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상

최근 편집: 2021년 11월 27일 (토) 15:07
사회인권 (토론 | 기여)님의 2021년 11월 27일 (토) 15:07 판
장상
출생1939년 10월 3일
평안북도 용천군 북중면 [1] [2]
국적대한민국
본관인동 장씨
학력숙명여자중학교 숙명여자고등학교 이화여자대학교 (졸업) 예일대학교 신학대학원 신학 (석사) 프린스턴 신학 대학원 신학 (박사)
경력이화여자대학교 총장, 대한민국 대통령 비서실 공모관 (2002.4 ~ 2002.5), 대한민국 국무총리 서리 (2002.7.11~ 2002.7.31)
직업정치인, 목사 (前 총장)
소속
종교개신교
정보 수정

장상은 대한민국 정치인, 목사, 교수인 이화여자대학교 제11대 총장이다. 8살이던 1947년 월남하였다.


1. 개요[편집] 1947년 어머니 김봉현(金鳳鉉)과 함께 38선을 넘어 월남했다.[2] 11살이던 1950년 한국전쟁이 터져, 가족들과 함께 피난을 다니며 초등학교를 여러 번 옮겼고, 피난민 학생들을 위한 임시학교인 대전종합중학교에 다니다가 휴전된 후 서울 숙명여자중학교에 편입학했다.

숙명여자중학교와 숙명여자고등학교를 수석으로 졸업했다.# 성적이 우수하여 중고등학교 내내 장학금을 받았으며, 이화여자대학교 수학과[3]까지 4년 전액 장학생으로 다녔다. 공부 외에도 다양한 활동들을 열심히 했으며, 당시 총장을 지낸 김활란, 김옥길 등 교수들로부터도 총애를 받았다. 대학 2학년 때는 수학과 퀸으로 뽑혀, 메이퀸[4] 행렬에 참가하기도 했다.

독실한 크리스천 가정에서 태어나 자란 영향으로, 장상은 전공인 수학뿐 아니라 신학에도 깊은 관심을 가졌고, 이대 졸업 후에는 연세대학교 신과대학에 편입학했다. 이때 남편 박준서를 처음 만났다. 그는 서울대학교 법과대학 출신의 편입생으로, 법조인보다 신학자의 길에 뜻을 가지게 되어 연세대 신학과에 편입했다고 한다.

졸업 후 1967년 미국으로 유학을 떠나, 예일대학교 신학대학원(석사)과 프린스턴 신학대학원(박사)에서 신학을 공부했다. 마침 박준서도 같은 학교에 유학 와 있어서 장상은 박준서와 재회하게 되었고, 두 사람은 미국에서 결혼식을 올리고 학생 부부가 되었다. 1973년 장남 박찬우(48세)를 낳았는데, 나중에 장상이 국무총리 후보에 올랐을 때 장남의 국적 문제가 말썽이 되었다.

장상과 박준서는 미국에서 공부하고, 아기를 키우고, 학비와 생활비에 보태기 위해 일까지 하며 바쁘게 살다가, 박사학위를 취득한 후 1977년 한국으로 귀국했다. 1978년 신촌세브란스병원에서 차남 박찬석(43세)이 태어났다.

귀국 후에는 이화여자대학교 교수 및 부총장, 총장을 역임하였다. 줄곧 독신 여성들만[5] 이화여대의 총장을 맡아왔던 관례를 깨고, 기혼 여성으로서 총장이 되어 화제가 되기도 했다.

2002년 김대중 대통령에 의해 최초의 여성 국무총리 후보로 지명되었으나, 인사청문회 과정에서 장남의 이중국적 또는 미국 국적 취득, 병역 기피 의혹, 부동산 투기와 이를 위한 위장전입, 집의 크기, 많은 예금액수가 언론 지면에 다뤄지면서 국민들의 공분을 사, 결국 낙마했다.[6][하지만..]

이후 2006년부터 2007년까지 민주당 공동대표, 대표를 역임하였다.

