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전 매매춘

최근 편집: 2018년 5월 17일 (목) 17:18

기원전 5세기 그리스의 역사가 헤로도토스Herodotos에 따르면, 모든 여성은 일생에 적어도 한 번은 바빌론에 있는 다산의 여신 이시타르의 신전에 가서 낯선 남자와 성 관계를 가졌다고 한다. 여성들이 신전에 자리를 잡고 앉아 낯선 남자가 그녀의 무릎에 은화를 던지면서 "이시타르의 이름으로 당신을 지명한다"고 말할 때까지 기다렸다가 성 관계를 가진 후 신전을 떠났다. 낯선 남자가 좀처럼 선택하지 않은 여성들은 3년이고 4년이고 그곳에서 기다려야만 했다. 헤로도토스는 성적인 행위를 신에게 바치는 종교적인 행위로 파악했다. 매춘과 이시타르 신앙의 관련성은 가장 오래된 바빌로니아 고전 <길가메시 서사시Gilgamesh Epic>에서도 나타난다. 이 이야기에 따르면, 야만 상태의 남성 엔키두는 매춘 여성과 성관계를 가진 후 비로소 문명인이 된다. 매춘과 종교의 밀접한 관련성을 전해주는 문헌들은 바빌로니아뿐만 아니라 프리기아, 페니키아, 시리아, 리디아, 키프로스, 이집트, 이스라엘 등에서도 볼 수 있다. 매춘을 종교와 관련해 언급한 문헌이 많았던 이유는 아마 그 시대가 지극히 종교 중심적인 사회였기 때문일 것이다. 여성의 생식기는 다산을 위한 종교적 상징을 의미했으며, 매춘 행위는 종교의 이름으로 진행되었던 것이다. 사회주의자들의 주장과 달리 매매춘은 인간의 성적인 욕구를 그 시대의 사회가 승인한 관습과 제도에 의해 합법적으로 채워주는 기제였던 것 같다.

그리스 사회는 우리에게 매매춘과 관련된 풍부한 어휘와 다양한 문헌을 남겼다. 포르노그래피pornography란 어휘는 원래 '성적 표현과 행위에 관한 기록'이란 뜻을 가진 그리스어에서 유래한다. 넓은 의미로 매춘 여성과 남성 손님들의 생활, 습관, 행동을 기록한 것이 포르노그래피이다. 그리스인들은 매춘 여성에 대한 명칭을 계층에 따라 매우 다양하게 불렀다. 그리스 매춘 여성에 대한 여러 문헌들은 동료라는 뜻의 헤타이라hetaira에 대해 많이 언급하고 있다. 영어로는 최고급 창부란 뜻의 코티잔courtesan에 해당된다. 반면에 포르노이pornoi란 최하층 매춘부란 뜻으로 영어의 호어whore에 해당한다. 이 외에도 사원 창부, 공공 여인, 거리의 여인, 무용수, 유곽박이 등등 여러 명칭이 있었다. 매춘을 언급하는 말이 이처럼 다양했던 이유는 그리스 사회에서 매춘 여성의 수효가 그만큼 많았다는 것과 매춘을 극히 당연한 생업으로 받아들였다는 것을 의미한다. 매춘이 여성에게 유일한 경제 활동 영역이기도 했던 것 같다.[1]

  1. 매매춘과 페미니즘, 새로운 담론을 위하여. 이성숙 지음. 책세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