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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편집: 2021년 11월 1일 (월) 23:16

시경》(詩經)은 중국에서 최초로 등장한 시가집이다. 공자(孔子)가 문하의 제자를 교육할 때, 주나라(周朝)의 정치적 형태와 민중의 수용 태도를 가르치고 문학·교육에 힘쓰기 위하여 편집한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공자가 시경을 편집한 것이 아니라 다른 이들이 편집을 하였다는 학설이 있다. 《시경》은 전한시대에 금문으로 구성된 〈제시(齊詩)〉·〈노시(魯詩)〉·〈한시(韓詩)〉등 삼가시와 고문으로 구성된 〈모시(毛詩)〉 라는 네 가지 종류의 책이 나왔지만, 시대가 지나면서 삼가시가 소실되었고, 오늘날 남은 것은 모시뿐이어서 시경이라고 말하면 모시로 통용된다.

처음에는 시(詩)라고만 불리었으며, "시"라는 말의 어원은 여기서 나왔다. 주나라때 편찬되었다 하여 주시(周詩)라고도 하다가 당나라 때 와서 오경의 하나에 포함되면서 시경이라고 불리게 되었다.

내용

311편의 고대 민요 혹은 시(詩)를 '풍(風)', '아(雅)', '송(頌)'의 세 가지 편목으로 나누어서 편집하였다. 그 중 6편은 제목만 있을 뿐 시의 내용이 전하지 않는 것이 있는데, 이것을 생시(笙詩)라고 한다. 생시를 제외한 시의 내용이 있는 것은 305편이다.

'풍(風)'이라는 것은 각국의 여러 지역에서 수집된 160개의 민요를 모은 것이요, '아(雅)'라는 것은 연석(宴席)의 노래로, 다시 소아(小雅)와 대아(大雅)로 구분된다. 소아 74편과 대아 31편은 조정에서 불렸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송(頌)' 40편은 왕조·조상의 제사를 지낼 때의 노래라고 여겨진다. 어느 것이든 고대의 이름없는 민중이나 지식인의 노래이다.

주나라(周)는 제13대 평왕 때에 도읍을 호경(鎬京)으로부터 하남성(河南省)의 낙양으로 옮겼는데(기원전 770년), 그때 일을 노래한 것이 있다. 주실 동천(周室東遷) 이전, 즉 서주(西周)의 것으로는 제11대 선왕(宣王, 재위 : 기원전 827년 ~ 기원전 782년) 시대의 노래로 보이는 것이 있다. 그것이 시경 중에 옛 부분이다. 주나라 창업의 모습을 노래한 것도 있으나 그것들도 선왕기(宣王期) 무렵에 만들어진 것이라고 생각된다. 전설에 의하면 주왕조 초기인 문왕·무왕시절의 노래가 있다고 한다. 그것을 사실이라고 그대로 믿을 수는 없지만 현존하는 중국의 가장 오래된 가요를 모은 것이 된다. 공자는 고대의 가요를 통해서 당시 정치·사회의 모습을 생각하게 하려고 했던 것으로 추측되기도 한다.

'풍(風)'에는 애정의 노래라든가 일하는 노래, 유랑의 노래 등이 많으나, '아(雅)' 또는 '송(頌)'에는 천(天)의 사상에 근거하여 주왕조를 찬양한 것이 있다. 또 천은 백성들에게 재앙을 내리는 것이라 믿고 천을 원망하여 천의 권위의 붕괴를 노래한 것도 많다. 천의 권위의 붕괴를 말하는 것은, 위정자의 입장에서 기록된 시경에서는 찾아 볼 수 없다. 따라서 주왕조를 뒷받침하고 있던 천(天)의 사상에 대한 무명의 민중이나 지식인의 비판의 소리를 엿들을 수 있다. 천(天)은 지정공평(至正公平)하지 못하다는 원성(怨聲)은 바로 주 왕조의 권위에 대한 피지배층의 비판이다.

구성

  • 국풍(國風)
    • 주남(周南)
    • 소남(召南)
    • 패풍(邶風)
    • 용풍(鄘風)
    • 위풍(衛風)
    • 왕풍(王風)
    • 정풍(鄭風)
    • 제풍(齊風)
    • 위풍(魏風)
    • 당풍(唐風)
    • 진풍(秦風)
    • 진풍(陳風)
    • 회풍(檜風)
    • 조풍(曹風)
    • 빈풍(豳風)
  • 소아(小雅)
    • 녹명지습(鹿鳴之什)
    • 백화지습(白華之什)
    • 동궁지습(彤弓之什)
    • 기부지습(祈父之什)
    • 소민지습(小旻之什)
    • 북산지습(北山之什)
    • 상호지습(桑扈之什)
    • 도인사지습(都人士之什)
  • 대아(大雅)
    • 문왕지습(文王之什)
    • 생민지습(生民之什)
    • 탕지습(蕩之什)
  • 송(頌)
    • 주송(周頌)
      • 청묘지습(清廟之什)
      • 신공지습(臣工之什)
      • 민여소자지습(閔予小子之什)
    • 노송(魯頌)
    • 상송(商頌)

여담

사학자 이병도가 주장한 학설인 한씨조선(韓氏朝鮮)설[1]이 있는데, 근거 자료가 삼은 것이 두 개의 사료가 있는데, 그중에 하나가 바로 시경 대아 한혁편(大雅 韓奕篇)이다. 또 다른 사료는 왕부(王符)의 잠부론(潛夫論)이다.

  1. 기자조선을 대신하여 한씨조선이 있었다는 이병도가 주장한 학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