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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편집: 2021년 11월 14일 (일) 11:59

야후! 코리아(Yahoo! Korea)는 한때 세계 1위의 포털 사이트였던 야후!한국에 세운 포털 사이트다. 2012년 12월 31일부로 서비스를 종료했다.

역사

인터넷 초창기인 1997년 후반에 대한민국에 진출했으며, 상륙 직후 순식간에 당시 대한민국 1등이었던 심마니를 제치고 인터넷 포털계의 넘볼 수 없을 것만 같았던 1위 사이트의 자리에 오른다. 한때 점유율이 80%에 달하기도 하는 등 현재 네이버도 이루지 못한 어마어마한 지위를 누리기도 했다. 이렇게 야후! 코리아는 90년대 말에서 2000년대 극초반까지 지속적으로 대한민국 빅3 인터넷 포털의 지위를 안정적으로 유지한다. 당시 대한민국의 포털들은 이런 야후의 기세에 위협을 느끼고 무료 이메일 서비스 등을 내세우며 대응했고, 신문광고에 광개토대왕과 이순신 장군을 언급하는 등 [1] 애국심을 활용한 마케팅을 사용했다.

야후! 코리아는 당시 국내 포털 사이트에게 큰 위협이었지만 2000년대 초반부터는 네이버, Daum, 엠파스 등 국산 포털과 검색 엔진의 서비스 차별화 공세와 인수합병을 통한 점유율 증가 공세를 방어하지 못해 꾸준한 점유율 하락을 경험한다.[2][3] 결국 2003년에 네이버에게 대한민국 시장 점유율 1위를 뺏기고, 2005년에 Daum에 2등 자리도 뺏긴다.[4]

결국 2000년대 후반부터 야후! 코리아의 시장 점유율은 5% 미만으로 떨어지면서[5] 대한민국의 군소 포털로 전락해버린다. 그 동안에도 국내 최초의 개방형 포털[6]을 표방하거나[5] 개인화된 서비스를 제공하는 시도하는 등 나름대로 승부수를 띄웠지만 시장점유율은 날이 갈수록 떨어졌다. 결국 2012년, 야후! 코리아의 한국 철수 결정이 떨어진다. 철수 직전 점유율이 0.25%였지만 흑자는 꾸준히 낸 야후! 코리아의 철수에는 주요 수익원이었던 검색 광고 자회사 오버추어 코리아[7]의 네이버와 다음과의 계약 종결이 큰 영향을 미친 듯하다.[8]

여담

한때 어마어마한 점유율을 자랑해서인지, 1990년대 후반에 태어나서 야후! 코리아의 전성기를 제대로 체험하지 못한 세대도 야후! 코리아에 대한 기억이 약간은 남아있는 경우가 많다. 아동용 포털 서비스인 야후! 꾸러기에서 서비스하는 플래시 게임과 컨텐츠를 이용한 기억이 대부분이다.

  1. 이 광고는 1999년 7월에 다음에서 낸 것이다.
  2. 김형호 기자 (2002년 6월 16일). “토종 '날고' 외국계 '기고' .. 포털업계 공격.守城경영 명암”. 한국경제. 
  3. 김홍재 기자 (2002년 6월 19일). “NHN “다음·야후 비켜””. 파이낸셜뉴스. 
  4. 세계일보 인터넷뉴스팀 (2006년 2월 7일). “네이버, 검색엔진 유입율 압도적 1위”. 세계일보. 
  5. 5.0 5.1 정미나 기자 (2010년 8월 3일). “야후코리아, 개방형 서비스로 `권토중래` 선언”. 전자신문. 
  6. 이 표방하고 있는 성격의 포털 사이트와 동일하다.
  7. 2003년 야후!에 인수된 검색광고 회사 오버추어의 한국 지사이다.
  8. 조재성 기자 (2015년 6월 17일). “[블루스크린] 야후코리아의 0.25%짜리 말년”. 이코노믹리뷰.  |제목=에 지움 문자가 있음(위치 1) (도움말)

틀:한국의 포털 사이트 틀:야후!