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혜련

최근 편집: 2021년 11월 15일 (월) 2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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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혜련
본명이혜련
본관안성 이씨 [1]
학력정신여자고등학교 (졸업)
상훈건국훈장 애족장
정보 수정

이혜련대한민국




상훈 = 대한민국의 전 독립운동가이다. 2008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받았다.

도산 안창호의 부인이다.

생애

1884년 4월 21일 평안도 강서현 보원방 화학리(현 평안남도 천리마군)에서 서당 훈장이던 아버지 이석관(李錫觀)의 2남 2녀 중 장녀로 태어났다. 이후 한성부 정신여학교에서 신학문을 배웠다.

1902년 안창호와 결혼하였다. 이후 안창호와 미국으로 이주하여 독립운동에 참여하였다. 1905년 안창호를 도와 공립협회를 결성하여 미주 한인사회의 민족운동을 지도하였다. 이후 대한인국민회를 지원하였고 부인친애회, 대한여자애국단 등의 독립운동 단체에서 활동하였다.

당시 많은 독립운동가 분들의 부인들이 그러했듯, 바깥에서 큰 일하고 남 도와주는 남편을 내조하기 위해 생활고를 겪으며 어렵게 생활하셨다. 더욱이 안창호선생이 남 일 지나치지 못하고 잘 도와주는 편이었기에 더더욱. 증언에 따르면 미국에서도 삯바느질을 하며 돈을 모으셨다고 한다. 안창호 선생은 주로 중국에서 독립운동을 하며 미국에 잘 오지 못했기에 자녀양육을 거의 혼자 전담해야 했다.

1963년 막내 안필영(당시 36세)과 함께 61년 만에 고국을 방문하였다. 그리고 남편을 대신해 대한민국 정부로부터 건국훈장 대한민국장을 추서받았다.

1969년 4월 21일에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별세하였다.[[1]] 1973년 안창호의 유해와 함께 서울특별시 도산공원에 안장되었다. 2008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이 추서되었다.이혜련은 미주 여성독립운동을 이끈 여성 항일 독립운동가이다. 이혜련은 대한여자애국단 결성, 미주 여성독립운동계를 이끌었다. 남편 안창호와 함께 미국으로 이주한 뒤 동포사회의 결속을 도모하며 공립협회, 흥사단, 독립자금지원활동 등을 했다. 3.1운동이 발발하자 부인친애회를 조직하여 독립의연금 모금에 앞장섰고, 북미 여성독립운동 단체를 통합한 대한여자애국단 결성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 해외 동포들과 독립운동을 적극 지원했으며, 해방 이후에는 미주 동포를 위한 봉사활동에 앞장섰다. [2]


생애

1884년 태어나 1969년 사망하였다. 52번째 미국 비자를 받아 1902년 10월 14일 미국 땅에 도착했다.[3] 안창호가 바쁜 시기에 장남 필립을 혼자 출산했다.[4] 생계를 위해 장남 필립과 함께 과일 노점상을 했고 수산과 수라는 이혜련을 도와 집안일을 거들었다.[4]

상훈

출처

  1. “이혜련(李惠鍊)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2021년 11월 15일에 확인함. 
  2. 여성독립운동가사전. 심옥주. 천지당(한국여성독립운동연구소)
  3. 박현순 (2018년 10월 28일). “코리안 아메리칸 안수산을 만나다 <2>”. 《경남일보》. 
  4. 4.0 4.1 4.2 박현순 (2018년 10월 4일). “코리안 아메리칸 안수산을 만나다<1>”. 《경남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