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기(부동산)

최근 편집: 2023년 7월 20일 (목) 20:15

등기(登記)란 국가 기관이 법정 절차에 따라 등기부에 부동산이나 동산채권 등의 담보 따위에 관한 일정한 권리관계를 적는 일, 또는 적어 놓은 것을 말한다. 말하자면 정부가 가진 부동산 장부이다.

이용

등기의 공신력

[대구고등법원 1951. 8. 22. 선고 4283민공237 민사부판결]
❝ 등기의 공고효력은 물권의 실체적 변효만을 공시함에 지나지 못하고 등기에 대한 공신적 효력이 없는 것이므로, 등기부상 기재된 매매일부는 반드시 동 일자에 매매가 성립된 것이라 인정할 증거가 되지 못한다.

부동산에 대한 과세 및 정책실행은 모두 등기부를 기반으로 이루어지는데, 부동산등기부와 실제 사실관계가 일치하지 않는 경우가 심심찮게 있고, 정작 정부는 '등기의 공신력은 없다'며 등기부를 믿어서 생긴 손해를 적극적으로 구제하지 않으며 단지 민사소송으로 따지라는 입장이다. 대륙법의 본산인 독일은 등기의 공신력을 인정한다.

이 제도의 허점은 대한민국에서 깡통주택 사기를 유발하고 있다. 그런데 여기에는 사연이 있다.

대한민국의 등기의 역사

조선시대

조선시대의 부동산 매매는 종이로 계약서를 쓰고 토지나 가옥을 인도하는 것으로 이루어졌는데 이 계약서를 문기(文記), 문권(文卷)이라고 하였다. 이 계약서를 쓰고 부동산을 인도하고 난 다음에는 소유권이 이전되었다고 관청에 보고하는 입안(立案)을 하였고, 조세징수 목적으로 국가에서 토지관리 대장인 양안(量案)을 20년 간격으로 작성하였다.[1] 그런데 양안은 토지 소유자가 변동할 때마다 의무적으로 변동사항을 신고하고 기록하는 것이 아니었고 측량 당시의 소유자만 나타났기 때문에, 양안이 전국의 토지 전부에 대한 토지소유관계를 정확하게 나타내지 못했다. 그리고 양안의 목적이 개인의 소유권을 보호해주기 위한 것이 아니라 국가가 세금을 거두고 국가나 왕이 필요하다고 판단하는 경우 일방적으로 수용하기 위한 목적이었기에 민간에서는 양안에 소유권을 기록하는 것을 꺼렸다. 그 대신 민간에서는 사사로이 문서를 작성해서 토지거래에 사용했는데 이것이 "땅문서"의 유래다.[2]

대한제국

구한말
1876년 개항 이후에 정부는 지계(地契)라고 하여 토지소유권을 증명하는 서면을 발급하였으나 널리 시행되지는 못하였고, 1906년에는 토지가옥증명규칙이라는 법을 만들어 부동산등기 관련 업무를 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제도는 한일합방으로 인해 제대로 시행되지 못했다.
일제강점기
한일합방 이후 일제는 1912년 3월에 조선민사령, 조선부동산등기령을 공포하여 일본 민법과 부동산등기법을 조선에서 적용하도록 강제하였고, 1912년 8월 공포한 토지조사령에 따라 전국의 부동산을 조사하여 토지소유자를 확정하였다. 이것에 따라 만들어진 토지대장이 현대 한국의 부동산등기부의 시초이다.

