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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군상

단군(檀君/壇君) 또는 단군왕검(檀君王儉)은 한반도의 최초 왕조인 고조선의 첫 임금이다.

단군조선(고조선)의 역대 국왕
조선 건국 단군왕검 부왕

개요

한민족의 신화적인 시조이자 고조선의 건국자이자 고조선의 첫 임금(첫 단군)으로 대한민국북한 역사서에 등장하는 인물로, 대한민국과 북한은 단군을 한민족의 조상으로 인정하고 있다.

한국의 역사서에는 《삼국유사》,《제왕운기》,《세종실록》,《동국통감 외기》 등에 기록되어 있다.

단군에 대한 인식

단군은 고려 말, 대몽항쟁 시기에 주목받기 시작하여 조선 시대부터 본격적으로 국조(國祖)로 추앙되었다. 세종 때에는 평양에 단군과 동명왕을 모신 사당을 지어 국가적으로 제사를 올렸으며 환인, 환웅, 단군의 신주를 모신 삼성당(三聖堂) 또는 삼성사가 황해도 문화현 구월산에 만들어지기도 했다.

구한말에는 외세의 각축에 대항하는 한민족의 구심점으로 대폭 강조되어 단군교(檀君敎)[1]와 같은 종교로까지 발전하기도 하였다. 이렇게 민족주의의 구심점으로 부각된 단군은 일제강점기 동안 독립운동의 정신적 토대로 큰 역할을 하였다. 또한 대종교 및 독립운동 세력에 의해 단군 시대의 역사를 민족주의적 관점에서 부풀린 대동사강, 규원사화 등의 위서들이 편찬되기도 했다. 한편으로는 일제 혹은 친일파들이 단군을 종교적·학문적으로 이용하여 민심을 무마하려 하거나 일선동조론(日鮮同祖論) 등의 황국신민화 정책에 악용하기도 하였다.[2]

광복 이후 한국의 단군에 대한 연구는 고조선 사회에서 가지는 역사적 의미에 중점을 두었다. 단군왕검은 고조선 사회의 제주이자 군장으로, 단군제사장적인 성격을 많이 담고 있으며 왕검은 국가를 통치하는 군주의 의미를 띠고 있다고 해석한다.[3] 즉 제정일치의 사회의 지도자였다.[4] 방언의 분포와 비교언어학적으로 살펴볼 때에도 제사장과 정치적 지도자를 함께 이르는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5] 최남선무당이 '단골'로 불리는 것에 주목하여 단군을 제사장의 의미로 해석하였으며, 단()이라는 한자는 제단의 다른 표현이라 하여 한자 표기를 '君(단군)'으로 할 것을 주장하기도 하였다. 최남선의 지적에 대해 무녀를 당골네라고 부르는 것은 무녀가 서낭당이 있는 고을에 산다고 하여 '당골네'로 부르는 것일 뿐, 단군과는 관련이 없다는 지적이 있다.[6]

북한에서는 광복 이후 단군 및 단군 신화를 고조선에서 정치 권력이 성립하는 과정을 정당화하기 위해 꾸며진 건국 신화로 보는 것이 기존의 입장이었다.[7] 그러나 1994년단군릉을 발굴할 무렵부터 입장을 바꾸어 단군 신화는 역사적 사실을 반영하고 있고 단군이 실존하는 인물이라고 주장하였다. 단군은 한민족이 세운 국가인 고조선 최초의 왕으로서 출생·건국·무덤이 모두 평양에 있다고 주장한다.[8] 평양직할시 근처에는 북한이 발굴하여 재건한 단군릉이 있으나, 그 사실 여부에 대해서 한국 학계는 비판적인 입장이다. 특히 1990년대 이후 갑작스러운 입장 변화에 대하여 남한의 역사학계는 주체사상이 북한의 역사관으로 강조되게 한 정치적 요인에 의한 것이라고 보고 있다.[9]

세간의 인식

1980년대 이후 황당환단고기와 같은 위서가 유행하면서 세간에는 단군의 역대 왕계보가 퍼지기도 하였다. 한편 2007년청동기 시대의 연대를 기존보다 더 오랜 것으로 파악할 수 있는 고고학 발굴 결과에 발맞추어 국사교과서의 고조선 관련 부분의 서술에서 고조선의 편년을 조금 더 확정적으로 서술하는 형태로 지침이 변경되었다. 그러나 언론에서는 이를 “단군·고조선을 신화에서 역사로 수정”한다는 자극적인 보도를 하여 세간의 오해를 불러일으켰다. 역사학계와 국사편찬위원회는 이러한 언론의 보도가 사실이 아니라는 우려를 표명하기도 하였다.[10]

