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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편집: 2021년 11월 8일 (월) 14:24

가림토(加臨土) 또는 가림다(加臨多)는 기원전 22세기에 고조선에서 만들어졌다고 《환단고기》(桓檀古記)에 등장하는 가공의 문자이다. 역사학계와 언어학계에서는 위서(僞書)로 보는 환단고기를 제외한 다른 문헌에서 전혀 언급되지 않고 실제로 사용되었다는 증거도 없기 때문에 가림토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는다. 반면, 환단고기의 내용을 믿는 유사역사학계에서는 가림토의 존재를 주장하고 있다.

내용

  • 황당환단고기 단군세기에 따르면 3세 단군인 가륵 재위 2년(기원전 2181년)에 단군이 삼랑 을보륵에게 명하여 정음(正音) 38자를 만들게 했다고 한다.

경자 2년(기원전 2181년) 아직 풍속이 하나같지 않았다. 지방마다 말이 서로 다르고 형상으로 뜻을 나타내는 참글(眞書)이 있다 해도 열 집 사는 마을에도 말이 통하지 않는 경우가 많고 백 리 되는 땅의 나라에서도 글을 서로 이해키 어려웠다. 이에 삼랑 을보륵에게 명하여 정음 38자를 만들어 이를 가림토(加臨土)라 하니 그 글은 다음과 같았다.

  • 황당환단고기에 등장한 단군이 만든 문자로서의 가림토 또는 가림다가 가장 널리 알려져 있으나, 환단고기가 공개되기 이전의 기록들에서는 전혀 다른 개념으로 언급된다.
  • 단기고사(檀奇古史)에는 가림다가 고설(高契)이 편찬한 역사책 산수가림다(刪修加臨多)로 나타난다. 이에 따르면 3세 단군 가륵 재위 3년에 단군 이 고설에게 명하여 국사(國史)를 편찬하게 하고 산수가림다라 이름지었다고 한다. 또한 바로 전 해(단군 가륵 2년)에는 을보륵(乙普勒) 박사에게 명하여 국문정음(國文正音)을 정선하도록 하였다고 기록되어 있다. 이에 따르면 가림다는 역사책이고, 환단고기의 가림토에 해당하는 국문정음은 별도로 제작된 것이 된다.
    • 이것을 패러디하여 디씨고사에는 가림다가 김유식이 편찬한 역사책, 디시인사이드로 나타난다. 이에 따르면 3세 윾싀 가륵 재위 3년에 윾싀가 김유식에게 명하여 국사를 편찬하게 하고 디시인사이드라 이름지었다 한다. 또한 바로 전 해 윾싀 2년에는 강귀태 박사에게 명하여 야민정음을 정선하도록 하였다고 기록되어 있다. 이에 따르면 디시인사이드는 인터넷사이트이고 황당고기의 가림토에 해당하는 야민정음은 별도로 야갤에서 제작한 것이라 카더라.
  • 황당환단고기의 실제 작자(作者)인데 전수자라고 주장하는 이유립황당환단고기를 공개하기 3년 전인 1976년에 월간 《자유》 5월 호에 발표한 글에서 가림토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서술하였다.

태백유사(太白遺史)에는 ‘흉노의 조상에 모수람이라는 자가 있어 천신을 섬겼으며 (중략) 그 풍속이 사납고 맹렬하여 수렵을 좋아하고 흙을 굽고 밧줄을 꿰어 신표로 삼으니 이를 가림토라 하였다.

  • 이에 따르면 가림토는 흙을 굽고 밧줄을 꿰어(煉土貫索) 신표로 쓰는 문자, 즉 결승문자(結繩文字) 수준의 글자이며, 흉노족이 사용하던 문자이다. 황당환단고기의 전수자라 자칭하고, 실저작자인 이유립이 직접 쓴 글에서 이러한 모순이 등장하기 때문에, 이유립이 환단고기를 저작할 때 가림토라는 가공의 문자를 창작해 낸 것으로 보는 견해가 확실하다.[2]

비판

황당환단고기에 실린 가림토의 생김새는 한글, 특히 훈민정음 창제 때 판본체의 한글과 비슷하다. 가림토를 있었다고 주장하는 환빠들은 훈민정음이 ‘고전을 모방하였다’는 세종실록의 기록을 들어 훈민정음은 가림토를 본따 만든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세종실록의 해당 기록에 등장하는 고전(古篆)은 전서(篆書)라는 한자의 옛 서체를 가리키는 것이며, 이는 오랑캐(몽골·여진·일본 등)처럼 새로운 글자를 만들었다고 비판할 중화주의자들을 의식해 '언문은 옛글자(한자의 옛 서체)를 본떠서 만들었다'는 식으로 해명한 것에 대해 자음과 모음을 결합해 음절을 구성하는 한글의 표기방식이 표의문자인 한자와는 근본적으로 다르다고 비난한 내용으로서 가림토와는 전혀 무관하다.[2]

언어학적 비판

  • 고대의 문자는 대부분 회화문자(繪畵文字)나 상형문자(象形文字)에서 시작한다. 이러한 문자는 대다수가 복잡한 자형을 가졌으며, 특히 그것을 상징한 사물의 모습을 알아볼 수 있도록 형태가 남아 있다. 그러나, 가림토는 당시에는 존재한 예가 거의 없는 표음문자(表音文字)로서 문자 발달사에 부합되지 않는다.
  • 가림토가 만들어졌다고 주장되는 시기는 중국에서는 표의문자인 갑골문자(기원전 14세기 ~ 기원전 11세기)가 만들어지기 시작했을 거라고 추정되는 때보다 800년 이상 앞선다. 표의문자는 개개의 글자가 모두 뜻을 가지고 있어 그 수가 무한한 반면, 가림토는 38개의 글자로 되어 있어 음소문자(音素文字)임을 알 수 있다. 갑골문자가 나오기 수백년 전인 당시에 음소문자가 등장했다는 것은 문자 발달사를 볼 때 있을 수 없는 일이다.
  • 가림토에는 《훈민정음》(訓民正音)의 홑중성과 흡사한 홑중성 꼴의 글자 11자가 있는데, 가림토가 한글의 모(母)문자라면 가림토의 해당 11자는 훈민정음의 중성 11자에 대응하는 것이 분명하다. 그런데, 중성으로 표기되는 모음도 자음과 같이 시대가 지나면서 변한다. 일례로 훈민정음의 모음 11자는 18세기에 이르면 ‘아래아’가 소멸되어 10자로 감소하며, 홑모음이 아닌 모음도 전설 단모음 ‘ㅔ’, ‘ㅐ’, ‘ㅚ’ 등이 생겨나 현대 한글의 모음은 훈민정음에 대해서 1개 모음이 소멸되고 3개 모음이 새로 생겨났다. 1443년에 창제된 한글이 이런 변화를 겪었는데, 4200년 전에 만들어졌다는 가림토가 훈민정음과 모음의 숫자가 일치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1. 이유립, 〈동양문명서원론을 비판한다〉, 월간 《자유》 5월호, 1976
  2. 2.0 2.1 이문영(초록불), 《만들어진 한국사》, 파란미디어, 20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