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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편집: 2021년 11월 8일 (월) 13:59
묘호 예종(睿宗)
생몰년도 음력 서력 1450년 1월 1일~서력 1469년 11월 28일
양력 서력 1450년 1월 14일~서력 1469년 12월 31일
재위기간 음력 서력 1468년 9월 8일~서력 1469년 11월 28일
양력 서력 1468년 9월 23일~서력 1469년 12월 31일
부모 어머니 자성 흠인 경덕 선렬 명순 원숙 휘신 혜의 태왕 태비
(慈聖欽仁景德宣烈明順元淑徽愼惠懿太王太妃) 윤씨(尹氏)
아버지 세조
배우자 안순왕후(安順王后) 한씨(韓氏)
후임 왕 성종(成宗)
시호 예종 양도 흠문 성무 의인 소효 대왕
(睿宗襄悼欽文聖武懿仁昭孝大王)
황(晄)
평보(平甫)
생몰장소 탄생장소 사저(私邸)
사망장소 자미당(紫薇堂)

예종조선의 여덟 번째 임금이다. 성은 이(李), 는 황(晄), 본관전주, 는 명조(明照) 또는 평남(平南). 시호는 예종양도흠문성무의인소효대왕(睿宗襄悼欽文聖武懿仁昭孝大王)이다. 세종의 차남 세조정희왕후의 둘째 아들이다.

1468년 9월부터 이듬해 1469년 12월까지 재위하는 동안 1468년 9월부터 1469년 1월까지 사촌 형이자 손아랫동서인 영의정(領議政) 귀성군 이준(龜城君 李浚)이 섭정하였으며 1469년 1월부터 1469년 12월 붕어할 때까지 친정하였다. 그리고 재위기간이 비교적 짧은 왕이다.

생애

예종은 1450년 경오년 정월 정축일에 당시 수양대군이었던 세조와 정희왕후의 둘째 아들로 태어났으며, 세조가 왕위에 오른 뒤 해양대군(海陽大君)으로 봉해졌으나 형인 의경세자1457년 9월에 까닭 없이 갑자기 20세로 훙서(薨逝)하자 8살이라는 어린 나이에 왕세자로 책봉되었다.

11살 때인 1460년 한명회(韓明澮)의 딸을 세자빈(장순왕후)으로 맞이한다. 그러나 세자빈 한씨1461년 12월 31일(음력 11월 30일)에 원손 인성대군을 낳고 며칠뒤 산후병으로 17세의 나이에 요절한다. 3년상을 마친 후인 1463년 새로이 세자빈을 맞이하지 않고 간택후궁인 소훈을 맞이하는데, 이때 소훈으로 간택된 한백륜(韓伯倫)의 딸이 이후 세조가 예종에게 양위하며 왕비로 승격시킨 안순왕후이다.

1468년 9월 22일(음력 9월 7일)에 병환이 깊어진 세조의 선위로 수강궁(壽康宮) 중문(中門)에서 19세 때 즉위(卽位)하였다. 상왕으로 물러나게된 세조는 다음날인 8일에 승하했다.

예종의 재위 기간은 14개월밖에 되지 않는 짧은 기간이었지만 1468년남이의 옥 사건이 일어났으며, 1469년에는 삼포(부산포, 염포, 제포)에서 일본과의 개별 무역을 금지하였고, 그 외에도 병영에 딸려 있는 논과 밭을 일반 농민들이 농사를 지을 수 있도록 해 주었다. 또한 세조 때부터 편찬하기 시작했던 《경국대전》을 드디어 완성했으나 이를 반포하지 못한 채 20세라는 젊은 나이에 1469년 12월 31일(음력 11월 28일) 진시(辰時)에 자미당(紫薇堂)에서 붕어(崩御)하였다. 묘호는 예종 자신의 유지에 따라 예종(睿宗)으로 결정됐고, 시호는 흠문성무의인소효(欽文聖武懿仁昭孝)이다.

예종이 승하한 당일 날, 왕대비였던 정희왕후의 명으로 의경세자의 둘째 아들인 자을산군(성종)이 예종의 양자로 입적되어 왕위에 올랐다. 왕위계승서열 첫 번째인 원자(예종과 안순왕후의 아들), 서열 두 번째인 의경세자의 장자 월산군은 각각 나이가 너무 어리고 병약하다는 이유로 후계자에서 제외되었으나 실상은 왕대비(정희왕후) 와 수빈 한씨 (인수대비=소혜왕후), 자을산군의 장인이었던 한명회 등의 정치적 결탁으로 인한 결과였다. 이후 원자는 왕자로 낮춰졌고 제안대군으로 봉해져, 후사도 못남기고 병으로 요절했던 평원대군(세종소헌왕후의 일곱번째 아들)의 후사로 입적되었다.

능묘

1468년에 세조가 승하하여 왕위에 즉위하였으나, 재위 14개월만인 이듬해(1469년) 그도 형인 의경세자처럼 20세의 젊은 나이로 죽고만다.

서오릉 중의 하나로 경기도 고양시 덕양구에 능을 조성하여 능호를 창릉(昌陵)이라 하였으며, 1499년 2월 3일(1498년 음력 12월 23일)에 승하한 안순왕후도 이듬해(1470년) 3월 16일(음력 2월 14일) 창릉에 안장되었다.

1461년 17세의 나이로 요절한 원비인 장순왕후는 세자빈으로 죽어 공릉(후일 추존)에 묻혔으며, 성종 때 장순왕후로 추존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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