젠더 문제를 말하는 SF의 방식

최근 편집: 2024년 6월 11일 (화) 18:15

2016년 10월 3일 제12회 서울와우북페스티벌에서 진행된 북토크(좌담회) '젠더 문제를 말하는 SF의 방식 ― 변화와 진보의 문학이라는 SF에서의 현실의 차별에 대한 문제 제기'에 대한 문서이다.

변화와 진보의 문학이라는 SF에서 사회적 약자, 특히 젠더 문제를 다루는 방식에 관해 이야기하는 자리. '지금, 이곳'와 다른 다양한 세계를 배경으로 성 정체성, 성적 지향 등의 문제에 관한 현실의 차별에 문제를 제기하고, SF에서 가능한 방식으로 젠더 문제를 적극적으로 드러낸 어슐러 K. 르귄, 제임스 팁트리 주니어, 옥타비아 버틀러 등의 작품을 살펴본다. (출처: 공식 홈페이지 소개글)

강연

인상 깊었던 SF 작품과 관점

송경아: SF하면 변화, 미래, 다른 세계가 먼저 떠오른다. 여기에 사회적 약자, 젠더를 다루는 방식에 대해 이야기하고자 한다. SF라는 장르는 다른 장르와 달리 현실의 이야기보다 더 급진적 의제, 더 이상적인 세계, 그러면서도 터무니없는 것이 아니라 있을 수 있는 상상을 그린다. 차별이 극복된 세계를 그리기도 하고. 사회적 약자·소수자 친화적인 문학이라고 생각한다. 광선검과 레이저총을 쏘는 남성적인 스페이스 오페라처럼 'SF는 남성적일 것'이라는 선입견과 달리 SF의 효시라 할 수 있는 작품은 여성 작가인 메리 셸리의 「프랑켄슈타인」이다.

최근 한국에는 어슐러 K. 르 귄, 코니 윌리스, 버틀러, 제임스 팁트리 주니어 등이 소개되고 흥행하면서 '페미니즘 SF'에 대한 관심이 늘어났다.


두 작가님께 "작가로서, 그리고 팬으로서 인상 깊었던 SF와 관점"을 질문드린다.


김보영:

옥타비아 버틀러의 『킨』을 소개한다. 시간여행 장르인데 주인공이 흑인 여자이다. 소수자의 정체성을 지키면서도 야만과 편견의 시대를 그리며 '투쟁'하는 것에 경외감을 전달한다. 옥타비아 버틀러는 정말 처참한 이야기를 하는데도 자신을 핍박하는 사람들·시대에 대한 증오가 없다.


정소연:

나도 『킨』을 소개드린다. 『킨』은 정말 고통스러운 작품임에도 고통을 숨기지 않고 보여준다. 읽으면서 다시 읽지 못하겠다는 생각을 했다. 읽기 전에 마음의 준비를 하시라.

이외에는 『블러드차일드』에 수록된 단편 「말과 소리」를 추천한다. 짧아서 내용에 대해서는 자세히는 말하지 않겠다. 순식간에 상실할 수 있는 무언가, 상실로부터 사람이 얼마나 유연하게 회복할 수 있는가, 상실의 반복하는 사람들이 어떻게 살아가는지, 그럼에도 어떻게 지속할 수 있는지를 아름답게 그린다.


송경아:

단편집 『체체파리의 비법』의 표제작인 「체체파리의 비법」을 추천한다. 「비애곡」도 비슷한 것 같다. 모두 여성의 생식능력이 인류의 생존을 좌지우지하는 극한 상황을 다룬다. 그런 작품들의 계보를 그릴 수 있을 것 같다. 옥타비아 버틀러도 「블러드차일드」에서 외계인에게 숙주가 되어 임신을 하게 되는 남성을 그리고, 어슐러 르 귄은 「어둠의 왼손」에서 고정된 성이 아닌 자웅동체인 사람들을 그린다. 로버트 하인라인의 『달은 무자비한 밤의 여왕』은 여성이 급감해서 대접받는 낙관적인 상황을 그린다. 반대로 마거릿 애트우드의 「시녀 이야기」는 여성이 급감하자 권력자들의 공공재가 된다는 디스토피아를 그린다.

임신·출산을 SF가 어떻게 다루는가

송경아:

그렇다면 과연 SF에서 여성의 생식, 임신·출산은 어떻게 다뤄질까? 임신·출산은 모든 여성이 다 하는 체험이 아니면서도 여성만 할 수 있는 체험인데, 사회·시대에 따라 양상이 달라지기도 한다. 두 분께 'SF에서 생식, 임신, 출산은 어떻게 다뤄졌는지, 어떻게 다룰 것인지'에 대해 질문드린다.


김보영:

『시녀 이야기』는 가임기 여성이 줄어들어 국가의 통제를 그리는데 만화 『오오쿠』와 비슷하다. 『오오쿠』에서는 남자의 수가 줄어들자 남자가 천대받는 사회상을 그린다. 여기서 차별은 이성과 별개의 영역이라는 것이 드러난다. '누가 약자인가'를 우리는 본능적으로 약자를 파악하고 차별한다. 우리 사회는 과거의 젠더사이드(여아낙태)가 현대의 여성혐오 증가로 이어지고 있다. 이성적인 영역에서는 숫자가 적은 여자를 보호해야 하니 페미니즘이 대두되지만 감정적인 영역에서는 되려 여성혐오가 늘어난다. 이 상황을 SF가 다루지 않았나 생각한다.


정소연:

저는 더 거슬러 올라간다. SF에서 임신·출산은 최소한 1960년대 이후의 SF에서 중요한 주제였다 생각한다. '여성이 현실에서 짊어지는 삶의 무게'를 SF라는 거대한 은유로 그렸다고 생각한다.

