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백회

최근 편집: 2020년 5월 18일 (월) 01:29

송백회는 80년대 이후 진보여성운동의 근간이 된 최초의 민주여성조직으로 5·18 광주 민주화 운동에서 한 축을 담당했다.

1978년 11월 설립됐다. 나혜영이 회장을, 홍희윤이 총무를 맡았다. 전남대학교 학생, 민청학련 사건에 연루된 사람들의 부인, 교사, 간호사, 의사 등 직업여성, YWCA 총무와 교회 여성 등 전남 지역의 각계각층의 진보적 여성들이 모였다.

첫 활동은 양심수를 지원하는 옥바라지 사업이었다. 이후 학습모임이 꾸려졌는데, 유신과의 대결 뿐만 아니라 사회운동의 측면에서 여성학을 수용해 일본 기생관광의 실태, 농촌여성의 현실 등에 대한 학습을 진행했다.[1] 도자기전, 붓글씨전을 통해 사회운동을 위한 자금을 모았다. 도자기전을 해서 모은 70만원이 최초의 항쟁 자금으로 쓰였다. 1980년 5월 17일 계엄령으로 인한 예비검속으로 기존 운동권이 구속되면서 송백회가 광주 민주화운동의 주축을 담당했다. 23일부터 26일까지의 다섯 차례의 시민궐기대회의 중심세력이 송백회와 극단 '광대'였다. 시민군 조직화에 가세하고, YWCA를 중심으로 한 항쟁공동체를 통한 선전, 선동 활동, 취사팀, 화염병과 투사회보 제작, 물품 확보와 보급에 참여했다. [2]

출처

  1. 동별 (2019년 12월 19일). “광주 여성운동의 뿌리 송백회와 삼봉조합의 형성”. 《1980년 5월 그날의 이야기》. 2020년 5월 18일에 확인함. 
  2. 구민채 기자 (2020년 4월 27일). “우리가 몰랐던 5월 광주의 여성들”. 《서울대저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