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자 룩셈부르크(독일어: Rosa Luxemburg, 1871년 3월 5일 ~ 1919년 1월 15일)는 폴란드 출신의 혁명가, 정치이론가, 철학자, 사회주의자이다.
생애
거리의 전투나 감옥의 나의 자리에서 죽기를 소망한다.
로자 룩셈부르크는 1870년 폴란드 자모슈치의 유복한 목재상 집안 가정에서 태어났다.[1] 16살 때 프롤레타리아 당에 가입하면서 좌파활동에 뛰어들었다. [1] 스위스 취리히 대학을 다녔는데 이 곳이 여성의 입학을 거부하지 않는 곳이었다.[2] 이곳에서 정치와 경제, 법을 공부하는 동시에 노동운동도 하였다.[1] 1898년에는 독일인과 위장결혼하여 독일 국적을 취득하고 독일 내 사회주의 활동에 발을 들였다.[1] 로자는 1899년 베른슈타인을 비판하는 사회개혁이냐 혁명이냐라는 글을 발표하면서 이론가로서의 입지를 다졌다.[1]
1919년 스파르타쿠스단 봉기를 이끌었지만 실패하면서 1월 15일 반혁명 세력 왕당파에 의해 총살당했다.[1] 사망 5개월 후 머리와 손발이 없이 발견된 한 시신이 로자 룩셈부르크의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1]
사상
저서
- 자본의 축적
- 사회 개혁이냐 혁명이냐(1899)
평가
레닌에 필적했던 인물이며, 레닌주의가 수반할 관료주의와 공포정치를 끊임없이 비판했다. 그가 꿈꾸던 세상은 “혁명과 사회주의와 민주주의의 화해와 공존” “대중의 의지에 대한 존중”이라고 요약할 수 있다.[3]
관련 자료
- 로자 룩셈부르크의 사상, 토니 클리프
- 로사룩셈부르크 평전, 막스 밀로
로자 룩셈부르크 국제 학술대회
1980년부터 2년에 한 번 세계 주요 도시에서 '로자 룩셈부르크 국제학술대회'가 열린다. 2015년에는 성공회대에서 개최되었다. [4]
같이 보기
출처
- ↑ 1.0 1.1 1.2 1.3 1.4 1.5 1.6 김혜미 (2009). [세상을 앞서간 여성들] 대중, 역사를 바꾸는 힘 - 로자 룩셈부르크(Rosa Luxemburg). 새가정, 26-29.
- ↑ “‘진짜’ 대학이 필요하다”. 《한겨레21》.
- ↑ 김흥순 (2018년 1월 22일). “불요불굴의 여성혁명가, 자유로운 영혼 로자 룩셈부르크(Rosa Luxemburg)를 기억하며”. 《개미뉴스》. 2018년 4월 24일에 확인함.
- ↑ “‘아시아 사회주의와 유럽 사회주의’를 이야기하자”. 《참세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