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랏일이 급한데 암탉 수탉 가리지 말고 써야지 언제 저런 병아리를 길러서 쓰겠느냐. 암탉이 낳은 병아리가 저렇게 꼬꼬댁 거리니 길러서 쓰려면 아직도 멀었다.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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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적 | 대한민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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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력 | 동래여자고등학교 졸업 니혼 여자대학 사회학부 여공보전학과 전문 (졸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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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 | 교육자 정치인 저술가 사회운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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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력 | 서울중앙여자고등학교 재단 이사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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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 | 천주교(세례명: 요한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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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원 선수 | 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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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당 | 신민당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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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여학교의 교사로 있을 시절 제자들에게 정신대 지원을 종용하였고 1명을 정신대로 보낸 친일 행적이 있다.1948년 최초의 남한단독선거에서 종로에 출마했는데, 이때 종로의 홍등가와 제2부인들, 첩 등은 축첩반대, 공창폐지를 외치는 대한부인회 회원들에게 "표를 줄 리가 있겠냐"는 발언을 하였다. 5선의원으로 활약했고, 60년대 내내 민주당 지도부를 맡았다. 서서 16시간을 일하는 여공에게 생리휴가가 필요도를 역설하였다. 국회의원들을 쫒아다니면서 설득하였고, 이후 생리휴가법을 두고 박순천법이라 할 정도로 크게 기여하였다. 산전산후휴가 역시 박순천이 입법한 것이다. 식민지 시절에는 농촌여성의 생활에 관심이 많아서 절미운동 등 직접 생활 속으로 파고들어가는 운동을 했다. 밥 공장, 탁아소에 대한 아이디어를 제기하기도 하는 등 모성애의 사회화라는 래디컬 페미니즘적 의제까지 두루 섭렵했다.[2][3] 육영수여사추모위원회 이사장을 맡아 친정부 성향을 가지고 있다.
선거
실시년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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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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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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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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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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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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득표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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득표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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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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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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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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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8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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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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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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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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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종로구 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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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촉성애국부인동지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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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518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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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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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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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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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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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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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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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종로구 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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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부인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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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51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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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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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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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4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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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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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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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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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종로구 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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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소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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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06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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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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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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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8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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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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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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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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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시 동구 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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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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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907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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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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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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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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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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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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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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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시 동구 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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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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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668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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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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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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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3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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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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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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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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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마포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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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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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250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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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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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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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7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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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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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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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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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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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민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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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54,224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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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구 1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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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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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