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미위키:포크 프로젝트/리브레 위키/보어 전쟁

최근 편집: 2021년 11월 14일 (일) 14:20

아프리카 남부에서 종단 정책을 추진하던 영국보어인 사이에 일어난 두 차례의 전쟁. 통상 보어 전쟁은 2차 보어 전쟁을 의미한다.

1차 보어 전쟁

1880년 영국트란스발 공화국 사이에 있었던 첫 분쟁이다. 당시 영국은 아프리카 종단정책을 시행하고 있었는데 그 종단로의 가운데에 떡하니 위치한 것이 바로 트란스발 공화국오렌지 자유국이었던 것. 당시 영국의 수상이었던 세실 로즈 경은 이 두 나라의 식민지화를 위해서 전쟁을 일으키게 되었는데 사실 영국 정규군을 대놓고 파병할 명분이 없어서 해당 국가 내의 영국인들을 배후에서 조종, 봉기시켜 전쟁의 명분을 삼게 되었다. 그러나 애초에 규모가 작은 국지전 수준의 분쟁으로 끝나게 되며, 평화조약에 따라 1881년 영국은 트란스발 공화국오렌지 자유국의 독립을 인정하게 된다.

2차 보어 전쟁

트란스발 공화국에서 금광이, 오렌지 자유국에서 다이아몬드 광산인 킴벌리 광산이 발견되면서 다시 이 자원에 욕심을 낸 영국1899년 다시 침략을 함에 따라 발발한 전쟁이다. 이번에는 아예 작정을 하였는지 영국은 45만의 대군을 동원하였으며[1], 이 전쟁에서 영국이 승리하게 되면서 1902년 두 나라는 모두 영국령에 편입되게 되었다. 그러나 영국은 두 나라의 땅은 차지하였지만 워낙에 게릴라에 시달린 덕분에 자치권을 인정하여야 하였으며, 남아프리카에서도 보어인의 생활부흥을 위하여 300만 파운드의 막대한 비용을 보조금으로 내우주어야 했다. 이 전쟁으로 영국은 제국주의를 위해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는 국가라는 국제적 비난을 받게 되었으며 함께 영광의 고립 정책을 포기하여야만 했다. 또한 영국내에서도 반전운동이 일어나서 영국 노동당의 결성에까지 영향을 주게 되었다.

  1. 당시 두 나라의 인구는 약 50만에 총병력은 기껏해야 7만 수준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