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재적 범죄자

최근 편집: 2019년 12월 6일 (금) 22:11
Femtree (토론 | 기여)님의 2019년 12월 6일 (금) 22:11 판 (→‎반론)

개념

잠재적으로 범죄를 일으킬 가능성이 있는 사람을 뜻하나 보통 여성대상범죄 이슈가 쟁점화되면 한국 남성들이 “나를 잠재적 범죄자 취급하지 마라”라는 식으로 쓰이는 경우가 많다. 또는 주변 여성이 범죄에 대한 공포를 표현하면 “남자를 잠재적 범죄자로 만들지 마라”라고 이야기한다. 이 경우 형제품으로는 “낫올맨”이 있다.

반론

일단 여성들이 막연한 공포를 갖는 이유부터 알아야 한다. 성범죄의 80%가 아는 사람에 의해 이루어진다. 아빠, 오빠, 남동생 같은 가족과 직장 및 대학 동료와 선후배등 기타 지인에 의해서 말이다. 많은 범죄자가 주변 평판이 좋았다고 하며 피해자에게도 범죄를 일으키기 전 친절하게 대해줬다고 한다. 즉, 누가 성범죄의 의도를 가지고 있는가를 아무도 모른다. 성폭력뿐만이 아니다. 사흘에 한 번 꼴로 데이트폭력 사망자가 나온다. 가장 가까운 남자친구나 남편에게도 두려움이 존재할 수 있다.

졸음운전 버스가 사람들에게 많은 공포감을 준 적이 있었다. 사고 동영상을 본 운전자는 운전을 하다가 자신의 뒤에 버스가 있다면 그 자리를 빨리 피하고 싶을 것이다. 뒤에서 운전하는 버스기사가 깨어있는지 졸고 있는지 전혀 모르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해서 우리가 그 버스기사를 잠재적 살인마로 부르지 않는다. 여성들도 마찬가지다. 그 두려움은 어떤 남자가 폭력적일 때가 있는지, 그렇지 않은지 전혀 알지 못한다.

즉 대부분의 여성들은 ‘잠재적 피해자’로서 살아가는 것에 공포를 느끼는 것이고, 본인을 '잠재적 범죄자'라고 하는 것처럼 느끼는 것은 남성들이다. 여성들은 그저 생존에 대한 막연한 공포를 표현했을 뿐인데, 남성들이 그 호소를 자신을 향한 화살로 받아들였다.

남성 자신도 남성들을 잠재적 범죄자로 취급한다. 애인에게 호신용품 사주고, 정신 잃을 때까지 술 마시면 무슨 일 생길까 걱정하고, 옷 짧게 입지 못하게 하고, 밤늦게 택시 태우면 불안해한다. 본인을 제외한 모든 남성들을 전부 잠재적 범죄자로 보는 것이다.

위 내용이 이해가 됐는가? 그렇다면 이제 자신을 '잠재적 피해자'로서 인식하며 살아야 하는 여성들을 생각해보자. 공공장소에서 편히 화장실도 가지 못하는 여성들, 택배나 배달음식을 집 앞에 두고 가라고 하며 문 밖을 나오면서 두리번거리는 여성들, 내 전화번호와 주소를 알고 있는 배달원에게 온 '커피 한 잔 하자'는 문자를 어떻게 거절해야 하나 두려워하는 여성들을.

즉, “나를 잠재적 범죄자 취급하지 마라”는 문제의 본질인 ‘여성의 공포’를 해결하는 데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 그 발언은 수많은 성범죄자들을 방관하기 위한 발언이다. 옆에 있는 여성 대신 수많은 가해자들을 보호하는 발언이다. 방관이 아닌 행동을 해야 한다.

