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충현

김충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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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충현은 한국파워O&M 소속 비정규직 선반 노동자로, 2025년 6월 2일 태안화력발전소 기계공작실에서 혼자 일하다 기계에 끼여 숨졌다. 김용균이 숨진 곳에서 다시 발생한 하청 노동자의 죽음으로, 이를 계기로 정부와 민간이 함께하는 협의체가 꾸려져 한전KPS 하청 노동자 직접고용 합의가 나왔다.

생애

2016년부터 태안화력발전소에서 일했고, 재계약이 되지 않은 2021년을 제외하면 약 9년을 2차 하청업체 소속 비정규직으로 일했다.[1] 그동안 그를 고용한 업체는 여덟 번 바뀌었다.[1] 기계 정비, 설비 유지보수, 용접, 배관, 에너지관리 같은 기술을 익히며 28년간 일한 숙련 기술자였고, 국가 기술 자격증을 12개 가지고 있었다.[1] 동료와 친구들은 그를 꼼꼼하고 성실한 베테랑 기술자로 기억했다.[1]

한국서부발전의 정비 업무를 하청받은 한전KPS가 다시 하청을 준 한국파워O&M 소속이었고, 한전KPS 기계공작실의 선반기계 6대를 혼자 돌리는 선반사였다.[2] 사회적 약자와의 연대를 실천했고 탄핵 촛불집회에도 참석했던 것으로 알려졌다.[3]

사망

2025년 6월 2일 오후 태안화력발전소 종합정비동 1층 기계공작실에서 혼자 선반 작업을 하던 중 숨졌다.[2] 경찰은 CCTV를 근거로, 수동 선반기계로 밸브 손잡이 부품을 만들던 중 회전축에 옷소매가 끼면서 부품이 헬멧과 머리를 때려 숨졌을 것으로 보고 수사했다.[1] 기계에는 비상정지 장치가 있었지만, 혼자 작업하던 탓에 대신 눌러 줄 사람이 없었던 것으로 추정된다.[1]

한국서부발전은 사고 직후 국회 의원실에 사고 경위를 "선반 주변을 임의 정리 중 끼어 의식 없음"이라고 회신했고, 한전KPS는 "작업 오더에 포함되지 않았던 사항"이라는 설명자료를 냈다.[1] 고 김충현 사망사고 대책위원회는 구두 지시로 일하는 것이 일상이었고 이번 작업도 회사의 지시였다고 주장했다.[1] 고인이 작성한 작업 전 안전회의 서류에는 한전KPS 관리감독자의 서명이 있고 유해·위험 내용으로 '회전체 감김 주의'가 '위험도 고(高)'로 적혀 있었다고 한다.[1] 서부발전은 '임의'라는 표현을 쓴 데 대해 유족에게 사과한다고 밝혔고, 한전KPS는 급히 입장을 내느라 그렇게 표현되었다고 답했다.[1]

대책위는 현장 확인 결과 타원형 부품을 고정하기에 알맞은 4본 단동척이 없고 3본 연동척만 있었으며, 작업자가 기계에 말릴 위험을 막는 안전장치는 없었다고 밝혔다.[1] 대책위는 숨지기 한 시간가량 전까지 한전KPS 직원에게 작업 결과를 보고한 카카오톡 대화 내역을 공개하며, 이를 한전KPS가 작업을 지시한 증거이자 불법파견의 증거라고 주장했다.[1]

추모와 투쟁

공공운수노조와 김용균재단으로 구성된 대책위원회는 2025년 6월 3일 한국서부발전 본사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진상규명, 외주화 중단, 책임자 처벌을 요구할 예정이라고 밝혔다.[2] 6월 6일 서울역 광장에서 추모 문화제가 열렸고, 서산·태안 노동자들은 대통령실 앞까지 행진해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 정규직화 등을 담은 요구안을 대통령 비서실장에게 전달했다.[3]

사고 보름 뒤인 6월 16일 대책위는 유족의 뜻에 따라 장례를 치르기로 했다고 밝혔다.[4] 대책위는 서부발전, 한전KPS와 밤샘 협상을 했으나 결렬되었다고 밝히고, 19일부터 용산 대통령실 앞에서 노숙 농성에 들어가겠다고 했다.[4] 6월 18일 태안의료원 장례식장에서 발인이 엄수되었고, 이어 태안화력발전소 정문 앞에서 영결식을 열고 김용균 동상 옆에 추모나무를 심을 예정이라고 대책위가 밝혔다.[5]

