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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편집: 2021년 11월 8일 (월) 14:06

김두한(金斗漢, 1918년 5월 15일~1972년 11월 21일)은 일제 강점기에 활동한 건달이자, 대한민국정치인이다. 본관은 신 안동 김씨이며, 호는 의송(義松)이다.

생애

일제 강점기 말 18세 약관으로 경성의 유력한 건달패의 우두머리로 군림하였으며, 일설에는 민족말살정책에 거부하는 등 일본 제국에 저항하였다고도[1] 알려져 있다. 해방 후, 미군정기에서는 잠시 조선공산당 산하의 조선청년전위대 대장으로 있었으나, 이내 탈퇴하고 우익으로 전향하여 반탁운동 등 좌우대립에서 반공투쟁을 하였다.

한국전쟁에는 대한 학도의용군 등 전선에 참전하였고 노동운동에도 투신하여 노동운동가로서도 활동하였으며 대한민국 제3대 국회 · 대한민국 제6대 국회국회의원을 지내면서 이승만 정권, 박정희 정권의 독재를 비판하였다. 6대 국회의원에 당선 직후 한국독립당 내란음모사건으로 옥고를 치렀고, 한국 비료 주식회사가 사카린을 밀수하자 국회에서 삼성 이병철과 박정희 정권을 비판하며 국무위원 등에게 오물을 투척하였다.

경기도 수원시 신민당 후보로 대한민국 제7대 국회의원 선거 유세에서 북한의 전깃불 관련 발언이 북한을 찬양했다는 혐의로 반공법으로 옥고를 치렀고 이후에는 박정희 정권의 독재를 비판해 오다, 1972년 11월 19일에 갑자기 쓰러져 의식불명이 되었다가 11월 21일 오전 9시 5분에 사망하였다.

여담

  • 주먹힘이 굉장히 좋았다고 한다. 조폭인데 당연하지 주먹힘 하면 뒤지지 않을 자가 차지철이었는데, 당시 30대이던 차지철도 함부로 건들 수 없는 사람이 40대 후반이었던 김두한 이었다는 카더라가 있다.
  • 국회의원이었던 차지철이 국회 본회의장에서 김두한과 대치를 하게 되고 김 의원이 “당신 힘이 장사라면서, 나하고 한 번 붙어볼까”라고 말하며 웃통을 벗어던졌다는 일화가 유명하다.[2]

대중문화 속의 김두한

외부 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