2008년 민주당 전당대회 이후 최고위원을 역임하였다. 문국현이 공직선거법 위반으로 국회의원직을 상실하게 되어 치러진 2010년 재보궐선거에서 민주당 후보로 서울특별시 은평구 을 선거구에 출마하였으나 한나라당 이재오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

<지금도 나는 꿈을 꾼다>는 제목의 자서전을 냈다. 3. 선거 이력[편집] 연도 선거 종류 소속 정당 득표수 (득표율) 당선 여부 비고 2010 2010년 재보궐선거 (서울 은평구 을 국회의원)

33,048표 (39.90%) 낙선 (2위) [8]

[1] 1883년(고종 20) 식년 문과에 급제#해 평안북도 곽산군수를 지낸 장익후(張益厚)의 4남으로, 일본에 유학해 영문학을 공부했다.[2] 10살 위였던 언니 장란(張蘭)은 일찌감치 서울 진명여학교로 유학을 가 있었다.[3] 현재는 수학과가 자연과학대학 소속이지만, 장상이 재학하던 시절에는 사범대학 소속이었다.[4] 과거 여러 대학에서 5월마다 했던, 일종의 미인대회. 용모, 성적, 재능, 품성 등등을 두루 고려하여 선발하며, 학교의 스타 내지는 아이돌처럼 여겨졌다. 각 학과마다 퀸을 뽑고, 그 중에서 또 학교 전체 퀸을 뽑았다.[5] 이화학당의 창립자인 메리 스크랜튼 부인은 제외하고. 한국에 올 당시 메리 스크랜튼 부인은 52세의 과부였으며, 장성한 아들 윌리엄 스크랜튼과 함께 한국에 와서 선교활동을 했다.[6] 최초의 여성 총리는 한명숙이 됐다.[하지만..] 2008년 정권 교체 후, 치뤄진 인사청문회는 무난하게 통과한 사람이 단 2명에 불과했다. 선진제도로 도입된 인사청문회 제도가 자리잡는 과도기 시절의 지도층 인사들이 당면할 수밖에 없는 풍경이긴 했지만, 아무튼 이 무렵 한겨레신문에서, 장상 전 총리지명자가 "내게 적용한 그 엄격한 잣대 어디 갔느냐?"며 화를 내는 모습을 그린 만평을 기재했을 만큼, 인사청문회는 당시 세간에

졸업 후 1967년 미국으로 유학을 떠나, 예일대학교 신학대학원(석사)과 프린스턴 신학대학원(박사)에서 신학을 공부했다. 마침 박준서도 같은 학교에 유학 와 있어서 장상은 박준서와 재회하게 되었고, 두 사람은 미국에서 결혼식을 올리고 학생 부부가 되었다. 1973년 장남 박찬우(48세)를 낳았는데, 나중에 장상이 국무총리 후보에 올랐을 때 장남의 국적 문제가 말썽이 되었다.


1939년 10월 3일, 평안북도 용천군 북중면#에서 독실한 개신교 신자 가정의 2녀 중 차녀로 태어났다. 4살 때 아버지 장수근(張壽根)[1]을 여의었고, 8살이던 1947년 어머니 김봉현(金鳳鉉)과 함께 38선을 넘어 월남했다.[2] 11살이던 1950년 한국전쟁이 터져, 가족들과 함께 피난을 다니며 초등학교를 여러 번 옮겼고, 피난민 학생들을 위한 임시학교인 대전종합중학교에 다니다가 휴전된 후 서울 숙명여자중학교에 편입학했다.

숙명여자중학교와 숙명여자고등학교를 수석으로 졸업했다.# 성적이 우수하여 중고등학교 내내 장학금을 받았으며, 이화여자대학교 수학과[3]까지 4년 전액 장학생으로 다녔다. 공부 외에도 다양한 활동들을 열심히 했으며, 당시 총장을 지낸 김활란, 김옥길 등 교수들로부터도 총애를 받았다. 대학 2학년 때는 수학과 퀸으로 뽑혀, 메이퀸[4] 행렬에 참가하기도 했다.

독실한 크리스천 가정에서 태어나 자란 영향으로, 장상은 전공인 수학뿐 아니라 신학에도 깊은 관심을 가졌고, 이대 졸업 후에는 연세대학교 신과대학에 편입학했다. 이때 남편 박준서를 처음 만났다. 그는 서울대학교 법과대학 출신의 편입생으로, 법조인보다 신학자의 길에 뜻을 가지게 되어 연세대 신학과에 편입했다고 한다.

