들의 노력이 허사가 될 뿐이고 문명개화는 식민권력을 통해 이루어진다고 주장한다. 이는 제국주의의 정당화라고 볼 수 있다.

부연 설명

  1. 일본제국육군의 통역병으로서 활동한 바 있으며 이완용의 비서였다.
  2. 그래서 보통 이광수 등 혁신론자들에 의해 많이 쓰였다.
  3. 예를 들자면, 우연의 일치가 많아도 너무 많다.
  4. 이 역시 이인직이 '조선인 개화의 한계'를 보여주기 위해 의도한 것인지 아니면 본인은 '조국을 위한 결혼' 이라는 국수주의적 코드를 넣고 싶었는데 일이 이렇게 된 건지는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