단군 신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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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유사를 통해 단군왕검 신화가 전해지고 있는데 내용을 간단하게 요약해보자면 하늘나라 환국의 왕 환인의 아들 환웅이 하늘에서 내려와 사람이 되기를 소망하는 호랑이를 만나고 쑥과 마늘을 쥐어주며 동굴에서 그것만으로 버티는 것에 성공하면 사람이 된다고 하였는데 동굴에서 버티지 못하고 뛰쳐나온 호랑이는 사람이 되지 못하고 곰은 사람으로 변하여(웅녀) 환웅과 결혼해서 단군왕검을 낳았다는 내용이다.

해석

단군 신화는 사실을 밑바탕으로 하여 만들어졌는데 단군 신화의 밑바탕이 된 당시 시대는 신석기 시대에서 청동기 시대로 넘어가는 때였다. 신화를 풀이해보면 당시 힘이 비교적 세던 환웅 부족이 곰과 호랑이를 섬기는 토테미즘의 두 부족을 만났는데 곰 부족과 융합을 하고 호랑이 부족은 융합하지 못하였다고 추정이 가능하다.

단군이 기록된 역사서

  • 고려사》: 마리산(摩利山) 산마루에 참성단이 있는데 세간에 전하기를 단군이 하늘에 제사 지내던 단이라고 한다.
  • 동국사략》: (단군조선) 나라 사람들이 (단군을) 임금으로 세웠다.(당요 25년 무진년)
  • 동국통감 외기》: 신인(神人)이 단목(檀木) 아래로 내려오자 국인(나라사람)이 세워서 임금으로 삼았다.
  • 삼국사기》: 평양은 본래 선인(仙人) 왕검(王儉)의 집이었다. 어떤 기록에는 ‘임금이 왕검에 도읍하였다.’라고도 한다.
  • 삼국유사》: 단군 신화
  • 세종실록 지리지》: 단군 신화
  • 신증동국여지승람》: 큰 무덤이 있다. 하나는 현의 서쪽 3리에 있는데 둘레가 410자나 된다. 민간에서는 단군묘라고 전한다.
  • 응제시주》: 단군 신화
  • 제왕운기》: 단군 신화

단군이 기록된 위서

  • 규원사화》: 1675년에 북애자(北崖子)가 저술하였다는 역사서 형식의 사화(史話) (현재 위서로 분류)
  • 단기고사》: 반안군왕 대야발(大野勃)이 8세기경에 편찬했다고 추정되는 역사서 (현재 위서로 분류)
  • 부도지》: 신라 눌지왕 때 박제상이 저술했다는 사서인 《징심록》의 일부. (현재 위서로 분류)
  • 환단고기》: 광무 15년(1911년), 계연수가 전해지는 사서를 묶어 《환단고기》라는 책명으로 간행하였고, 1979년에 출간된 책으로 고대로부터 전해지던 역사서 4권을 묶은 것이라 자칭하고 있다. (현재 위서로 분류)
  1. 후에 대종교로 개칭
  2. 삿사 미츠아키, 한말·일제시대 단군신앙운동의 전개 : 대종교·단군교의 활동을 중심으로, 서울대학교 대학원, 2003
  3. 이병도, 한국사대관, 1983년, 20쪽.
  4. 이병도, 고조선 연구, 1975년.
  5. 정호완, 단군왕검의 형태론적 풀이, 한글 제219호, 한글학회, 1993년 3월, 5쪽 ~ 32쪽.
  6. 단군학회 엮음, 단군과 고조선 연구, 지식산업사, 2005년, 409쪽.
  7. 리지린, 고조선연구, 사회과학출판사, 1963년
  8. 장우진, 대동강 유역은 인류의 발상지이며 조선사람의 발원지, 조선고고연구 1호, 1999년
  9. 이기동, 북한에서의 단군연구와 그 숭앙운동, 한국사 시민강좌 27집, 2000년
  10. 고조선 역사 편입과 청동기 기원 경향신문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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