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 부인(이화학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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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부인이화학당의 첫 번째 학생이다.

학업

김 부인은 30대였던 1886년 5월 31일 밤 중에 하인을 거느리고 왕비의 통역관이 되고 싶다며 메리 스크랜턴을 찾아 갔으며 곧 이화학당의 첫 번째 학생이 되었다.[1][2][3] 김 부인은 이후 3개월간 1대 1로 영어수업을 받았으나 이내 학업을 중단하고 말았다.[2]

기타

  • 김 부인은 기혼으로 어느 고관의 소실[주 1] 이었다.[4]
  • 김 부인이 자신의 소망대로 여성통역사가 되었는지에 대해서는 알려진 바가 없다.[2]

부연 설명

  1. 높은 관리의 첩.

출처

  1. 허문명 기자 (2005년 5월 31일). “[책갈피속의 오늘]1886년 이화학당 설립”. 《동아닷컴》. 2018년 1월 15일에 확인함. 
  2. 2.0 2.1 2.2 “이화학당”. 《문학콘텐츠닷컴》. 2018년 1월 15일에 확인함. 
  3. 유신재 기자 (2006년 5월 30일). “이화여대 창립 120돌”. 《한겨레》. 
  4. “창립이념 및 역사”. 《이화여자대학교》. 2018년 1월 15일에 확인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