게다가 잠재적 가해자라는 저 말도 생각해보면 굉장히 이상합니다. 저 말이 특수한 상황에서 사용되는, 아주 예외적인 말일까요?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저 말에 담긴 논리는, 차라리 일반적입니다. 가령 야간에 자동차를 몰면 음주단속이 실시되는 걸 볼 수 있습니다. 여기서 경찰들은 운전자를 잠재적 음주운전자로 간주해서 단속을 하고, 또한 그것에 응하는 운전자도 그렇게 느낍니까? 아니지 않습니까? 나는 음주운전을 하는 사람이 아니지만, 그럼에도 운전자들 중에서는 음주운전을 하는 나쁜 놈이 있으니까, 그놈을 걸러내기 위해서 경찰업무에 협조해주자고 생각하지 않습니까? 공항검색대에서도 테러리스트를 붙잡아야하니까 검문에 응해주는 것이 아닙니까? 저는 잠재적 가해자라는 말이 이와 같은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네들의 일상은 이처럼 잠재적 가해자를 붙잡기 위해, 기꺼이 일련의 행정조치와 생각들에 응해주는 시민정신으로 구성된 거 아닙니까? 저는 여성들의 목소리가 남성을 잠재적 가해자로 몰고 가는 폭력이란 발상을 떠올리는 것도 이해하지 못하겠고, 설사 표현적으로 그렇게 보인다 치더라도 그 진의(眞意)가 진짜 대다수 남자들을 범죄자로 몰고 가려는 것이 아님을 왜 이해하지 못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예외사항 - 사회적 약자

정신질환자

정신질환자를 잠재적 범죄자로 생각하는 것은 명백한 약자 혐오다. 실제 정신질환자의 범죄율은 비질환자의 50% 미만이다.[1] 특히 전체 범죄에서 정신질환에 의한 범죄는 0.4%에 불과하다.[2] 정신질환자의 범죄는 대부분 치료를 받지 못한 경우에 발생한다. 정신질환자의 범죄는 정신질환의 발견과 치료가 제대로 이루어진다면 예방이 가능하다는 이야기다. 정신질환자에 대한 편견과 혐오가 커질수록 정신질환자는 정신건강의학과에 방문하는 것을 두려워하게 된다. 에이즈(AIDS)는 고혈압과 비슷한 치료방법(약만 먹으면 수치가 내려가고 전염도 되지 않음)이 있음에도 보수기독교단체의 에이즈환자혐오 때문에 에이즈 환자가 숨게 되어 문제가 더 확산되는 것과 같은 원리다. 또한, 범죄 원인을 정신질환에 두면 경찰은 할 일이 없어진다. 범죄를 줄이는 책임을 경찰에게 묻지 않기 때문이다.

이주노동자 및 난민, 조선족 및 중국동포

난민범죄율은 세계적으로 낮다. 빵 하나 훔치면 우리는 최대 벌금형을 생각하지만, 그들은 추방당하느냐 아니냐를 고민한다. 난민 범죄율이 상승하는 일부 국가는 미국 흑인처럼 범죄로 몰리는 상황에서 일어난다. 혐오 문제는 난민뿐만 아니라 이주노동자 및 백인을 제외한 외국인도 마찬가지다. 아래는 <우리 몸이 세계라면> 책에서 외국인 범죄에 대한 내용을 발췌한 내용이다.

범죄자의 외국인 여부에 따른 언론 보도 비율(2011.01.01~2012.12.31)에 따르면 21,866건의 범죄 기사 중 1,690건(7.7%)이 피의자가 외국인임을 명시한 기사였습니다. 같은 기간 경찰청 자료에 따르면 686,920명이 범죄를 저질렀고 그중 6,508명(0.9%)이 외국인이었습니다. 한국인의 범죄 중에서는 3.0%를, 외국인의 범죄 중에서는 26.0%를 언론에서 보도한 것입니다. 외국인 범죄에 대한 보도 비율이 8.67배 높은 것입니다. 실제 2011년, 2012년 내국인과 외국인의 범죄율을 비교해보면 어떤 기준으로 하더라도 내국인의 범죄율이 외국인보다 높습니다. 예를 들어, 2011년 1년 동안 경찰청 범죄 통계에 따르면 한국인은 100명 중 3.52명이, 외국인은 100명 중 1.83명이 범죄를 저질렀습니다. 살인, 강도, 강간, 강제추행과 같은 강력범죄로 한정해 범죄자 비율을 살펴보더라도 한국인은 100명 중 0.84명, 외국인은 100명 중 0.58명입니다. (중략) 외국인 범죄에 대한 두려움이 한국사회에 널리 퍼진 데에는 언론의 편향적인 보도가 중요한 역할을 했을 수 있다는 이야기지요. 영화나 드라마에서 부정적인 모습으로 외국인을 묘사하거나 언론을 통해 외국인의 범죄가 더 부각되거나 빈번하게 보도되는 것은 이러한 편견을 강화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조선족 및 중국동포도 혐오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범죄도시>, <차이나타운>, <황해>, <신세계>, <청년경찰> 등에 등장하는 중국동포는 사람들에게 편견을 심어준다. 다음은 2019년 1월 대림동 방화사건 후 인터넷 기사를 발췌한 내용이다.