어떤 주제든 비슷한 흐름을 거친다. 초기 SF에는 장애인이 거의 없다. 그런데 1950년대의 하인라인의 SF에는 장애인이 나온다. 하인라인에게 군 경험(야전병원)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처럼 '소수자의 경험'을 '가시화(볼 수 있는 것)'와 '쓰는 것'이라는 두 단계를 거치며 작품에 등장하게 된다. '본다는 것'은 이성적인 것이다.

1960년대 이후 SF는 왜 스마트해졌는가? 많은 이들이 베이비부머 세대가 대학에 많이 진학했고, 작품을 쓸 수 있는 여성 작가가 늘어났기 때문으로 본다.


송경아:

정 작가님은 임신·출산을 어떻게 다루시겠는가?


정소연:

내가 임신과 출산을 다루지 않는 건 ―아마 없을 것이다― 모르기 때문이다. 많이 생각해본 적은 없지만 다룰 수도 있겠다는 생각은 한다. 그 이유는 가임기 이후부터 '나는 임신할 수 있다'는 생각 때문이기도 하고. 동생의 출산 경험을 가까이서 봤기 때문이다. 그 전에는 출산과 육아를 가까이서 본 적이, 목도한 적이 없었다. 조카의 출산과 '성장이라는 변화'를 보았다.


김보영:

임신과 출산은 여자라서 알 수 있는게 아니다. 출산 비슷한 것이라면 입양을 다룬 엽편을 쓴 적은 있다. 주인공이 양자 입자의 움직임을 볼 수 있다는 설정이다. 사실 우리 몸의 분자는 계속 '교체'된다. 과거의 나를 이루던 성분이 지금은 전혀 남아있지 않을 것이다. 지금 내가 내쉬는 숨이 여러분을 구성하게 될 수 있다. 해당 작품에서 "세포가 섞인다"는 이야기를 했다. 그런 식으로 "나의 아이만 나의 아이가 아니다"라는 생각에서 시작한 이야기다.


정소연:

조카에게서 동생의 얼굴을 찾는 즐거움이 있다. 전에는 이런 즐거움이 있을 줄은 몰랐기 때문에 놀라운 경험이었다.


송경아:

나는 임신과 출산을 해봤다. 임신, 출산, 양육은 과학 기술보다도 사회적으로 좌우되는 문제가 크다. 설령 인공자궁이나 클론이 있다고 하더라도 여자에게만 그 책임이 주어진다면 말짱 꽝이다. 만화 『십이국기』에는 아이의 출생을 '나무에 열매가 맺히듯 아이가 맺히고 이를 따는 것'으로 묘사한 것을 보고 "이건 여성의 생각이다!"라는 생각을 했다. 여자가 아니면 상상할 수 없을 것 같았다. 단편집 『혁명하는 여자들』에서는 모유수유를 가지고 남자와 시댁과 갈등하는 이야기가 나온다.(「가슴 이야기」) 이걸 보고 "어? 우리나라 작간가?"하는 생각을 했다. 보니까 일본 작가더라.(히로미 고토) 그걸 보고 '역시 동아시아는 하나구나'라는 생각을 했다. 하여간 작품을 쓰게 된다면 이런 사회적인 문제를 고려할 것 같다.

「휴스턴, 휴스턴, 들리는가?」를 통해 본 여남 권력의 동등 또는 역전의 가능성

송경아:

그런 점에서 제임스 팁트리 주니어의 「휴스턴, 휴스턴, 들리는가?」(『체체파리의 비법』 수록)는 굉장히 재밌게 읽었다. 스포일러를 하겠다. 남성이 멸종하고 여성만 클론 복제로 세대를 이어가는 세상이다. 그런데 과거의 남자들이 이 세계로 난입한다. 여자들이 이 남자들을 제압하고 자백제를 맞혀 남자들의 욕망을 캐낸다. 여성들이 사는 세상을 성적으로 지배하려 한다든가, 신의 섭리에 어긋난 세계니까 신의 이름으로 교정하려는 과대망상 등이 나온다. 이걸 여자들이 나름 '평화'로운 방식으로 남자들을 제거한다.


"두 분은 이 작품을 어떻게 읽으셨는지, 남성과 여성의 권력·사회적 위치의 동등 또는 <이갈리아의 딸들>처럼 역전되거나 여성이 해방될 수 있는 여건은 어떤 거라고 생각하시는지, 그리고 단순히 과학 기술 뿐만 아니라 사회적인 문제까지.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질문드린다."


정소연:

「휴스턴, 휴스턴, 들리는가?」는 굉장히 전투적 소설로 읽었다. 제임스 팁트리 주니어는 전체적으로 시대와 자신의 삶을 반영한다. 조안나 러스를 먼저 읽고 제임스 팁트리 주니어를 다시 읽으면 덜 전투적이더라. 소설에 대해서는 각자 읽어보시면 될 것 같다.

이 문제(여남 평등, 또는 역전)에 대해서는 가능할 지 잘 모르겠다. 우리는 그런 사회를 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본 적이 없는 것이 어떻게 가능할 것인가를 생각할 때, 첫 번째로 '그런 것이 실현될 것이라고 믿어야 된다'고 생각하고 두 번째로는 미시적인 것부터 거시적인 것까지 '연습과 실험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북유럽 같은 경우는 일부러 성비를 1:1으로 맞추고 어떻게 돌아가는지 보는 것도 거대한 실험으로 볼 수 있다. 우리는 이런 걸 제대로 상상해 본 적도 없었기 때문에 그 근처에만 가도 어색해하고 잘 못한다. 익숙하지 않기 때문에 그런 지점이 있다. 연습과 실험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소설과 글에서 그런 사회를 연습할 수 있다. 그것이 SF의 근본적인 특징과 연결되는 지점이 아닐까. 새로운 세상을 상상해보고 그 세상에서는 권력이 어떻게 움직일 것인가? 앞서 언급된 『십이국기』도 마찬가지다. 여성의 특질―임신과 출산이 없어지거나 사라지거나 그것을 받아들이는 방법이 바뀌었을 때 사회와 사람이 어떻게 움직일 것인가? 그걸 생각해보는 것이 소설가의 역할 아닐까. 구체적인 방법은 작가마다 제각기 실험해야 하지 않을까.