대한민국

제1공화국
1945년에 해방이 된 이후에도 1960년에 대한민국 민법이 만들어지고 부동산등기법도 함께 만들어서 공포되기까지에는 일제가 만든 법이 계속 쓰였다. 1960년 1월에 시행된 부동산등기법에서는 종래의 규정에 따라 한 등기는 이 법에 의해서 한 것으로 보았고, 일제시대에 한 등기의 효력은 계속 유지되었다. 관청 실무자들의 편의 상 등기부는 여전히 일제가 만들어 놓은 등기부를 계속 사용하며 일본어로 기재했다. 현재까지도 이 등기부는 폐쇄등기부라고 하여 여전히 등기소에서 보관한다.[주 1] 이 시기에는 '장부식등기부'라 하여 등기부를 등기부를 지번 숫자 순서대로가 아니라 등기부가 만들어진 순서대로 정리하는 바람에 등기부의 조회가 매우 불편했다. 등기를 찾을 때 지번을 특정해서 찾을 수 없으니, 등기부등본을 그날 바로 열람하지 못하고 운이 나쁘면 몇 달까지도 걸릴 수 있었고, 한시라도 빨리 등기부를 열람하고 싶은 사람은 등기소 공무원에게 뇌물을 주어 부탁해야 했는데 그러고도 빠른 조회를 장담할 수 없었다. 자유당 시기의 대한민국 건국초기에는 국가의 기틀이 제대로 잡혀있지 않으니 누군가 이런 부분을 정비하자고 하는 사람도 없었고 공무원들도 이런 걸 제대로 바로잡을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제4공화국
박정희 군사독재 정부 특유의 상명하복 체계 하에서 일제시대 등기부들이 이제야 한글로 다시 작성되기 시작했다. 1973년에 들어 ​'카드식등기부'라고 하여 부동산 지번 순으로 등기부를 다시 만들게 하고, 등기부를 한 장씩 꺼내서 타자기를 이용하여 새로운 내용을 덧붙여 쓸 수 있도록 개혁하였다. 전산화의 개념이 아직 없었기에 전환이 느렸기 때문에, 급한대로 서울이나 부산 같은 대도시 위주로 업무가 진행되었기에, 대도시가 아닌 시골의 경우 카드식 등기부가 도입된 1973년 이후에도 일제시대 등기부에 기재만 한글로 했다.​ 카드식등기부의 전국 도입은 1980년대가 다 되어서야 이루어졌다. 이때까지도 민간에서는 부동산등기 제도를 잘 사용하지 않고 그냥 자신들끼리 대충 작성한 매매계약서나 예전부터 내려오는 땅문서 같은 비공식적인 사문서를 주고 받으며 부동산을 사고 팔았기에 국가에 공식적으로 등기된 부동산소유주와 실제 부동산 소유주가 일치하지 않는 경우가 많았다. 특히 이런 경향은 대도시가 아닌 지방의 경우에 더욱 심했고, 지금도 그렇다. 부동산등기를 하려니 절차가 너무 복잡하고 공무원들도 적극적으로 도와주지 않고, 까다롭게 그동안 권리 관계가 어떻게 변동되었는지를 다 밝히는 내용의 서류를 가져오라고 하고, 막상 서류를 가지고 등기소에 가도 등기관이 해당 등기부를 창고에서 찾아내오는데 며칠 혹은 그 이상이 걸리니까 사람들이 등기 자체를 회피했던 것이다. 게다가 조선시대 때부터 땅을 가진 사람들에게 각종 명목으로 세금을 거두고 수탈을 해온 오랜 역사가 있기에 사람들이 부동산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국가에 등기하게 되면 또 무슨 명목으로 국가로부터 돈을 뜯길 것인가 염려하여 아예 등기 자체를 본능적으로 회피한 것 역시 등기부가 엉망으로 유지된 중요한 원인이다.
이렇게 해방 이후에도 몇 십년을 부동산등기부가 제대로 정비되지 않고, 부동산의 소유주와 등기부상의 소유주가 맞지 않는 상황이 지속되자 정부에서는 '부동산소유권 이전등기 등에 관한 특별조치법'을 1977년에 제정하여 1978년에 시행하였다. 이 법은 1978년 3월 1일에 시행되었고 원래는 1년 정도만 하려고 하였으나, 국민들의 참여가 저조하여 계속해서 개정되고 연장되어 최종적으로는 1984년 12월 31일까지 실시되었다. 이 법은 부동산등기법에 의해 등기해야 할 부동산으로서 이 법 시행당시에 소유권보존등기가 되어 있지 않거나 등기부에 기재된 내용이 실제의 권리관계와 맞지 않는 부동산을 간단한 절차를 통해 등기하도록 하는 것이 목적이었다. 그 간단한 절차란, 동네 사람 3인이 "이 부동산이 신청인의 것이다" 라고 보증서 한 장만 써주면 그 땅이 신청인 이름으로 소유권등기가 되는 것이었다. 매도인측 혹은 이전 소유자가 확인을 해주는 서류는 필요 없었다. 왜냐하면 당시 우리나라의 토지들의 등기부에는 일제시대 등기한 내용이 그대로 남아 있었는데, 등기부에 소유자로 되어 있는 사람이 일본인이거나, 6·25 전쟁을 거치는 동안 실종되거나 사망하거나 하여 찾을 수 없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주 2] 게다가 소위 '땅문서'같은 것도 제출할 필요가 없었다. 당연히 법에 무지한 사람은 대대로 내려와서 자신의 땅인줄 알고 있던 땅을 너무나도 간단하게 빼앗기곤 했고, 법을 좀 아는 사람이라면 남의 땅을 자기 땅으로 등기해서 영원히 자신의 땅으로 삼을 수 있었다.
제6공화국
등기부의 전산화는 한참이 지난 1994년에 겨우 시작되었다. 서울중앙지방법원 등기과에서부터 먼저 시작된 전산화가 전국 모든 등기소에서 완료되기까지는 8년이 걸려 2002년 9월에야 전국 212개 등기소 전체에 대한 전산화가 완료되었다.

현재 대한민국 국토의 거의 대부분 부동산에 대해서는 부동산등기부가 완성되어 있지만 아직도 토지의 실소유자와 등기부가 일치하지 않는 곳이 많이 남아 있고, 수십억원 규모의 값비싼 부동산거래가 겨우 땅문서, 집문서에 의하여 이루어지는 일도 아직 벌어진다. 건축물대장도 없고 건물등기부도 없는 일제시대 국유지의 무허가주택이 그 동네에서만 통하는 집문서를 통해 수억 원에 거래되기도 한다.

이처럼 부동산등기부의 내용을 있는 그대로 다 믿기 힘든 역사가 계속 이어져왔기에 대한민국에서는 등기부의 내용 자체를 100% 사실로 인정하지 못하고 개별 사안은 민사소송으로 판단하라는 입장이 된 것이다. [3]

부연설명

  1. 상태가 좋지 않아 열람하려 손대면 바스라지기 일쑤라고.
  2. 지금은 부동산등기를 하기 위해서는 매도인과 매수인 모두의 확인절차가 필요하고, 실무적으로는 법무사나 변호사가 양측의 위임을 받아 등기소에 가서 양측 모두가 직접 인정하고 서명한 서류를 제출하고 소유권이전등기를 하게 된다.

출처

  1. 유석주 저, 부동산등기법, 삼조사, 2007. 제12페이지
  2. 나달숙, “조선시대와 일제강점기 토지소유권의 법적고찰”, 2016. 9. 한국법학회 법학연구 제16권
  3. [여의도변호사박영진 종중의 재산을 지켜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