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희동

최근 편집: 2022년 12월 27일 (화) 03:42

연희동(延禧洞)은 서울특별시 서대문구행정동법정동이다.

동의 명칭은 현재 연세대학교가 있는 자리로 추정되는 연희궁(延禧宮) 터의 이름에서 유래하였다. 조선시대에는 정자동, 염동, 궁동, 음월리라 부르던 지역으로, 일제시대 때 경기도에 속하다가 다시 경성부에 속하여 연희정(延禧町)이 되었으며 1946년 연희동으로 개명되었다.

위치

1968년 연희로와 증가로가 개통되면서 1970년대 초부터 주택가로 개발되기 시작하여, 평지에는 고급 주택이, 고지대에는 시민아파트가 세워졌고, 성산로와 연희로 주변에는 상가가 형성되었다. 기독교 계통의 연세대학교이화여자대학교가 인근에 있어 교수, 선교사, 외국인들과 정치인들이 거주하고 있다. 서울시 서대문구의 안산(鞍山) 능선을 따라 남쪽으로 내려가 금화산 자락의 금화터널 위를 지나면 우측에 이화여자대학교가 나오고 우로 연세대와 와우산 자락의 홍익대를 만난다.

연혁

지명 유래

일제강점기에 존재했던 연희역(延禧驛)은 경성순환노선의 폐역된 역으로 현재의 연세대학교 앞에 위치하고 있었다. 1930년 12월 25일에 개통하고 1939년 10월 31일에 폐역이 되었다.

또한 『신증동국여지승람』에 "연희궁(延禧宮)이 고초전(苦草田) 원묘, 의소묘(懿昭墓), 선희묘(宣禧墓)를 설명할 때 연희궁이 좌표역할을 하고 흥덕사(興德寺)의 위치를 서술할 때 동부 연희방(燕喜坊)에 있으니"라는 표현이 나온다.

『해동지도』, 『여지도』, 『광여도』, 『대동여지도』 등의 고지도에도 연희관, 고연희궁 등이 표기되어 있다. 연희궁은 이 마을에 조선 초 정종이 태종에게 왕위를 물려주고 머물렀던 곳이다. 연희동은 여기서 유래하였다.

궁터는 연세대학교가 있는 자리로 추정된다. 조선시대에 이곳은 한성부 북부 연희방에 속하였다. 『호구총수』에는 연희방의 연희궁계가 서술되어 있다. 일제강점기인 1911년에는 경성부 연희면(燕禧面) 정자동 · 염동 · 궁동 · 음월리라고 하였다고 전해진다.[1]

같이 보기

각주

  1. 한국지명유래집 중부편, 공동편집, 국토지리정보원(2008년) 참조

틀:서울 서대문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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