김보영:

「휴스턴, 휴스턴, 들리는가?」에서는 '여자만 있다'는 설정이 천천히 드러난다. 여자가 있네? 어, 여자가 많네? 어, 전부 여자네? 어, 여자만 있는 거였어? 이 서사는 우리가 '기본 성'을 남자로 생각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제임스 팁트리 주니어는 남자로 착각되었던 사람이다. 하지만 나는 저자가 '중성'처럼 느껴졌다. 남녀 양쪽에 깊은 통찰이 있었다. 우리는 '중성'을 '남성'으로 본다. 만약에 우리의 기본 성이 여성이었다면 제임스 팁트리 주니어는 여성으로 보였을 것이다.

지구상에서 여자는 남성과 동등했던 적이 없기 때문에 SF의 화두 중 하나는 페미니즘일 수 밖에 없다. SF는 한 번도 본 적 없는 세상을 상상하기 때문이다.

성은 기본적인 타자이다. 타자, 차별이라는 것은 내가 그 자리에 놓일 리 없다고 생각하면 (그 자리는)타자가 된다(지역감정, 여성혐오, 인종차별 등). 바꿀 수 없는 것이기 때문에 심하게 차별하는 것이다. <비정상회담>의 타일러 라쉬가 한 말처럼 "타자화를 아주 없앨 순 없다. 어느 시대에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줄이려고 노력할 순 있다." 그런 세상을 상상하고 연습해보자. 어슐러 르 귄의 ‘어둠의 왼손’은 여성학 교과서로도 쓰이는데, 이 책에 등장하는 외계인은 자웅동체다. 처음에는 사람들에게 성별이 없다는 것에 혼란스러워하던 주인공이, 이야기 결말에서는 성별을 나눠 보아야 하는 것에 혼란스러워한다. 그런 식으로 SF는 성과 상관없이 사람을 대하는 방법을 연습시킬 수 있다. 소설가들이 그런 식으로 조금 더 나은 세상을 생각해볼 수 있지 않을까.


송경아:

그래서 「어둠의 왼손」에서는 상상의 여지를 많이 열어뒀다.

두 작가님이 말씀하신 것처럼 사람들은 '새로운 세상'까지 가는 게 아니라 '새로운 방식'마저도 힘들어한다. 그런 경험이 있다. 내가 80년대 끝 학번이다. 당시에는 아직 학생들 사이에 사회학 같은 걸 연구하는 세미나 문화가 있었다. 과에서 하는 여성학 세미나를 들어갔다. 당시에는 서로 성을 의식하면 불편하니 다같이 이성적인 주체, 존중할 존재라고 생각하잔 뜻에서 무성적인 '학형'이라는 호칭을 썼다(이것도 남성적이 아니냐는 지적이 있긴 했지만). 어느날 내가 폭탄 같은 제안을 해봤다. 이 모임에서만이라도 모두 '언니'라고 해보자고. 그런데 2번 하고 그 세미나가 깨지더라.(웃음) 그만큼 사람들은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는 것, 상상하는 것을 힘들어한다. 드라마 <추노>에서 나오는 것처럼 실제로 과거에 언니는 무성적 호칭이었다. 관습이라는 것이 참 공고하다는 생각을 한다.

서로가 서로를 소개하기

송경아:

방향을 바꿔서 한국 SF 문단…이라고 하기에는 대단한 권위나 규모가 그런 건 없으니 'SF창작계'라 하자. 'SF창작계'에서 두 분은 활발하게 활동하시는 작가인데 서로가 서로를 소개해보자.


정소연:

먼저 하는게 유리할 것 같다. 여기 계신 분들이 다 읽고 오셨으리라 생각한다. ...먼저 하는게 유리하지 않은 것 같다.(웃음)

김보영 작가의 초기작을 추천한다. 출판계가 그렇지만 SF계도 작가 단독 단편집이 나오기 힘들어서 김 작가의 단편은 흩어져있다. 책을 구하지 힘드시더라도 도서관에서 읽어보셨으면 좋겠다. 「이웃집 슈퍼히어로」는 꼭 읽어보셨으면 좋겠다. 최근 몇 년 사이에 '턴포인트를 돌았다'는 지점이 있다. 그걸 독자가 발견할 수 있다면 좋겠다. 변화하는 문학으로써, 현실을 반영하는 문학으로써 SF는 사고실험을 통해 현실을 반영한다고 생각하는데, 김 작가의 요즘 작품에서는 그런 근본적인 사고실험이 두드러진다. 초기작은 좀 어렵긴 하다. 어떻게 생각해보면 한국인 작가가 한국인 독자를 가정하고 한국어로 SF를 쓴다는 것 자체가 매우 드문 일 아닌가 싶다. 그런 점에서 김 작가의 작품에는 그런 일관된 지적 도전이라는 지점이 있는데, 이는 다른 언어적으로 대체될 수 없는, 다른 언어로 번역되면 탈락될 수 있다.


김보영:

정 작가 작품을 처음 본 게 15년 전 '정크 SF'였다. 당시에는 내 작품에 자부심 같은 걸 가지고 있었는데, 정 작가의 작품을 보고 일기를 쓰며 반성한 기억이 있다. 내가 절대로 쓸 수 없는 지점이 정 작가에게 있다. 내가 인생을 다 살고나서야 도달할 법한 지점이 있다면 정 작가는 바로 거기서 시작하고 있다.

내가 추구하는 것은 '안정과 평화'다. 내려놓고 버리는 식의 도전이다. 정 작가는 '안정과 평화'라는 그 단단한 기반에서 고통받고 상처받는 사람들에게 안정과 평화를 전해주려 한다. 정 작가는 실제로 그런 작품을 쓰고 계시고 그런 삶을 살고 계신다.

송경아:

서로의 팬심을 고백하는 시간이었다. 독자로서 두 작가는 대조적이다.

