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출생 | 1968 광주광역시 |
|---|---|
| 사망 | 2026-04-20 경상남도 진주시 |
| 매장지 | 광주 망월동 민족민주열사묘역 |
| 직업 | 화물노동자, 노동운동가 |
| 소속 |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화물연대본부 전남지역본부 컨테이너지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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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광석(1968년 ~ 2026년 4월 20일)은 화물연대본부 전남지역본부 컨테이너지부장을 지낸 화물노동자이자 노동운동가다. 광주에서 태어나 민주노총 광주전남지역본부와 광주노동자문화패연합에서 활동했고, 2011년 화물연대에 가입한 뒤 안전운임제 투쟁 등 화물노동자의 기본권 보장 운동에 앞장섰다. 2026년 4월 20일 경상남도 진주시 CU 진주물류센터 앞 화물연대 농성 현장에서 파업 대체수송 차량에 치여 숨졌다. 화물연대와 민주노총은 그를 열사로 부르며 노동시민사회장으로 장례를 치렀다. 그의 죽음은 CU 진주물류센터 서광석 사망 사건에서, 사건의 배경이 된 파업은 2026년 CU 화물연대 파업에서 다룬다.
관련 문서 →노조법 2·3조 개정
생애
1968년 광주에서 태어나 광주고등학교와 조선대학교를 거쳤다.[1] 민주노총 광주전남지역본부(준) 문화부장, 광주노동자문화패연합 조직창작위원장, 화물연대 전남지부 사무부장 등을 지냈다.[1]
2011년 화물연대에 가입한 뒤에는 화물노동자의 기본권 보장, 화물악법 철폐, 안전운임제 투쟁의 최전선에서 활동했다는 평가를 받았다.[1] 숨질 당시 직함은 화물연대본부 전남지역본부 컨테이너지부장이었고 나이는 58세였다.[2][1] 서광석은 화물운송 현장의 저운임, 장시간 노동, 위험의 외주화, 원청 책임 회피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화물연대의 투쟁에 함께해 왔다. [출처 필요] 특히 화물노동자가 실질적으로 원청의 통제를 받으면서도 법적으로는 개인사업자로 취급되어 노동3권 보장에서 배제되는 현실을 바꾸기 위한 현장 활동에 결합하였다. [출처 필요]
CU 물류센터 투쟁
2026년 4월 화물연대는 경상남도 진주 BGF로지스 CU 물류센터를 상대로 교섭 요구, 운임 개선, 노동조건 개선, 원청 책임 인정을 요구하는 투쟁을 전개하였다. 해당 현장은 편의점 물류 운송을 담당하는 핵심 거점으로, 다단계 하도급 구조와 불안정 노동 문제가 제기되어 왔다. [출처 필요]
사망
화물연대는 편의점 CU의 물류를 맡은 BGF로지스(모회사 BGF리테일)에 교섭을 요구하며 파업 중이었고, 진주 CU 물류센터 정문 앞에서 연좌농성을 하고 있었다.[3] 2026년 4월 20일 오전 10시 32분쯤 센터에서 처음으로 출차하던 2.5톤 탑차가 농성 중이던 조합원들을 쳤다.[4] 서광석은 병원으로 옮겨졌으나 오전 11시 45분 숨졌고, 조합원 2명이 중경상을 입었다.[3]
화물연대는 원청의 교섭 거부와 경찰의 과잉 대응이 사고를 불렀다고 보고, 책임자 처벌과 열사 명예회복 등을 요구했다.[2] 유가족의 위임을 받아 'CU 투쟁 승리 및 열사 정신 계승 화물연대 투쟁본부'를 꾸렸다.[2] 21일에는 진주물류센터 앞에서 사망 조합원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을 촉구하는 결의대회가 열렸고, 노조 추산 2700명이 모였다.[5]
추모와 정신계승
장례는 노동·시민사회장으로 치러졌다. 5월 2일 저녁 순천 정원장례식장 옆 도로에서 추모문화제가 열렸고, 3일 오전 발인한 뒤 광양에서 화장했다.[1] 낮 12시 30분 순천 조례호수공원 앞 사거리에서 열린 영결식에는 동료 노동자와 시민사회 인사들이 모였다.[1] 영결식에서 김동국 화물연대본부 위원장은 고인이 화물노동자의 기본권 보장과 안전운임제 투쟁의 가장 앞에 서 있었다고 말했다.[1]
