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얼

최근 편집: 2023년 11월 10일 (금) 09:26

조선 태종 13년(1413)에 법적으로 중혼이 금지되었다. 그런데 축첩제는 유지됐다. 그리하여 '적자'와 '서얼'의 구분이 생겼다. 양인 첩이 낳은 자식은 서자, 천인 첩이 낳은 자식은 얼자라 하고, 통칭하여 서얼이라고 불렀다.

서얼금고법이라 하여 서얼은 관직 진출을 금지하는 등 차별을 받았다. 17세기 북한강변에 살던 서얼 7인은 '강변칠우'라는 모임을 결성해 여주에 모여 살면서 도둑질을 하고서는 "우리는 도둑이 아니라 장차 큰일을 도모코자 한다'고 선포했다. 순조 23년(1823)에는 서얼 유생 9996명이 만인소를 올려 차별 금지를 요구하기로 했다. 이를 다룬 소설로 '홍길동전'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