정 작가는 대부분의 화자가 여성이다. 여성의 내면적 고민이 작품에 잘 형상화되어 있다. 반면 김 작가의 화자는 남성적이다. 예를 들어서 「지구의 하늘에는 별이 빛나고 있다」는 당연히 형이 동생에게 쓰는 내용이라고 생각했다. 마지막에 굉장히 깜짝 놀랐다. 그리고 큰 이야기, 인간 하나하나의 내면보다는 우주가 돌아가는 원리나 법칙에 대한 사고실험을 많이 다룬다는 생각을 했다.

화자의 성별에 대한 생각

송경아:

그래서 궁금했던 것이 있다. "두 분은 남성과 여성을 작품 속에 형상화 할 때 어떤 점을 처음으로 보시는지, 화자의 어떤 점이 마음에 들는지, 어려운지. 그러니까 남성 화자와 여성 화자를 소설 속에서 어떻게 생각하시는가?"

김보영:

내 작품 속 화자의 성비는 반반이라고 생각했다. 전에 남자 평론가가 여자를 많이 그렸다고 해서 깜짝 놀란 적이 있다. 기본적으로 성별을 생각하지 않다가 나중에 설정하는 편이다.

「이웃집 슈퍼히어로」에서는 주인공 히어로가 외롭게 일하는 이야기이다. 이 주인공이 외로워야 하는데 주변에 있는 인물을 설정하는 것이 어려웠다. 여고생으로 했더니 주인공이 외로워하지 않고 썸을 타더라. 할머니로 해도 썸을 타더라. 안되겠다 하고 아버지를 붙이니까 영웅질은 안하고 아버지와 싸우기만 하더라. 마감 3일전에 전부 새로 써야 했다. '옆에 있는데 도움은 안되고 민폐만 되는 귀찮은 인물'을 붙이고 싶었는데 결국 '어릴 때 헤어져 오랫동안 보지 못했다가 성인이 되어 돌아온 아들 비슷한 관계의 사람'을 붙였다. 그제서야 이야기가 돌아갔다.

영화 <매드맥스:분노의 도로>의 퓨리오사 같은 캐릭터를 이전에 본 적이 없다. 여성 장애인인데 너무나 여성이면서 너무나 사람이고, 어떻게 설명할 수 없는 너무나 주체적인, 그러면서도 여성인 캐릭터. "왜 저런 인물을 못 봤을까", "상상하지 못했을까" 하는 경외감을 느끼면서 "저런 캐릭터를 만들고 싶다"고 생각했다. 지금까지는 등장인물의 성별에 대해 아무 생각을 안 했는데 이후에는 좀 더 의식적으로 다양한 지위·역할의 여성을 그릴 생각이다.

정소연:

나는 가만히 두면 화자는 자연스럽게 여성이 되더라. 내가 남자였던 적도 없었거니와 남자가 된 자신을 상상한 적도 없다. 남성 화자를 선택하면 평면적인 인물이 될 것이라는 두려움이 있다. 깊이 생각해본 적 없기 때문이다. 남성 작가가 여성 인물을 그렸을 때 나오는 '아주 초보적인 실수'가 나에게 나올까봐 그렇다. 그렇다고 그렇게까지 해서 남자 주인공을 내세워야 할 이유가 딱히 없었다.

내 작품에 여성 화자만 있구나, 남성 화자가 없구나라는 걸 의식적으로 생각해본 적은 있다. 이를 해소하려는 실험을 해본 적이 있긴 하다. 그러나 최근 <과학동아>에서 실린 단편 <돌먼지>에서는 아주 의도적으로 '우주인이 되고 싶은 여성 주인공'을 설정했다. 그 지면의 독자들에게는 여성 청소년 주인공을 보여주는 것이 더 맞다고 봤다. 내 작품에서 일부러 남성 화자를 설정하는 것은 아직 실험에 가깝다.

김보영:

작가가 이야기를 나의 이야기로 설정하는가, 역할극으로 설정하는가 차이인 것 같다. 우리는 로봇이나 외계인, 동물에도 감정을 이입한다. 남자라고 이입 못할까? (웃음) 감정 이입은 재밌다. 자신의 신체에 따라 연기에 제한이 있는 배우와 달리 소설은 무엇이든 자유롭게 연기가 가능하다. 그런 자유로움이 있지 않을까?

'가족'이라는 사회구조

송경아:

이외에도 두 작가님의 작품에서 재밌는게 '가족'이라는 존재다. 정 작가님 작품에는 가족이 정면에 나오지 않아도 이야기 뒤에는 언제나 가족이 있다. 반면 김 작가님 작품에는 가족이 중요하지 않다. 주인공이나 이야기에 큰 영향을 주지 않는다.

"두 분에게 가족이란 어떤 존재인가? SF에서 가족이란 어떤 것일까? 변해가는 가족 구조에 비추어 봤을 때 어떻게 상상하시는가?"

정소연:

나에게는 가족이 언제나 중요하다. 작품에 반영되는 것이 자연스럽다. 앞서 화자 이야기가 나왔는데 나는 일인칭으로 먼저 쓰고 나중에 삼인칭 등으로 고치는데, 개인적 경험의 일차원적 반영 아닐까. 그렇게 봤을 때 나에게는 가족이 억압 기제로 작용한 경험이 없다. 상당히 드문 경험이라는 것은 알지만 그래도 작품에 반영되는 것이 아닐까.

SF에서는 가족은 중요한 주제다. 1차 집단이기 때문이다. SF는 큰 사고실험이 아니더라도 가족이라는 것을 여러 가지로 움직여 본다. 임산과 출산을 건드리거나, 다른 대안을 제안하기도 한다. 현실 반영까지는 모르겠다. 사람들의 변화, 사회 흐름의 변화가 너무 빠르다. 10년 전? 오래 되지도 않았는데, LGBT 이슈에서 시민결합이 아주 긍정적으로 보이는 시점이 있었다. 그런데 조금 지나니까 '시민결합은 결혼이 아니니까 결혼을 인정하는 쪽으로 가야 한다'는 의견이 나왔다. 동성결혼을 다양한 가족 형태로의 움직임으로 보는 시각이 있는 한편으로 어떻게든 결혼제도를 유지하려는 보수적인 방편으로 보는 시각도 있지 않는가.

