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월선(全月善) 혹은 전월순(全月順)
생애
1923년 2월 6일 경북 상주에서 2녀로 태어났다.[1] 주로 북쪽인 북경 등에서 활동하던 중 16세였던 1939년 9월 중국 구이저우성 구이린에서 조선의용대에 입대해 일본군에 대한 정보수집 등 공작활동을 했다.[2][3]
1942년 임시정부 국무회의의 결정에 따라 광복군에 편입됐다.[2][4] 그 해 4월 20일부터 광복 직전까지 광복군 제1지대 대원으로 활동했다.[4] 1942년 백범 김구가 19살 전월선과 30살 김근수의 결혼을 주선했다.[5] 1944년 아들 김원웅을 낳았다.[5]
전월선은 독립운동에 대해 "여성의 몸으로 독립군이 되는 것은 쉬운 삶은 아니었다"며 "그러나 이것은 나 한사람만의 고민이 아니었다. 한사람의 운동가가 나오기에는 수많은 주변사람들의 고통이 있었다"고 회고했다.[5]
1945년 해방 후 남편과 함께 부산에 도착한 후 서울 마포구에 자리잡고 생계를 위해 갖가지 행상을 하며 살았고,[1] 아들은 어머니가 가난한 집에서 고생만 하셨다, 자신이 큰 시험을 앞둘 적엔 어머니가 절에 가 백일기도를 드렸다 등으로 회상했다.[6][7] 1976년 10.26 사건 이후 용인군 구성면 보정리 87번지로 이사하여 국가에서 지급하는 원호금으로 생계를 유지하고 1992년 남편과 사별한 이후부터는 독신생활을 하였다.[2][1]
2009년 4월 중환자실에 입원,[8] 5월 25일 오후 1시 노환으로 별세했다. 향년 87세.[2] 국립대전현충원 애국지사 제4묘역에 안장됐다.[4] 안장식은 아들은 김원웅을 비롯한 가족과 이덕남 등 조문객 등 2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추모사, 조사, 헌화 및 분향, 하관 순으로 진행됐다. [9]
상훈
-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2]
- 1993년 국가유공자증(증 제13-41호)
기념
- 2011년 이윤옥의 시집 서간도에 들꽃이 피다
- 2014년 경상북도독립운동기념관 광복의 밑거름이 된 경북 여성들 기획전
- 2018년 국립대전현충원 8월의 현충인물 선정[4]
- 2019년 경상북도독립운동기념관 9월의 독립운동가 선정[10]
- 2019년 이윤옥의 시집 여성독립운동가 100분을 위한 헌시
기타
출처
- ↑ 1.0 1.1 1.2 “전월순”. 《용인문화원》.
<참고:독립운동사 6권, 독립유공자공훈록>, 이인영
- ↑ 2.0 2.1 2.2 2.3 2.4 “부고/ 여성 광복군 전월선 여사 별세”. 《한국일보》. 2009년 5월 26일.
- ↑ 이민봉 기자 (2019년 5월 7일). “김원웅 전 의원, “광복회장 당선 되면…‘친일찬양 금지법’만들겠다”밝혀”. 《경인매일》.
- ↑ 4.0 4.1 4.2 4.3 이용환 기자 (2018년 7월 31일). “국립대전현충원, 8월의 현충인물로 여성 광복군 전월선 애국지사 선정”. 《뉴스티앤티》.
- ↑ 5.0 5.1 5.2 5.3 박주연 기자 (2011년 8월 10일). “[한국의 정치명가⑤]독립운동가 김근수-전월선 부부”. 《뉴시스》.
- ↑ 원희복 선임기자 (2019년 6월 3일). “[원희복의 인물탐구]새 광복회장 김원웅 “우리 친일청산 없이 일본 비난 못 해””. 《주간경향》.
- ↑ 김원웅/ 국회의원 (2006년 7월 15일). “김원웅/“無言의 가르침 주신 나의 하늘””. 《불교신문》.
- ↑ “여성 광복군 전월선 여사 타계”. 《민족문제연구소》. 2009년 5월 25일. 2019년 12월 23일에 확인함.
- ↑ 박광원 기자 (2009년 5월 28일). “여성독립군 故전월선여사 국립현충원 안장.”. 《파이낸셜신문》.
- ↑ 오영운 기자 (2019년 9월 18일). “9월의 독립운동가 김봉식·전월순 선생 선정”. 《모던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