졸업 후 1967년 미국으로 유학을 떠나, 예일대학교 신학대학원(석사)과 프린스턴 신학대학원(박사)에서 신학을 공부했다. 마침 박준서도 같은 학교에 유학 와 있어서 장상은 박준서와 재회하게 되었고, 두 사람은 미국에서 결혼식을 올리고 학생 부부가 되었다. 1973년 장남 박찬우(48세)를 낳았는데, 나중에 장상이 국무총리 후보에 올랐을 때 장남의 국적 문제가 말썽이 되었다.

장상과 박준서는 미국에서 공부하고, 아기를 키우고, 학비와 생활비에 보태기 위해 일까지 하며 바쁘게 살다가, 박사학위를 취득한 후 1977년 한국으로 귀국했다. 1978년 신촌세브란스병원에서 차남 박찬석(43세)이 태어났다.

귀국 후에는 이화여자대학교 교수 및 부총장, 총장을 역임하였다. 줄곧 독신 여성들만[5] 이화여대의 총장을 맡아왔던 관례를 깨고, 기혼 여성으로서 총장이 되어 화제가 되기도 했다.

2002년 김대중 대통령에 의해 최초의 여성 국무총리 후보로 지명되었으나, 인사청문회 과정에서 장남의 이중국적 또는 미국 국적 취득, 병역 기피 의혹, 부동산 투기와 이를 위한 위장전입, 집의 크기, 많은 예금액수가 언론 지면에 다뤄지면서 국민들의 공분을 사, 결국 낙마했다.[6][하지만..]

이후 2006년부터 2007년까지 민주당 공동대표, 대표를 역임하였다.

2008년 민주당 전당대회 이후 최고위원을 역임하였다. 문국현이 공직선거법 위반으로 국회의원직을 상실하게 되어 치러진 2010년 재보궐선거에서 민주당 후보로 서울특별시 은평구 을 선거구에 출마하였으나 한나라당 이재오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

<지금도 나는 꿈을 꾼다>는 제목의 자서전을 냈다. 3. 선거 이력











장상(張裳[3], 1939년[4]~)은 대한민국의 여성 성서신학자, 여성신학자, 교수, 정치인이다.

신학과 신앙생활

  • 장상은 바울신학여성신학을 연구하는 한국 최초의 여성 성서신학자로 여성신학적 관점에 따른 성서 해석을 통하여 한국 교회와 여성신학의 발전에 많은 관심을 기울였다.[4]
  • 장상은 한국 기독교 장로회의 목사이다.[4]

정치

장상은 2006년 지방선거에서 민주당 선거 대책위원장을 맡은 것을 시작으로 정치를 시작했다.[5]

약력

  • 1939년 평북 용천 출생[4]
  • 이화여자대학교 수학과[4]
  • 연세대학교 신과대학 석사[4]
  • 예일대학교 M.Div.[4]
  • 프린스턴 신학대학원 Ph.D.[4]
  • 이화여자대학교 총장[6]
  • 2006년 2월 27일 민주당 입당[7]
  • 대한민국 국무총리 서리[6]
  • 민주당 대표[6]
  • 민주당 자치교육대책특별위원장[6]
  • 민주당 최고위원[6]

저서

역서

링크

아래 링크들은 전체적으로 2010년 7월에만 사용되었다.

출처

  1. “용천출신 실향민들 친척 생사걱정에 눈물”. 2021년 10월 20일에 확인함. 
  2. “용천출신 실향민들 친척 생사걱정에 눈물”. 2021년 10월 20일에 확인함. 
  3. 張裳 (1985). “기독교여성관의 재발견”. 《한국여성학》. 
  4. 4.00 4.01 4.02 4.03 4.04 4.05 4.06 4.07 4.08 4.09 4.10 4.11 4.12 4.13 “바올의 역사 의식과 복음”. 《이화여자대학교출판문화원》. 2018년 3월 21일에 확인함. 
  5. 장상 (2010년 7월 19일). “왜 민주당인가? 장상 그가 민주당을 선택한 이유?”. 《장상, 생각과 기억 속으로》. 2018년 3월 21일에 확인함. 
  6. 6.0 6.1 6.2 6.3 6.4 '장상' 님의 블로그 소개”. 《장상, 생각과 기억 속으로》. 2018년 3월 21일에 확인함. 
  7. 장상 (2010년 7월 19일). “정치 신인 장상, 노련한 정치가들에겐 ‘천하의 철부지’?”. 《장상, 생각과 기억 속으로》. 2018년 3월 21일에 확인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