김보영:

내가 가족을 안 쓰는 것을 지금 처음 알았다. 나의 인생은 가족이 나를 신경 안 쓰게 만드는 것의 연속이었다. 대학이나 종교, 직업 등등. 지금의 그 시도들이 성공해서 만들어 진 것이 지금의 나다. 나는 그 꿈을 이뤘다. 그래서 내 작품에 가족이 나올 이유가 없다. (웃음)

다만 장애인은 나온다. 오빠가 장애인이다. 장애인은 얼마나 자연스럽고 평범한가. 어렸을 때부터 오빠와 자주 놀았다. 그래서 나에게 장애인은 자연스럽다. 장애인은 그저 소수자일 뿐이다. 숫자가 너무 적어서 이 사람들을 위한 제도가 하나도 안 되어 있는 것이다.

맞춰야 하는 것은 전부 다 갖고 있는 사람이라는 이야기가 정 작가가 번역한 「어둠의 속도」에서 나온다. 「어둠의 속도」의 주인공은 자폐인이다. 주인공에게 자신은 이미 그 자체로 완벽하다. 그러나 주변 세상은 자꾸만 세상에 주인공을 맞추라고 강요한다. 그 작품을 읽으며 다시 생각이 바뀌었다. 사회는 장애인을 사회에 적응시키려 하지만, 사회가 장애인에게 맞춰야 한다. 우리 가족도 그걸 인정하니까 비로소 편해졌다.

SF 뿐만 아니라, 이미 '전통적 가족'은 지금 이 시점에서는 불가능하다. 얼마전 읽은 『아이는 국가가 키워라』라는 책이 있다. 여기서는 "인류 역사 어느 시기에 언제 '전통 가족'이 있었는가?"라고 묻는다. 조선 시대에도 없었다. 전업 주부와 회사원 남편이라는 조합은 사실 1950년에서 1990년 고도성장기에 '잠깐' 있었던 환상에 불과하다. 우리가 그 시기를 살아서 전통이라고 생각할 뿐이다. 그런데 현대는 여성과 남성에게 초인적인 요구를 하고 있다는 것이다. 우리는 초인이 아니기 때문에 결혼을 포기하고, 육아를 포기하고, 아이를 포기하는 것이라는 내용이다.

상식적으로 동성결혼을 장려해야 한다. 뿐만 아니라 미혼부, 싱글부, 싱글맘 등등 다양한 형태의 가족을 사회가 보장해야 한다.

송경아:

두 가지 생각이 난다. 20대에 영어학원을 다닌 적이 있다. 그때만 해도 당연히 버벅거리고, 버벅거리는 게 싫으니 말을 안 하고 수강생들이 말을 안하고 강사는 답답해하는 악순환이 있었다. 거기서 영어 선생이 이런 말을 했다. "발음 같은 거 신경쓰지 말고 대담하게 말하라. 억양, 악센트 알아듣는 것은 네이티브의 몫이다." 김 작가님 말씀을 들으니 그 생각이 났다. 우리가 이 사회에서 살기 힘든 사람들에게 맞춰야 한다.

가족이 어렵긴 하다. 내 아들이 5살인데 얘가 태어나기 전부터 "퀴어라도 상관은 없는데 일베를 하면 어떡하지?"(웃음) 그런 생각을 했다. 최근 미 대선에서 "네가 게이라고? 괜찮아. 트럼프를 찍겠다고? 나가!"라는 포스터가 있더라.

앞으로 가족, 공동체라는 것이 과거와 다른 것으로 정의될 것 같다. 저와 굉장히 살았던 시기가 겹쳤던 돌아가신 할머니께서는 35살이 될 때까지 나보고 '아이를 낳으라'고 채근하셨다. '나는 입양할 거야'라고 말하니 '머리 검은 짐승은 들이는 게 아니다'라고 하셨다. 우리가 동시대에 살아도 머릿속은 다 다른 것 같다.

한국 사회가 소수자를 포용하기 위한 SF의 역할

송경아:

지금까지 페미니즘 SF, 두 분의 작품 세계를 아주 아쉬운 정도로 짧게 훝어봤다. 페미니즘은 단순히 여성이 사회에서 차지하는 위치·권력만 대표하는 사조가 아니라, 사회의 모든 소수자·마이너리티가 자기 권리를 누리면서 살 수 있는 사회를 끊임없이 꿈꾸고 상상하는 사조라고 생각한다. "얼마 남지 않았지만 2016년 현재, 한국 사회가 소수자를 포용하기 위한 조건은 어떤 것이 있을까? SF가 어떤 역할을 할 수 있을까?"


정소연:

사회의 조건은 잘 모르겠다. 다만 개인이 할 수 있는 건 명확하다. 첫째, 할 수 있는 만큼 나아가고, 둘째, 할 수 없다면 멈추는 것이다. 여성은 나서는 경험보다 어쩔 수 없이 물러서는 경험을 많이 한다. 대게 그 끝은 안 좋다. 여성은 그렇게 어디까지 나아가갈 수 있는지 경험하지 못하고 늙어간다. 사회 전체가 (나아가는 경험에 대해) 좀 더 장려하고 훈련시켜야 한다. 사람들을 많이 훈련시키면 서로 모방하게 되는 등 빨리 배울 수 있다. 하지만 그런 것은 제도·사회가 해야지 개인이 하기에는 어려운 영역이다. 사회를 어떻게 움직일 수 있을까? 각자가 각자의 자리에서 할 수 있는 만큼 나아가는 훈련을 해야 한다. 할까 말까 했을 때 해보는 것, 말하고, 나가보고 하는 경험을 해야 한다. 어떤 경험을 하고 안 하고는 매우 다르다. 해봐야 내가 어디서 멈추는 사람인지 알 수 있다. 그 경험이 매우 중요하다.

