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몬느 베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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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몬느 베이유
Simone et Antoine Veil
프랑스 입헌위원회 위원
유럽의회 의장
프랑스 유럽의회 의원
프랑스 프랑스 보건부장관
레지옹 도뇌르 수훈자
대영제국 훈장
개인정보
사망일2017년 06월 30일 () (프랑스 프랑스 파리)
국적프랑스 프랑스
원어이름Simone et Antoine Veil
결혼 전 이름시몬느 애니 제이콥 Simone Annie Jacob
학력국립사법관학교
파리 정치대학
파리대학교
정당프랑스 민주연합(1979, 1995–1997)
민주당-무소속 연합(2012–2017)
가족관계어머니 이본느 스타인메츠
아버지 앙드레 제이콥
3녀 1남 중 막내
배우자앙투앙 베이유
자녀피에르 프랑수아 베이유
장 베이유
클로드-니콜라스 베이유
“과거에 대한 충분한 수용 없이 가능한 화해란 없다.”

가족관계

2013년 사망한 남편 앙투완 베이유와의 사이에 둔 세 아들이 있다.[1]

생애

시몬느 베이유는 1927년 프랑스 동남부의 항만도시인 니스에서 유대인 부부의 딸로 태어나 유복한 환경에서 성장했다.[2]

홀로코스트

17세이던 1944년, 프랑스의 나치 괴뢰정권이었던 비시 정부에 의해 가족들과 함께 나치의 아우슈비츠와 베르겐-벨젠 수용소로 끌려갔다. 수용소에서 부모와 오빠를 잃었고 다른 두 자매와 함께 가까스로 살아남았다. 수용소 관리의 도움으로 빠져나올 수 있었다고 한다.[1][2] 그의 팔목엔 독일인이 새긴 ‘78651’ 수인번호가 문신으로 남아 있었다. 이는 베이유가 유럽 통합에 앞장서고 온갖 편견에 맞서 싸우게 된 원동력이 됐다.[1]

법관

파리정치대학원과 국립사법학교를 졸업한 베이유는 50년대 치안판사로 사회 생활을 시작한 법률가였다. 법관으로 활동하면서 프랑스 교정시설의 열악한 인권 상황 개선에 진력했다.[1]

정치 활동

당시 프랑스 데스탱 대통령이 당초 항공산업에 종사한 베이유의 남편을 내각에 들이려고 자택을 방문했다가, 베이유와 대화한 뒤 그를 보건부 장관으로 발탁한 건 유명한 일화다.[1]

유럽의회

시몬느 베이유는 1979년부터 3년 간 유럽의회 의장으로 활동했다. 그는 유럽의회가 직선제로 전환된 뒤 당선된 최초의 유럽의회 의장이자 여성 최초의 유럽의회 의장이다. 그는 유럽연합(EU) 만들기에 앞장섰다.[1]

자발적 임신중단 합법화 운동

보건부 장관에 취임한 지 얼마 안 된 1974년 11월, 낙태 합법화 법안을 의회에 제출했다. 이후 법안이 통과하기까지 두 달간 베이유는 언론을 비롯해 가톨릭 사제들, 법안에 반대하는 여성들과 ‘전쟁’을 벌여야 했다.[1]

수년 간 찬반 논쟁이 지속된 이슈인데다 당시만해도 프랑스는 보수적인 사회였다. 자크 시라크 당시 국무총리는 법안을 외면했고, 법무부 장관마저도 반대했다. 베이유를 지지하는 이는 그를 발탁한 발레리 지스카르 데스탱 대통령 정도에 불과했다.[1]

하지만 베이유는 “지금도 상당수 의사와 시민들이 임신중절을 행하고 있다”며 소신을 굽히지 않았고 의원 한 명, 한 명을 설득했다. 특유의 추진력과 끈기로 결국 법안은 통과됐고, 베이유는 일약 스타 정치인이 됐다.[1]

베이유는 보건부 장관 재직시절 낙태 합법화 외에 사회보장제도 개혁, 금연 캠페인, 연구를 빌미로 한 의사들의 공공연한 환자 장기 적출 금지 등 전반적인 인권 개선에도 힘썼다고 가디언은 전했다.[1]

자서전 출간

2007년, 자서전 '삶'을 출간했다. 이 책은 프랑스에서 꾸준히 읽히고 있는 스테디셀러이자 베스트셀러다.[1][2]

사망

시몬느 베이유를 판테온에 안장하는 국장을 중계하고 있다.

2017년 6월 30일 89세의 나이로 사망했다.[1] 그의 장례는 국장으로 치러져 프랑스 팡테옹에 안장되었다. 먼저 사망한 남편도 그를 따라 팡테옹에 안장되었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1일 트위터에 “베이유는 프랑스인에게 사표(師表)였다”고 애도했고, 데스탱 전 대통령은 “그는 인생 최고의 기쁨과 슬픔을 경험한 특별한 여성이었다”고 말했다.[1]


출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