"조선족의 입국을 금지하라"

위 글은 지난 28일 대림동 방화사건을 전한 기사의 베스트 댓글이다. (중략)

2015년 서울대 아시아연구소 한국사회과학자료원이 성인 1000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응답자 중 45.6%가 중국동포들이 한국의 범죄율을 높인다고 답했다. (중략)

대림동 중앙시장 인근은 일부 미디어의 부정적인 이미지 전달 등으로 '범죄도시'로 인식되기도 한다. (중략)

■ 대림동 상인 "중국동포 많다고 해서 더 위험하지 않아" (前略) 한국인 C씨는 약 40년간 대림동에서 부동산을 운영했다. 그 역시 대림동에 대한 편견과 오해가 많다며 안타까움을 드러냈다.

C씨는 "한 15년 전 정도부터 중국동포가 모여들기 시작하더니 지금은 한 80%가 되는 것 같다"며 "상권이 생기던 시절에 사건·사고가 빈번히 일어난 건 맞지만 지금은 그렇지 읺다"고 일축했다.

그러면서 "중국동포에 대한 편견이 그들을 더욱 모여 살게 만들고 고립시킨다"며 "대림동을 그들만의 세계로 보는 사람이 많지만 와서 직접 와서 보면 편견과 다르다고 느끼게 될 것. 범죄도시가 아니"라고 전했다.

실제로 중국 현지 음식을 좋아해서 아내와 외식하러 왔다는 40대 D씨는 "처음엔 조금 무섭긴 했는데 중국 사람이 많은 것 빼고는 크게 다르지 않더라"며 "사실 이상한 사람을 몇 번 보긴 했는데 어딜 가도 그런 사람이 있다고 생각한다. 가끔 대림동에 오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말했다.

■ 대림지구대 관계자 "영화 탓에 오해 받지만 현실은 달라"

2017년 한국형사정책연구원이 발간한 경찰청 통계에 따르면 2015년 인구 10만명 기준으로 내국인 범죄자는 3369명이다. 이에 비해 중국인은 1858명으로 조사됐다. 동일 인구수로 비교했을 때 내국인의 범죄율이 더 높은 셈이다.

또 대림동 일대 살인·강도 등 5대 범죄 발생건수는 2015년 상반기 624건, 2016년 521건, 2017년 471건으로 3년 동안 25% 가량이 감소한 것으로 나타나기도 했다.

무슬림

2013년 5월 울위치에서 일어난 영국인 병사 리 릭비 살해 사건을 계기로 무슬림을 향한 폭력이 우려스러울 정도로 분출하고 있는데, 8월에 벌어진 할로 이슬람 센터 방화 공격은 그중 가장 근래의 일이다.

‘반(反)무슬림 공격 측정 프로젝트’는 릭비 살해 사건 이후 한 주 동안에만 이슬람 혐오 공격 212건이 일어났고 기록했다. 2012년 한 해 동안 532건이 일어났는데 말이다. 런던 경찰청은 울위치 사건 이후 무슬림을 향한 공격 신고가 런던에서만 여덟 배로 증가했다고 인정했다.

이런 공격들은 이슬람 혐오가 고조된 것을 배경으로 한다. 언론은 울위치 사건의 범인들에게 “도축용 칼을 휘두르는 이슬람 광신도”라는 딱지를 붙였다. 모든 정당의 정치인들은 무슬림들에게 이 사건을 분명하게 비난하라고, “선한” 무슬림이라면 영국에 충성심을 보이라고 요구했다. 이런 상황을 고려하면, 설문조사에서 세 명 중 한 명이 무슬림을 “민주주의에 대한 위협”이라고 생각한다는 결과가 나온 것은 놀랄 일은 아니다.