예를 들자면 나는 25살 즈음에 이주노동자 인권단체에서 참여한 적이 있다. 그때 단체가 어떤 일을 하고 있었냐 하면 크랙다운, 이주노동자 단속 관련된 일을 하고 있었다. 단속으로 사망하거나 부상당한 사람들이 많았다. 장례를 치루지 않고 이주노동자의 시신을 냉동시킨 채로 투쟁을 하기도 했다. 그걸 보고 며칠만에 '이건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넘어갔다', '25살 대학생인 내가 감당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라고 깨달았다. 거기서 조금 물러나서 이주여성단체에서 한국어 교사로 평화로운 일을 했고, 그것은 괜찮았다. 어쨌든 그 경험을 했기 때문에, 내가 나가봤기 때문에 내가 노력해서 할 수 있는 것과 할 수 없는 것을 구분지을 수 있었다. 내가 '어디까지' 할 수 있는지 비로소 알게 됐다.

할까 말까 했을 때 해보는 것, 해본 것을 토대로 봤을 때 내가 감당할 수 없다면 그 자리에서 멈추되 많이 물러나지 않는 것. '10걸음 나가봤더니 이건 내가 할 수 없더라' 하더라도, 10걸음을 다시 되돌아오는 것이 아니라 10걸음 나가봤기 때문에 2~3걸음 물러난 자리에서 다른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다고 믿는다. 사회의 여러 사람들이 편견을 가지지 않고 해보는 것, 같이 연습해보는 것이 중요하다. 연습이 모여서 제도가 된다. 제도는 언제나 사회의 그 앞선 징후보다 덜 급진적이고 좀 더 퇴행적인 느낌이 들기도 하지만, 누군가 10걸음 나갔다고 조금 물러난 지점에서 제도라는 합의가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그것을 위해서라도 나아가 봐야 한다고 생각한다. 나아가 보지 않으면 시스템이 형성될 수 없다. 나아가 봐야지 'A는 아닌데 B는 괜찮더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런데 B에 있다가 A에 가지 않으면 계속 B에 머무르게 된다. 그 자리를 많은 사람들이 불편해하지 않는다.  그 사회의 많은 사람들에게 불리할 수 있는데 안 불편하다는 것이다. 나도 심지어 나에게 불리한 제도라도 안 불편하게 느껴질 때가 있다. 내가 쫓겨나지 않는다면 불편하게 느끼지는 않는다. 그래도 익숙함이 주는 편안함이 있더라도 한번 나가보는 경험이 중요하다. A, B, C까지 가보고 C는 안 되겠다 하면 B까지만 가도 된다.

이런 경험을 안전하게 할 수 있는 것 중 하나가 SF라는 장르다. 현실의 나를 해치지 않으면서 어떤 것이 가능할지를 보여주는 장르다. 읽었을 때 읽히지 않는 과거 작품들은 그 운동이 필요했던 바가 실현됐기 보다는 독자에게 불편하기 때문에, 또는 그 운동이 시간이 지나면서 이미 탈락했기 때문이다. 그런 실험을 해보는 것, 실제로 해보기 전에 '연습으로서 SF'가 바로 SF의 장점 중 하나이다. SF가 가장 잘 할 수 있는 것이다.


김보영:

이 사회는 기본부터 실패했다는 생각을 한다. 학대구조로 되어 있어서 평범해도 살기 힘들다. 대중이 욕하고 싶은 지점(어린이집 학대 사건들처럼)에 인력과 예산이 들어가야 해결이 되는데 그렇지 않다.

일베 회원이 100만, 많게는 600만, 동시접속자는 3만이라고 한다. 단순히 일베를 욕하는데 그치지 말고 왜 이렇게 됐는지, 아이들이 왜 혐오놀이에 빠졌는지 생각하고, 그 지점에 상담, 교육과정, 다른 여가활동을 위한 예산이 들어가야 맞다. 그러나 제도와 사회 시스템이 돌아가지 않는다. 어버이연합의 경우, 어르신들을 하나하나 취재해보면 단순히 밥값 벌자고 참여하시는 분들이 많다. 노인 일자리, 노인 복지를 높이면 해결된다고 본다.

문학계에서는 SF같은 장르 소설을 비판하면서 왜 현실을 반영하지 않느냐고 한다. '문학은 현실을 반영한다'고 한다. 그러나 이 말은 문학의 역할을 절반만 보여주는 말이다. '현실도 문학을 반영한다'. 시어머니가 며느리를 학대하는 서사를 수백 번 보여주었어도 세상은 변하지 않았다. 드라마에서 현실의 전형적인 상황들을 그려내는 대신 역전된 세상을 보여주자. 단 한 번만 바꾸어도 우리가 우리 삶을 되돌아볼 수 있다.

테드 창이라는 작가가 부천 영화제에서 SF와 판타지의 차이를 말한 적이 있다. 17세기에서 누군가 현대의 자동차를 상상한다는 것을 가정해보자. 단 한 명만 이 자동차를 타면서 악당을 물리치고 누군가를 구하는 영웅처럼 행동한다는 걸 상상한다면 그건 판타지다. 하지만 모든 사람들이 자동차를 운전한다고 상상한다면 그건 SF다.

세상은 고정되어 있지 않고 계속 바뀌고 있다. 우리가 무언가를 쓰는 와중에도 세상은 바뀐다. 그래서 페미니즘은 SF의 화두일 수 밖에 없다.

페미니즘과 젠더 이슈에서 추천하는 국내 SF

송경아:

마지막으로 페미니즘과 젠더 이슈를 살펴보고자 한다. 최근 한국에서 페미니즘과 젠더 이슈가 부각되고 있다. 이 지점에서 봤을 때 추천하는 국내 SF 작품이 있다면 소개해달라.


