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거지

최근 편집: 2022년 12월 16일 (금) 02:34
초설 (토론 | 기여)님의 2022년 12월 16일 (금) 02:34 판

사전적 의미

설거지식기조리기구를 씻는 일을 말한다. 에서 할 경우 가사노동이며, 음식점 등에서도 이루어진다.

역사

15세기의 문헌에서 '설엊다'라는 동사가 사용된 것으로 보아 그 이전에는 '설겆다'라는 동사가 있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원래부터 '설엊다'였으면 연철하여 '서럿다'로 표기하는 것이 옳으므로 설겆다의 ㄱ이 ㄹ 뒤에서 탈락하여 '설엊다'가 된 것으로 볼 수 있다.

17세기 문헌에서는 현대의 설거지하다 외에 정리하다, 수습하다의 의미로도 쓰였으며 이는 15, 16세기 문헌에서 확인되는 고유어 '설다'와도 쓰임이 같다. '설다'와 '설엊다'는 17세기 문헌에서 동일한 문맥에서 같이 쓰이기도 하였다.

이의 명사형이 보이는 것은 19세기 말부터이며 '설거지하다'라는 동사도 그 이후부터 사용되었다. 또한 그때부터 수습하다, 정리하다의 의미로는 쓰이지 않고 그릇을 씻어 정리하는 행위로만 쓰이고 있다.

은어로서의 설거지

투자 시장에서

오래 전부터 주로 주식 시장에서 작전 세력들이 주식을 싼 값에 미리 매집한 후 상승시켜 개인 투자자들에게 물량을 넘기며 정리하고 나오는 일을 턴다 또는 설거지 시킨다 등으로 표현하곤 했다.

한국에서 암호화폐 열풍이 분 2010년대 중후반부터는 암호화폐 시장에서도 같은 용법으로 이 은어가 사용되었다.

공교롭게도 설거지의 19세기 이전 원래 의미인 정리하다와 맞아떨어지는 용례이지만 실제로는 작전 세력이 음식을 준비(매집)하고 식사(차익실현)한 뒤에 유유히 빠져나와 뒷처리는 개인 투자자들에게 떠넘기는 모습이 잔반 처리와 설거지를 시키는 것처럼 연상되도록 쓰였다.

설거지론에서

디시인사이드 주식 갤러리에서 원래 투자 용어로서 사용되던 설거지가 해당 갤러리로부터 설거지론이 탄생하고 확산되면서 여성혐오적 은어로 변질되었다. 주식갤러리 이용자들은 설거지론 이전에도 이미 여자의 나이별 대상화된 매력을 IPO부터 상장폐지로 비유하는 유머가 퍼져 있었기에 여혐을 주식투자 개념에 비유하는 것이 익숙했다.

매력적인 여성들이 육체적으로 전성기인 젊은 시절 (육체적으로 매력적인) 남성들과 자유 연애를 하였다가 나이가 들어서는 (이전에는 거들떠도 보지 않았던) 경제적 능력이 있는 (그러나 성적으로는 매력적이지 않은) 남성과 결혼하였다고 가정했을 때, 그 여성이 정착한 남성을 두고 '설거지 당했다'고 표현한다. 기혼 남성은 '다른 남자가 다 따먹고 남은 더러운 접시(여성)을 깨끗하게 씻어 수거해가는 호구'라는 의미이다. 남성우월주의적이고 (비)자발적으로 결혼을 하지 않은 미혼 남성이 기혼 여남을 공격하는 단어이다.

기혼 남성을 주로 공격하고 있는 듯 하나, 결국 엠창의 용법과 유사하게, 여성을 애초에 인간 선상에서 배제시키는 화법을 취하고 있다. 여성을 음식에 비유하고, '먹히는' 객체, 성관계 후 '더럽혀지는' 객체, 인간으로서 다른 인간을 사랑한 것을 두고 '문란한' 행위라고 명명하는 등이다.

소위 '설거지론'을 주장하는 남성들에 의하면 그들은 '어린 시절부터 특별한 일탈을 한 적이 없고 준수한 직장에서 고연봉을 받는 남성이 결혼 후에 경제권과 발언권을 (그동안 문란하게 놀아 소위 '상품가치가 없는') 아내에게 제한당하는 현상'을 비판한다고 한다. 결혼한 남성이 다른 남성들에게 술자리에서 결혼 생활의 어려움을 한탄하며 우스갯소리처럼 자주 쓰이던 '결혼은 무덤이다'라는 어구가, 미혼 남성들에 의해 원색적인 비난조로 바뀐 것으로 추측된다.

사회적으로 성공의 조건을 충족한 중년의 기혼 남성이 자신의 행복한 결혼생활을 겸손하게 자랑하기 위해 자신의 처지를 비관하는 듯한 반어적 화법을 자주 활용한다는 점을 고려했을 때, 설거지론을 주장하는 (비)자발적 미혼 남성은 핀트를 잘 못 잡은 것으로 추측된다.[주 1]


부연 설명

  1. 남성들의 "여성의 속마음"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은 이전에도 존재했고, 이러한 두려움과 공포를 담은 어휘가 꽃뱀, 된장녀, ATM기계 등으로 나타났으며, 이러한 공포 심리로 인해 그 사회의 남성 구성원들이 자발적으로 여성을 관리하도록 하는 기재로도 작용했던 것으로 보인다. 설거지론을 통해 동료 남성으로 하여금 '여성 구성원은 믿지 못할 타인이므로 혹여라도 감정에 속아 여성에게 우호적이지 않도록 여성을 다시금 경계하게' 다독이려는 움직임이라고 볼 수 있겠다. "없는 남녀갈등 만들어내지 말라"던 그 남성들이 실제로는 얼마나 성별의 조화를 원하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궁극적으로 그들이 원하는 것은 "남성이 어떠한 대우를 하더라도 '남성만을 무조건적으로 사랑하고 따르는' 여성이지만, 그런 여성은 없기(?) 때문에 그들은 '어쩔 수 없이' 의처증을 늘 탑재하고 있어야" 하며, 남성들은 "배금주의에 찌들은 여성에 의해 남성이 이용당하고 차별을 당하는 부조리한 현실을 참을 수 없어 몸부림 치는 것"이다.[1]

출처

  1. package.lua 80번째 줄에서 Lua 오류: module 'Module:Citation/CS1/Suggestions' not foun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