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본 정보
표시 제목 | 신여성(한국) |
기본 정렬 키 | 신여성(한국) |
문서 길이 (바이트) | 6,830 |
이름공간 ID | 0 |
문서 ID | 10613 |
문서 내용 언어 | ko - 한국어 |
문서 내용 모델 | 위키텍스트 |
로봇에 의한 색인 | 허용됨 |
문서를 주시하는 사용자 수 | 5 |
이 문서를 최근에 방문한 주시하는 사용자 수 | 4 |
이 문서의 넘겨주기 수 | 0 |
본문으로 집계 | 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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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키베이스 항목 ID | 없음 |
문서 보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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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 역사
문서 작성자 | 쮸우쮸우빔 (토론 | 기여) |
문서 작성 날짜 | 2017년 8월 1일 (화) 10:03 |
마지막 편집자 | Swi01330 (토론 | 기여) |
마지막으로 편집한 날짜 | 2018년 11월 14일 (수) 19:01 |
총 편집 수 | 20 |
최근 편집 수 (지난 90일 이내) | 0 |
최근 기여자 수 | 0 |
문서 속성
SEO 속성
설명 | 내용 |
문서 설명: (description )This attribute controls the content of the description and og:description elements. | 개화기에 들어와 (일부의) 여성은 가정이라는 한정된 사적 영역에서 벗어나 바깥으로 출입하며 교육을 받을 수 있게 되었다. 1910년, 대한제국이 한일합병조약을 맺어 국권을 빼앗기고, 조선총독부는 여성에 대한 교육을 전개하게 된다. 조선총독부에 의하면 여성의 교육은 부덕(婦徳)을 지니게 하여 한사람의 국민으로 형성하기 위함이었는데, 이는 식민 공간에서 보다 용이한 지배를 위한 교육이었기에 여성은 한정된 교육 밖에 받지 못하였다. 따라서 당시의 여성들은 더욱 고등한 교육을 받기 위하여 일본으로 유학을 가게 된다. '신여성'의 예비역들은 이렇게 탄생하게 된다. 신여성은 이후 식민공간인 조선에서 '여성해방론'을 전개하게 되며 '현모양처론'과 대립을 이룬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