김보영:

우리 외에도 많은 여성 SF 작가들이 있다. 온우주 출판사에서 나온 이서영 작가의 『악어의 맛』, 정도경 작가의 『씨앗』, 은림 작가의 『노래하는 숲』, 양원영 작가의 『안드로이드여도 괜찮아』, 에픽로그에서 나온 SF어워드를 수상한 박문영의 『사마귀의 나라』, 기타 여러 작품을 추천한다. 아작, 온우주, 에픽로그 이 세 출판사의 작품들을 추천한다. 부스 위치는 A-13, E-13이다.(웃음) 온우주-에픽로그 부스에서 SF 카르텔이 되어 보시라. (웃음)


정소연:

배명훈 작가의 『첫숨』을 추천한다. 한국인 작가가 한국어 SF 장편에서 다양한 연령의, 여러 세대의 여성을 출연시키는 것이 어렵다. 의식하지 않고서는 힘들다. 아마 작가가 의식했을 것이다. 이런 작품을 읽는다는 것이 한국 SF 독자에게 특히 드문 경험일 수 밖에 없다. 다른 세대의 여성상을 그렸다는 점이 있다. 한국어 화자가 여러 세대의 한국인 여성을 그렸다는 흥미로운 시도가 아닐까.

질의응답

송경아:

작가님들이 좋아하실 시간이 온 것 같다. 독자분들의 질의 응답 시간을 갖고자 한다.

Q1. 한국어와 SF, 그리고 한국이라는 배경

Q.

한국어와 SF에 대해 이야기해주셨다. 두 분은 한국어로 한국어 독자를 대상으로 쓰고 계신다. SF는 한국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닐텐데, 어떤 점을 신경쓰시는지, 한국을 벗어나려는 시도가 있었는지 궁금하다.


김보영:

과거에는 탈한국을 시도하는 경향이 있었다. 요즘에는 일부러 한국을 그리는 것 같다. 한국을 배경으로 한다고 해도 얼마든지 자유로이 상상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일단은 그 정도의 생각을 하고 있다.


정소연:

작품 배경이 한국을 벗어나지 못하는 이유는 경험 때문인 것 같다. 외국 작품을 한국어로 번역하는 것도 어렵다. 한국어에는 경어와 상하관계가 명확하게 존재한다. 처음부터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생각해두지 않으면 자연스레 그런 것들이 생긴다. 스케일이 작을 때에는 별 문제가 없었다. 그러다 최근 몇 년 '카두케우스 이야기'라고 대기업이 우주단위로 진출했다는 설정의 연작을 하면서 스케일이 커지니까 이름 붙이기가 가장 어렵더라. 이들이 한국어를 쓰고 한국식 이름을 붙일까? 경험이 확장됐을 때의 어려움이 있다. 그래서 대체로 한국을 배경으로 하는 작은 이야기를 그리게 되는 것 같다. 장기적으로는 이야기를 다른 공간으로 가져갔을 때 어떤 이야기를 할 것인가, 지명 하나를 이야기할 때도 어떤 과정을 거쳐 붙이게 되는지 상상하는게 어렵다.


김보영:

저도 그 생각을 많이 했는데, 그냥 뻔뻔해도 괜찮지 않을까? (웃음) 뻔뻔할 필요가 있는 것 같다.


송경아:

일본 소설을 보면(SF가 아니더라도) 일본 내를 배경으로 삼지 않는 소설의 경우 특히 '외국인에 대한 의식'이 많이 보인다. 컴플렉스 없는 소설이 적다. 그 점에서 최근 류츠신의 『삼체』를 보고 놀랐던 게 외국인이 너무나 자연스럽게 이야기의 주도권을 잡고 있더라. 그런 면에서 그런 뻔뻔한 것이 좋지 않을까.

Q2. 성·젠더·제도 등의 이슈에서 가장 흥미로운 주제가 있는가?

Q.

소설에서 다루는 성, 젠더, 가족, 제도 등 창작자와 번역가로서 가장 흥미로운 지점이나 특정한 주제가 있는가?


김보영:

최근에는 인공지능에 대해 생각했다. 인공지능은 '무성'이다. 성별을 가진 우리가 성별이 없는 그들과 만날 때에 문화충격이 있을 것이다. 인격을 가진 인공지능은 곧 우리를 만나게 될 것이다. 우리는 흔히 '로봇을 의인화'하는데, 그런 편견에서 벗어나 좀 더 정교하게 생각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정소연:

깊이 생각하진 않는다. 하던대로 하지 않을까?  성애를 깊이 다룬 적이 없고, 앞으로도 없을 것 같다. 화자가 자연스레 여성으로 그려지기도 하고 가족도 앞서 말한 대로 그리는 경향이 있는데, 제한적인 경험을 경계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조금만 삐끗하면 퇴행적이 되지 않을까. 여성이 주인공인데 가족을 어떻게 다룰까, 그러고도 퇴행적이 되지 않을까 라는 고민이 있다.


김보영:

나에게는 정 작가의 그 고민조차도 빛나 보인다.

Q3. 젠더 이슈나 소수자, 대안 가족등을 다룬 작품

Q.

최근 임신·출산 등 젠더 이슈나 소수자, 대안 가족 등을 다룬 작품들이 출간되고 있다. 유행일까?

(다시 확인할 예정)


정소연:

장르 전체의 흐름을 여쭤보시는 거라면, 지속적으로 출간되고 있었다. 새뮤얼 딜레이니 같은 작가는 60년대 활동했는데, 그의 작품 전체가 그런 이슈를 다룬다. 딜레이니는 흑인 동성애자였다. 요즘은 당연하게 다루고 있다. 특히 청소년 문학은 '해리포터 시리즈'의 영향으로 강하게 드러난다. '영 어덜트'라고 해서 타겟층이 14세 직전까지 내려가면서 아주 오락적인 작품에서도 이런 걸 다루고 있다. 『옆집의 영희 씨』를 보시라.


