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당 여성주의 논쟁

최근 편집: 2017년 7월 1일 (토) 17:16

정의당여성주의 논쟁의 흐름을 정리한 페이지다. 본래 정의당 문예위 논평 철회 사건 문서의 내용들로 구성되어있으나, 해당 사건이 일정 시점을 지나면서 여성주의 논쟁으로 집중되어온 경향이 있기 때문에 당원비상대책회의 성명서를 기점으로 별도 문서로 분리하였다. 논평 철회 이전의 여성주의 논쟁에 대해서도 해당 문서에서 다룬다.


당원게시판에서의 논쟁

사이버 공간에서의 여성주의 논쟁

정의당 여성주의 논쟁은 사이버 공간 안에서 일어난 여성주의 논쟁이다. 이에 따라 몇 가지 특징을 보인다.

첫째, 이제까지 인터넷에서 일어난 남녀 갈등과 다를 바 없는 양상을 빚었다. 워마드의 댓글을 캡쳐해서 당원게시판에 올리고 그를 통하여 동의를 호소했다. 또한, 인터넷에서 "여성부가 예산을 낭비하고 있다" 는 글이 돌아다니는 것처럼, 정의당 당원게시판에서도 "여성위원회가 예산을 횡령하고 있다" 는 의혹이 있었다.

둘째, 인터넷 사이트 '오늘의 유머'에 대한 친밀감이 나타나며, 몇몇 남초 커뮤니티들이 종속 집단으로 기능하는 것을 볼 수 있다. "오늘의 유머에 가서 빌었다" "오늘의 유머에게 미안하다" "친구들에게 욕을 먹는다" 등등의 말이 나오고 있다.

셋째, 신상털이가 일어나고 있다. 상대방의 SNS 게시글을 뒤져서 캡쳐하여 그 것을 상대방의 잘못이라고 주장하고, 계정 사칭 등의 일도 일어나고 있다. 또한 특정 인물들 몇몇에 대한 악마화가 보인다. 예를 들어 강남역 살인 사건에서 피켓팅을 한 최모 당원을 5인의 청년당원들이 제소하려 하자, '태도불량' 당원이 그 5인의 당원들에게 "패권주의자", "학벌주의자" 라고 말하며 몇 주간 사과문을 요구한 적이 있다.[주 1]

성평등전략위원회 김미선 간사의 경우 홈페이지 게시판 관리를 겸직하고 있는데, "홈페이지위원회와 여성위원회 사이에 뭔가가 있다" 는 주장의 근거가 되었다. 홈페이지위원회에 대한 민원이 계속해서 들어갔으며, 'yonna' 당원이 김미선 간사의 전화번호를 게시판에 올리면서 "여러분이 원하시던 김미선 간사님의 연락처입니다" 라고 말하기까지 했다.

찻잔 속의 태풍에서 진짜 태풍이 되기까지

영원히 고통받는 여성위원회

성평등강사 해촉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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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정치발전기금 논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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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고통 받는가?

정의당 여성위원회가 집중 공격 받는 가장 큰 이유는 '여성부'에 대한 사실이 아닌 루머들이 인터넷상에서 양산되는 것과 같은 맥락을 가지고 있다. 여성위원회가 실질적인 권한이 그리 크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마치 큰 힘을 갖고 있는 사람처럼 회자되고 반감을 얻는 경향이 나타난다.

또한 여성위원회에 대한 당 지도부의 반감도 적지 않게 작용한다. 진보정당의 부문위원회는 위원장을 소속 당원들의 투표로 선출하는데, 심상정 대표는 이러한 시스템을 선호하지 않는다. 정책미래내각을 만든 이유도 독자적인 인사권을 행사하기 위함이었다는 것이 가장 크게 작용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여성위원회의 무능을 지적할 수 있다. 당 내 여성주의 논쟁이 발발하기 이전까지 여성위원회는 여성 의제를 선점해오는데 소극적이었고, '여성당원소풍'에 치중하는 경향이 있었다. 이는 의제발굴보다 조직사업에 집중하는 인천연합(정파)의 성향이 반영된 것이기도 한데<ref>이는 인천연합에서 주도하는 캠페인 박하여행과 외곽조직 서울여성회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현상이다. 인천연합은 정의당 내 여성주의자의 규모를 키우기보다 서울여성회의 규모를 키우는데 치중하는 경향이 있다. 청년 부문의 '레드카드 행진단'도 마찬가지.[주 2]

추가로 여성주의를 강경하게 주장하는 진보결집+(평등사회네트워크)의 지분은 많지만, 타 정파에 비해 머릿수가 밀리는 것도 있다. 실제로 정책을 밀려고 해도, NL계인 인천연합,PD계인 새진보통합연대,노동정치연대,국민모임, 참여계에 머릿수가 밀리기 때문이다.

역사

정의당 여성주의 논쟁:역사

부연 설명

  1. "학벌주의자"라는 공격이 나온 이유는 5명의 당원 중 3명이 청년학생위원회 소속이었고, 그 중 2명은 대학 학생위원회 위원장이었기 때문이었다.
  2. 이는 자연스레 중앙당에서 부문위원회들을 '무능한 조직'으로 인식하는 결과를 빚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