9·11 공격 이후 10년 동안, 무슬림을 테러리즘, 광신, 배척성과 엮는 것은 일상 언어의 일부가 됐다. 이슬람 혐오적 사고방식의 “정상화”는 어떻게 이슬람 혐오가 영국 사회에서 오늘날 인종차별의 최첨단이 돼 왔는지를 보여 준다.

(중략)

일상적으로 무슬림을 비하하는 것은 주류 문화 깊숙이 침투했다. 축구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전(前) 감독인 론 앳킨슨이 TV 프로그램에 출연해, 동료 참가자가 스웨터를 히잡처럼 머리에 뒤집어썼을 때 “폭탄 가지고 다니는 거 아니죠?” 하고 물을 정도이다.

이슬람 혐오의 부상은 영국만의 현상이 아니다. 모스크 건설, 첨탑 건립, 머릿수건이나 이슬람식 머리 스카프[히잡] 착용 등이 금지되면서, 이른바 유럽이 “이슬람화”되고 있다는 공포에 기반한 반무슬림 서사가 제도화해 왔다. 2011년 노르웨이에서 아네르스 브레이비크가 벌인 광란적 학살로 77명이 사망한 사건은 무슬림에 대한 이런 증오가 가장 극단적으로 표출된 것이었다.

이슬람 혐오적 발언은 편견을 기초로 한다. 무슬림은 사회에 통합되기를 거부하고, 무슬림의 자녀는 영어를 말할 줄 모르고, 무슬림은 그들만의 폐쇄적 공동체 안에서 살고, 영국·유럽·“서구”의 가치에 적대적인 신앙과 삶의 방식을 고수한다는 것이다. 이런 편견은 사회 깊숙이 뿌리내린 인종차별의 책임을 그 사회가 아니라 인종차별의 피해자들에게 지운다.

이런 상황을 직시하면, 왜 많은 무슬림이 이슬람 혐오를 인종차별의 독특한 형태로 보는지 이해할 수 있다. 오늘날 횡행하는 이슬람 혐오를 완전히 새로운 현상으로 보는 것은 실수일 것이다. 이슬람 혐오는 아프리카계 카리브해인들에게 “게으르고, 일하기 싫어하며, 무책임하다”는 딱지를 붙이는 것과 그리 다르지 않다. 기존의 인종차별적 사고가 존재하지 않았다면, 반무슬림 인종차별은 존재할 수 없을 것이다.

이슬람 혐오적 사고방식은 또한 이슬람과 무슬림을 획일체로 그린다. 그러나 무슬림은 다른 “신앙” 공동체만큼이나 이질적이고 다양하다. 영국에 사는 무슬림만 해도 인도 아대륙, 서아프리카, 북아프리카, 중동, 터키, 동유럽에서 왔다.

이 무슬림 공동체들의 전통은 그들 고향 사회의 국민적, 민족적 특징에 따라 크게 달라진다. 이슬람교는 다른 모든 종교처럼 유동적이고, 변화를 겪고, 발전 과정에서 여러 요소의 다양한 영향을 받으며 변형된다.

흑인

범죄비율이 비당사자보다 높다면 잠재적 범죄자로 봐야 할까? 미국에서 흑인범죄비율이 백인에 비해 굉장히 높은 것이 사실인데도, 그 사실을 발설하는 순간 회사나 학교에서 징계를 받는다. 미국 사회에서는 사회 구조가 흑인을 범죄로 내몬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사회적 강자와 사회적 약자를 다르게 봐야 하는 이유

사회적 약자를 잠재적 범죄자로 보는 것은 혐오범죄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이와 반대로 사회적 강자를 잠재적 범죄자로 보는 것은 기분이 나쁠 뿐 범죄로 이어질 가능성이 거의 없다. 예를 들어, 일본인이 한국에 와서 “조선인이 일본인을 죽이려 한다.”라고 말하는 것은 한국인에게 아무런 타격이 없지만, 일본에서 같은 말을 한다면 재일동포를 공포에 몰아넣을 수 있는 방법이 된다. 아래는 사회적 약자를 잠재적 범죄자로 보았을 때 일어난 혐오범죄 사례다.