김보영:

(답변 없음)

Q4. 장르에 대한 구분

Q.

장르 문학 구분. 읽는 사람은 구분하지 않는데.


김보영:

장르는 문학이라고 생각한다. 장르는 편의적인 구분일 뿐이다. 일종의 검색어라고 보면 된다. 이것도 맞지 않을 때가 많다.


정소연:

나는 구분하는 독자다. 어떤 하나의 특징이 두드러지고 핵심이라면 장르라고 볼 수 있다. SF는 독자에게 경외감을 들게 하는 것을 목표로 하는 장르다. 우열은 아니더라도 SF라는 장르의 거대한 특징이다.


김보영:

구분해도 좋고 안 해도 좋은데 단지 과한 것이 문제일지도. 중도를 지키는 게 좋을 것 같다.

Q5. 고착된 여성성·남성성을 해체하려는 작품

Q.

젠더 섹슈얼리티 사회. 고착된 여성성·남성성을 해체하려는 작품들을 소개해달라.


정소연:

오늘 언급된 모든 작품들이다.


김보영:

다양한 젠더를 무시하고 여성과 남성으로 맞추려는 게 인권 침해다.


정소연:

「휴스턴, 휴스턴, 들리는가?」는 임신·출산을 하지 않는 여성들의 사회를 그린다. 『블러드 차일드』는 남자가 외계인을 임신하는 세상을 그린다. 『어둠의 왼손』은 기본이 중성인 외계인이 나온다. 이들은 중성이었다가 발정기에 따라 여성이 되거나 남성이 된다. 이 외계인들이 고정된 성을 가지고 태어나는 인간을 만났을 때의 이야기를 그린다.

Q6. 단편의 장편화 가능성

Q.

작가님들의 단편들을 장편이나 옴니버스 등으로 갈 가능성을 열어두시는지 궁금하다.


김보영:

내가 게을러서…


정소연:

청탁이 있다면? 긴 글을 잘 못 쓴다. 옴니버스는 계속 쓸 것 같다.

Q7. 페미니즘이라는 변화 기조

Q.

페미니즘 SF를 소개하는 것이 늘어나면서 장르가 변화하는 것 같다. 그런 변화 기조가 작가로서 보이시는지 궁금하다.


정소연:

지금 많이 나오는 것처럼 느껴지는 것은 그간 그 뒤에서 많은 사람들이 소개하려고 노력한 결과이다. 노력했지만 실패한 적들이 있다. 요즘 그 장벽들이 낮아졌다. 지속되려면 소비되어야 한다. 대게 두 가지 중 하나를 충족시켜야 한다. 하나는 소비가 되어야 한다. 다른 하나는 좋은 평이 많아야 한다. 잘 팔리든가, 적게 팔리더라도 산 사람들이 호평을 해주면 된다. 그러면 출판사가 비슷한 걸 계속 내게 된다.

Q8. 차기작

Q.

다음 작품은 언제 만날 수 있는가?


김보영:

2016년 11월 쯤에 일반소설로 공동 단편집이 나올 거고, 태양계 소재로 공동 단편집이 나온다. <과학동아>와 <한겨레>에서는 다양한 SF작가들이 연재 중이다.


정소연:

11월에 서울대학교 대학신문에 단편 2회를 실을 예정이다. 다른 데에도 싣지 않을까?

언급된 작가와 작품들

  • 「프랑켄슈타인」 - 메리 셸리
  • 『체체파리의 비법』(「체체파리의 비법」, 「비애곡」, 「휴스턴, 휴스턴, 들리는가?」) - 제임스 팁트리 주니어
  • 『어둠의 왼손』 - 어슐러 르 귄
  • 『달은 무자비한 밤의 여왕』 - 로버트 하인라인
  • 『오오쿠』 - 요시나가 후미
  • 『십이국기』 - 오노 후유미
  • 「가슴 이야기」(『혁명하는 여자들』 수록) - 히로미 고토
  • 『시녀 이야기』 - 마거릿 애트우드
  • 『킨』, 『블러드차일드』(「말과 소리」) - 옥타비아 버틀러
  • 『이갈리아의 딸들』 - 게르드 브란튼베르그
  • 영화 <매드맥스:분노의 도로>
  • 『어둠의 속도』 - 엘리자베스 문(정소연 번역)
  • 『아이는 국가가 키워라』 - 후루이치 노리토시
  • 『악어의 맛』 - 이서영(온우주출판사)
  • 『노래하는 숲』 - 은림(온우주출판사)
  • 『씨앗』 - 정도경(온우주출판사)
  • 『안드로이드여도 괜찮아』 - 양원영(온우주출판사)
  • 『사마귀의 나라』 - 박문영
  • 에픽로그 출판사
  • 아작 출판사
  • 『첫숨』 - 배명훈
  • 『삼체』 - 류츠신
  • 『옆집의 영희씨』, 「돌먼지」 - 정소연
  • 『진화 신화』 - 김보영
  • 『이웃집 슈퍼히어로』, 『당신을 기다리고 있어』 - 김보영
  • 새뮤얼 딜레이니

같이 보기

  • 이유진. 페미니즘과 SF가 만나 “경험하지 못한 세상 실험하라”, 한겨레, 2016.10.04.
  • 와우스페셜 <젠더 문제를 말하는 SF의 방식> - 공식 홈페이지
  • 서울와우북페스티벌
  • [1] '정크 SF'에 대한 소개는 'alf. SF'의 팬덤의 계보학(2010)을 참고.
  • [2] 시민결합(市民結合, civil union) 또는 생활동반자관계(生活同伴者關係)는 결혼과 유사한 가족제도이다. 혼인 관계에 준하여 배우자로서의 권리와 상속, 세제, 보험, 의료, 입양, 양육 등의 법적 이익이 일부 혹은 온전히 보장된다. 이혼보다 결합의 해소가 자유롭다. (출처: 위키백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