오후에는 광주 망월동 민족민주열사묘역에서 하관식이 열렸다.[6] 민주노총 광주·전남본부와 화물연대 광주·전남지역본부 등 300여 명이 참석했고, 서광석의 누나는 시인 서정주의 〈국화 옆에서〉를 좋아했던 동생이 국화 옆에 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는다고 말했다.[6]
사건 이후 화물연대와 민주노총, 시민사회는 서광석 열사를 추모하며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 재발방지 대책을 요구하였다.[2] 또한 특수고용노동자에게도 온전한 노동3권을 보장하고, 원청 사용자 책임을 강화해야 한다는 요구가 확산되었다. [출처 필요]
노동운동 진영에서 “열사 정신 계승”은 개인의 희생을 기리는 데 그치지 않고, 그가 남긴 과제를 사회적으로 해결해 나가는 실천을 뜻한다. [출처 필요] 서광석 열사의 이름은 화물노동자의 권리와 존엄을 위한 투쟁 속에서 계속 호명되고 있다. [출처 필요]
평가
서광석 열사의 죽음은 개인의 불운한 사고가 아니라, 특수고용노동자의 권리를 외면한 구조가 만들어낸 사회적 참사, 사회적 타살이다. [출처 필요] 오늘날 물류 산업의 화물노동이 얼마나 불안정한 조건 위에 놓여 있는지를 드러낸 사건으로 평가된다. [출처 필요] 동시에 보이지 않는 곳에서 사회를 움직여 온 노동자들의 권리가 어떻게 배제되어 왔는지를 보여주는 사례이기도 하다. [출처 필요]
이후
4월 30일 화물연대와 BGF로지스가 단체합의서에 서명했다. 합의서에는 숨진 조합원에 대한 명예회복과 예우 방안이 명문화되었고, 사측이 책임을 통감하며 유가족에게 사과하기로 했다.[7][8] 조인식에 앞서 노사 양측은 숨진 조합원을 추모하는 묵념을 했다.[8]
사고 차량을 몬 비조합원 운전자는 경찰이 살인 혐의로 구속 송치했으나, 검찰은 보완 수사 끝에 상해치사로 혐의를 바꿔 5월 8일 구속기소했다고 밝혔다.[9] 6월 18일 창원지방법원 진주지원은 운전자에게 징역 2년 6개월, 집행유예 4년을 선고했다.[10]
출처
- ↑ 1.0 1.1 1.2 1.3 1.4 1.5 1.6 고영호 기자 (2026년 5월 4일). “'길을 연 화물 노동자 서광석 열사' 노동시민사회장 영결식 엄수”. 《노컷뉴스》. 2026년 10월 29일에 확인함.
- ↑ 2.0 2.1 2.2 2.3 김동빈 기자 (2026년 4월 21일). “'노란봉투법' 이후 첫 노동자 사망…CU 사고, 李정부 노정 시험대”. 《노컷뉴스》. 2026년 10월 29일에 확인함.
- ↑ 3.0 3.1 문광호 기자 (2026년 4월 23일). “[점선면] 이익 813% 늘었는데 운임 고작 0.6% 인상···화물기사 죽음, 누구 책임인가”. 《경향신문》. 2026년 10월 29일에 확인함.
- ↑ 김정훈·최서은 기자 (2026년 4월 20일). “[속보]CU 진주물류센터서 화물차가 집회 참가자 쳐···1명 숨지고 2명 다쳐”. 《경향신문》. 2026년 10월 29일에 확인함.
- ↑ “진주 화물연대 “사망사고 책임 밝혀라”…2700명 결집”. 《헤럴드경제》. 2026년 4월 21일. 2026년 10월 29일에 확인함.
- ↑ 6.0 6.1 이영주 기자 (2026년 5월 3일). “진주 집회서 숨진 화물연대 노동자, 광주서 하관식 엄수”. 《뉴시스》. 2026년 10월 29일에 확인함.
- ↑ “진통 끝에 조인식 화물연대-BGF로지스…물류업계 상생 모델 제시”. 《세계일보》. 2026년 4월 30일. 2026년 10월 29일에 확인함.
- ↑ 8.0 8.1 권재희 기자 (2026년 4월 30일). “화물연대·BGF로지스 갈등 타결…사망사고 이후 열흘 만”. 《아시아경제》. 2026년 10월 29일에 확인함.
- ↑ 이형탁 기자 (2026년 5월 8일). “화물연대 사상 사고 40대 운전자 구속 기소…상해치사로 변경”. 《노컷뉴스》. 2026년 10월 29일에 확인함.
- ↑ 이형탁 기자 (2026년 6월 18일). “CU사태 1심 판결 잇달아…화물기사, 노조원 모두 '집유'”. 《노컷뉴스》. 2026년 10월 29일에 확인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