미국 내의 무슬림 차별

9.11 테러 이후 무슬림 혐오범죄는 이전보다 5배가 증가했다. 테러 이전에도 혐오범죄가 존재했다는 말이기도 하다. 테러 이후 총기를 이용한 사살, 의도적으로 무슬림을 공포로 몰아넣는 일, 전철을 기다리는 무슬림을 밀어죽이는 등 수많은 무슬림 혐오범죄가 발생했다. 무슬림 차별과 혐오범죄는 현재진행형이다. 2016년에는 9.11테러 이후 최고 수치를 찍었다.

뉴질랜드 이슬람 사원 총기 난사 테러

2019년 3월, 뉴질랜드 크라이스트처치 이슬람 사원에서 총기 난사 사건이 일어났다. 이 사건으로 50여 명이 사망하고 40여 명이 부상을 당했다. 뉴질랜드 정부는 이를 혐오범죄로 인식하고, 총리는 기자회견에서 “중동 이주민을 지속적으로 받을 것이고, 총기 규제를 강화하겠다.”고 말했다. 더불어 이슬람 사원에 희생자 가족을 위로하기 위하여 히잡을 쓰고 방문했고, 아랍어로 인사를 하는 등 참된 리더로서의 품격을 보여주었다. 대한민국 대통령이 히잡을 쓰고 아랍어로 인사를 하면 여론은 어떤 반응을 보일까.

관동 대학살

조선인도 혐오범죄에 희생당한 경험이 있다. 1923년 9월 1일 일본 관동 지방에서 사망자와 행불자를 합하면 14만 명이 넘고, 부서진 건물만 수십만 채인 규모 7.9의 악몽과 같은 대지진이 일어났다. 이 지진으로 인해 340만여 명의 이재민이 생겨났다. 그리고 "조선인이 집집마다 우물에 독약을 던져 놓고 있으니, 먹는 물을 주의하라", "조선인이 폭동을 일으켰다"라는 유언비어가 퍼지기 시작한다. 화를 풀 대상이 필요했던 많은 일본인은 그 소문을 믿고 "조선인은 죽여도 된다."는 생각을 갖게 된다. 이는 곧 인종청소로 변하고 6000명이 넘는 조선인이 살해당한다.

시사뉴스 이슬람 난민 혐오 기사

우리나라도 2019년 올해 관동 대지진 때의 소문과 비슷한 유언비어를 퍼뜨리려는 기사가 나왔다. 2019년 6월, 뉴스에는 서울을 비롯한 전국에서 붉은 수돗물이 나온다는 보도가 잦았다. 붉은 수돗물의 원인은 바로 낙후된 수도관이었다. 그런데 뜬금없이 시사뉴스에서 <문래동도 붉은 수돗물… “일부 이슬람 난민 소행일 수도”>라는 제목의 기사를 냈다. 일부 사람들은 이 말을 믿기도 했다. 다행히 며칠 후 기사는 내려갔지만, 이런 기사가 스스럼없이 반복해서 나오고 사람들이 선동된다면 관동 대학살의 실수가 이곳에서 반복될 수도 있을 것이다.

고양 저유소 화재 사건

2018년 10월 고양에 한 저유소에서 불이 났다. 호기심에 풍등을 날리던 외국인노동자가 용의자로 지목되었다. 경찰은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보도 초기에 외국인노동자를 비난하는 목소리가 높았다. 이때 하마터면 “이주노동자를 쫓아내야 모든 문제가 해결된다.”로 결론이 날 뻔했다. 시설관리 부실 문제로 실제 문제의 원인이 밝혀지고 여론도 바뀌면서 다행히도 같은 이유로 불이 날 가능성은 줄어들게 되었다.

덧붙여, 사회적 강자는 실제 범죄율이 높은 반면 사회적 약자는 그 위치성으로 인해 실제 범죄율이 더 낮기도 해 상대적인 강자가 약자에게 잠재적 범죄자라고 부르는 것은 그 자체로 모순이기도 하다.

출처

  1. 2015, 보건복지부
  2. 2011, 경찰통계연보
  3. 김승섭. 《우리 몸이 세계라면》. 동아시아. 162-163쪽. 
  4. 윤홍집 김홍범 기자 (2019년 1월 31일). "저희 범죄도시 아니에요" 대림동 차이나타운의 속사정”. 《파이낸셜뉴스》. 
  5. 탈라트 아흐메드 , 번역 김동욱 (2018년 7월 17일). “이슬람 혐오 ― 인종차별적 편견일 뿐”. 《노동자연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