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경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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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경리
본명박금이
출생1926년 12월 2일(1926-12-02)
일제 강점기 경상남도 통영군 통영읍
사망2008년 05월 05일 ()
대한민국 서울특별시
국적대한민국
직업소설가
종교천주교(대데레사)
상훈금관문화훈장, 현대문학상 등 다수
정보 수정
본명 박금이 (朴今伊)
국적 대한민국
출생 1926년 12월 2일
일제강점기 경상남도 통영군 통영면 대화정 328

(현 경상남도 통영시 문화동 328-1)[1]

사망 2008년 5월 5일 (향년 81세)
서울특별시 서울아산병원
직업 소설가
수훈 금관문화훈장 (2008년 추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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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력 진주공립고등여학교 (1945년 졸업)
서울가정보육사범학교 가정과 (1950년 졸업)
부모님 아버지 박수영, 어머니 김용수
배우자 김행도 (1946년 결혼-1950년 사망)
자녀 김영주 (1946년 출생-2019년 사망)

아들 김철수 (1948년 출생-1956년 사망)

묘소 경상남도 통영시 산양읍 신전리 1426-6 (박경리선생묘소)
종교 가톨릭 (세례명 : 소화 데레사)
본관 밀양 박씨
데뷔작 계산 (1955)

박경리(朴景利)는 대한민국의 소설가이다. 본명은 박금이(朴今伊). 대표작은 대하소설 <토지>이며, 이 외에도<김약국의 딸들>, <불신시대> 등 많은 작품을 집필했다.

생애

1926년 경상남도 통영군 통영읍(현 통영시)에서 태어났다. 1945년 진주여자고등학교를 졸업한 뒤 정신대에 끌려갈 것만 같은 공포 속에 결혼하였으나 남편 김행도는 1950년 한국전쟁 중에 좌익으로 몰려 서대문 형무소에서 사망하였다. 직후 박경리는 아들마저 잃었다.

1955년 소설가 김동리의 추천으로 단편 〈계산〉과 1956년 단편 〈흑흑백백〉이 현대문학에 발표되면서 작가로서의 본격적인 삶을 시작했다. 1969년부터 1994년까지 25년 간 한국 문학사에 길이 남을 대하소설 <토지>를 집필하였다. 2007년 7월, 폐암이 발견됐으나 고령의 나이를 이유로 치료를 거부하였다. 하지만 병세가 악화되어, 2008년 4월 4일 뇌졸중 증세까지 나타나 서울아산병원에 입원하였다가 의식불명 상태에 빠져 중환자실에서 치료를 받던 중 2008년 5월 5일 향년 83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1] 대한민국 정부(당시 이명박)는 박경리의 사망 직후, 금관문화훈장을 추서하기로 결정하였다.[2] 먼저 사망한 남편과의 사이에 아들과 딸을 두었으나 아들은 잃고 외동딸 김영주만이 생존하였다. 김영주는 1973년에 시인 김지하와 결혼하였는데, 당시 박경리는 딸의 순탄치 못한 삶을 염려하며 매우 반대했었다고 한다. 실제로 시인 김지하는 유신 독재에 맞서며 수차례의 수감 생활을 하였고 박경리와 김영주, 김영주의 어린 아들은 지난한 삶을 보내야만 했다. 딸 김영주는 현재 강원도 원주시의 토지문화관 관장직을 맡고 있으며, 사위 김지하는 후에 "할 말이 없다, 빚을 많이 졌다"고 고백했다.[3]

그의 삶과 <토지>

<토지>에는 전쟁과 독재로 얼룩진, 폭풍과도 같았던 한국 현대사의 한복판을 살았던 소설가 박경리의 냉혹했던 삶이 승화되어 있다.[3] <토지>는 최참판 일가와 이용 일가의 가족사를 중심으로 구한말부터 일제강점기를 지나 광복까지의 내용을 5부 16권, 624만 자에 걸쳐 다루고 있다.

출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