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리아 엘레노브나 김

김마리아, 또는 마리아 엘레노브나 김(Мария Еленобна Ким)은 일제강점기의 독립운동가이며, 해방 후 대한민국에서 정치인으로 활동하였다. 철기 이범석 장군의 두 번째 부인이자 동지로 러시아와 중국 전선을 함께하여 "쌍권총 김마리아"로 널리 알려졌다.

국내에서 활동한 김마리아와는 동명이인이다.

생애

연해주 출신의 교포 2세로 한때 소련 공산당원으로 활동했던 그는 15남매나 되는 형제들이 내전이 끝난 후 러시아 정교회 신도라는 것을 빌미로 반혁명분자로 몰려 몰살을 당하다시피 하자 살기 위해 러시아를 탈출하여 독립군 진영으로 들어왔다. 적백내전 막바지 스파스카야 전투에서 소련군 소속 간호대원으로 전투에 참여했던 그녀는 이범석을 치료해 주면서 인연을 맺게 되었고, 이범석은 김마리아를 마샤라고 불렀다.

소련 정부는 군수 물자를 지원하기로 한 약속을 지키지 않았고, 일본에 우호적으로 돌아선 소련 정부의 태도는 우리 독립군을 위태롭게 만들었다. 김좌진 장군이 있는 영고창에서 그녀는 피복창 주임을 맡아 대원들의 군복을 관리했다. 그러던 어느날 새벽에 일본군의 기습으로 진영은 삽시간에 불길에 휩싸였고, 일본군은 맞은편 골짜기에서 포위망을 좁혀 오면서 포탄세례를 퍼부었다. 바로 그때 김마리아는 지휘부 사무실을 향해 달려가 그 화염속에서 문건들을 품에 안고 나왔다.

독립군에서 쓰는 묵와 훈련용 교재는 대부분 러시아와 중국에서 들여온 것들이었는데, 마샤는 러시어와 중국어에 능통하여 이런 교재들을 번역하여 교관들에게 나눠주었고, 내용을 잘 이해하지 못하는 이들에게는 직접 사용법을 시연해 보이기도 했다.

1925년 8월, 영고탑 독립군 진영에서 마샤는 이범석과 조촐한 결혼식을 올렸다. 그러나 미쓰야 협약 이후 만주의 독립운동은 위축되었고, 이범석의 목에 걸린 현상금 50만냥 때문에 일본군과 러시아인은 물론 중국인과 조선인 밀정들도 눈에 불을 켜고 이범석을 추적했고, 김마리아는 쌍권총을 가지고 이범석을 호위했다. [1]

광복 이후 1956년 정계에 입문, 민주당 - 국민의당 - 한국독립당 - 신민당에서 최고위원을 거쳐 1968년 은퇴하였고, 1970년 2월 10일 별세하였다.

출처

  1. ↑ 공, 심 (2023년 2월 10일). “사랑의 힘으로 독립군 투사가 된 김마리아”. 《게으른 집에 사는 게으른 사람 이야기》. 2023년 7월 26일에 확인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