2025년 9월 10일 사망 100일을 맞아 태안화력발전소 정문 앞 김용균 추모조형물 옆에 김충현의 추모비석과 추모나무가 세워졌다.[6] 비석에는 "빛을 만드는 노동자 김충현, 비정규직 없는 세상을 꿈꾸며 잠들다"라는 문구가 새겨졌다.[6]

수사

충남경찰청은 2026년 3월 10일 한국서부발전 1명, 한전KPS 4명, 한국파워O&M 3명 등 관리·감독자 8명을 업무상과실치사 혐의로 불구속 송치했다고 밝혔다.[7] 경찰은 사고 원인으로 선반 방호장치 미흡, 가공물 고정 불량, 2인 1조 작업 원칙 위반, 작업 절차 미준수, 형식적인 위험성 평가 등을 꼽았다.[7] 한국서부발전 대표와 한전KPS 대표 등 3명은 불송치했고,[7] 대책위는 이에 반발해 재수사를 요구했다.[7]

직접고용 합의

김충현의 사망을 계기로 '고 김충현 사망사고 재발 방지를 위한 발전산업 고용·안전 협의체'가 2025년 8월 출범해 김선수 전 대법관을 위원장으로 활동했다.[8] 협의체는 2026년 2월 10일 한전KPS가 발전설비 경상정비 하도급 계약 노동자 전원을 직접고용하기로 하는 합의문을 발표했다.[8] 2025년 한전KPS 계약을 기준으로 593명이 대상이다.[8]

2026년 5월 30일 대책위는 서울에서 1주기 추모대회를 열고, 직접고용 완료 시한인 5월 31일을 하루 앞두고도 합의가 지켜지지 않고 있다고 비판했다.[9]

출처

  1. ↑ 1.00 1.01 1.02 1.03 1.04 1.05 1.06 1.07 1.08 1.09 1.10 1.11 “김용균 이후 6년··· 태안화력에서 왜 또 사람이 죽었나”. 《시사IN》. 2025년 6월 23일. 2026년 11월 1일에 확인함. 
  2. ↑ 2.0 2.1 2.2 “김용균 사망 한국서부발전 원·하청, 노동자 또 죽었는데 “임의 작업” “파급피해·영향 없음” 책임 회피 급급”. 《한겨레21》. 2025년 6월 3일. 2026년 11월 1일에 확인함. 
  3. ↑ 3.0 3.1 “"또 죽였다" 김용균 6년 후, 김충현의 이름으로 외친다”. 《오마이뉴스》. 2025년 6월 7일. 2026년 11월 1일에 확인함. 
  4. ↑ 4.0 4.1 “故김충현 노동자 장례 3일장으로…공장 앞 영결식·나무 식수 예정”. 《노컷뉴스》. 2025년 6월 16일. 2026년 11월 1일에 확인함. 
  5. ↑ “정부, 태안화력발전소 사망사고 관련 협의체 운영…14일 만에 김충현씨 장례식”. 《경향신문》. 2025년 6월 18일. 2026년 11월 1일에 확인함. 
  6. ↑ 6.0 6.1 ““가장 밝고 큰 별이 되길”…고 김충현씨 사망 100일 맞아 추모비 건립”. 《경향신문》. 2025년 9월 10일. 2026년 11월 1일에 확인함. 
  7. ↑ 7.0 7.1 7.2 7.3 “‘태안화력 김충현 사망사고’ 원·하청 관계자 8명 송치”. 《경향신문》. 2026년 3월 10일. 2026년 11월 1일에 확인함. 
  8. ↑ 8.0 8.1 8.2 “사망사고 더는 없게…한전KPS 하청노동자 600명 직접고용(종합)”. 《연합뉴스》. 2026년 2월 10일. 2026년 11월 1일에 확인함. 
  9. ↑ “태안화력 고 김충현 1주기…“비정규직 직접고용 약속 지켜야””. 《KBS》. 2026년 5월 30일. 2026년 11월 1일에 확인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