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중근 의사의 어머니. 본명은 조성녀(1862~1927). 1862년 백천 조씨 집안에서 태어나서 일찍이 천주교에 입교하였으며 세례명이 마리아다.
국채보상운동 당시 평안도의 삼화항 은금폐지부인회에 은가락지 두쌍, 은투호(노리개) 두 개, 은장도 한 개, 은귀이개 2개, 은가지 세 개, 은부전 두 개, 총 10종을 기부하였다.
1920년대 중반 상해로 망명한 뒤 1926년 7월 19일 상해 삼일당에서 개최된 대한민국 임시정부 경제후원회 창립총회에서 임원으로 선출되었다.
안중근이 이토 히로부미 처단 의거를 하고 사형을 선고받자 수의를 만들어 보내며 아래와 같은 편지를 보냈다.
"네가 만일 늙은 어미보다 먼저 죽은 것을 불효라 생각한다면 이 어미는 웃음거리가 될 것이다. 너의 죽음은 너 한 사람 것이 아니라 조선인 전체의 공분을 짊어지고 있는 것이다. 네가 공소를 한다면 그것은 일제에 목숨을 구걸하는 것이다. 네가 나라를 위해 이에 이른즉 딴 맘 먹지 말고 죽으라. 옳은 일 하고 받은 형이니 비겁하게 삶을 구걸하지 말고 대의에 죽는 것이 어미에 대한 효도이다. 어미는 현세에서 너와 재회하기를 기대치 않으니 다음 세상에서는 반드시 선량한 천부의 아들이 되어 이 세상에 나오너라."
1920년 3월 26일 안중근은 조마리아가 만든 수의를 입고 교수형으로 순국하였다.
조마리아는 2008년 건국훈장 애족장에 추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